정부가 증권형토큰(STO, Security Token Offering) 규제를 본격화하는 가운데, 유통 플랫폼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될 경우, 상장 폐지로 인한 투자자 피해가 예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7일 블록체인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증권형 토큰 규제가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가상자산을 증권형과 비증권형으로 분류하고 증권형 토큰은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루나(LUNA) 폭락 사태로 대규모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서 증권형 토큰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이 막바지에 들어갔다.

미국 하위테스트, 증권형 토큰 범위 포괄적

증권형 토큰이란 증권의 속성을 가진 가상자산을 의미한다.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될 경우 사업자는 가상자산을 발행할 때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금융위 심사를 거쳐 인가나 등록 절차를 마쳐야 한다. 증권형 토큰은 투자권유 규제, 불건전영업행위 금지 등 영업행위 규제와 과당매매, 자기거래, 쌍방대리, 선행매매 금지 등 이해상충 방지 규제 등을 적용받는다.

증권형 토큰은 한국거래소가 취급한다. 만약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 증권형 토큰으로 분류되면 상장 폐지된다. 이 경우 기존 거래소는 자본시장법상 인허가를 취득해 거래를 계속 지원할 수도 있다. 굳이 상장 폐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하지만 요건이 까다로워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관건은 증권형 토큰의 범위다. 금융위가 증권성을 넓게 해석한다면 현재 상장돼 있는 코인은 상장 폐지될 여지가 커진다. 만약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사례를 참고할 경우 증권형 토큰의 범위는 넓어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미국은 대법원이 제시한 하위테스트(Howey Test)에 따라 증권형을 분류한다. SEC는 ▲돈을 ▲기업에 투자해서 ▲수익을 기대하고 ▲제3자의 노력으로 수익이 발생하면 증권형 토큰으로 본다.

권단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 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최근 뮤직카우 때문에 금융위가 증권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냈다. 기존에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던 투자계약증권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인정했다"며 "증권형토큰을 투자계약증권으로 포섭하면 미국 SEC와 비슷하게 갈 수도 있다. 하위테스트는 상당히 포괄적인데 이 경우 범위가 넓어질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리플 소송, 증권형 토큰 기준 바로미터 전망

최근 가상자산 리플(XRP) 개발사인 리플랩스와 SEC의 소송 결과가 증권의 범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박민우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장은 "리플랩스와 SEC의 소송 결과에 따라 우리 가상자산 정책도 지금과 다르게 가져가야 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SEC와 리플랩스는 ‘제3자의 노력’의 해석을 두고 대립 중이다. SEC는 리플 운영이 중앙화돼있어 증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현행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리플랩스는 리플이 충분히 탈중앙화돼있어 상품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SEC가 차일피일 소송 일정을 미루고,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서 리플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에서는 루미스 상원의원이 발의한 ‘책임있는 금융혁신법안’을 소개하며 증권성 범위가 좁아질 가능성을 제시했다.

블록체인 전문 변호사는 "SEC가 제시한 광범위한 증권 범위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사업자가 투자자에게 명시적으로 금전 지급 등을 약속하지 않는한 증권이 아닌 것으로 보고자 한다"며 "유럽도 비증권 범위를 상당히 넓게 볼것으로 생각된다"고 견해를 밝혔다.

유통 플랫폼 진도 답보…"미국·유럽서 토큰 정의 나올 것…규제 서두를 필요 없어"

증권형 토큰 유통 플랫폼 논의가 제 때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거래소와 투자자를 비롯, 시장 관계자 모두에게 돌아간다.

현재로서는 부산시가 준비 중인 디지털자산 거래소를 통해 증권형 토큰을 다루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현재 키움증권, 미래에셋, SK증권, 삼성증권 등이 신사업 확대를 위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관련 논의는 답보 상태다. 부산시 블록체인 특구 관계자는 "디지털자산 거래소 설립에 관련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며 "여러 변수가 많지만 대략 8월 중순 쯤 사업자 공고를 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증권사들이 증권형 토큰 등 신사업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는 입장"이라며 "디지털자산 거래소 설립 등 거래 플랫폼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증권형 토큰 규제 방안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직 사업자 논의는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내 자본시장 전문가는 "아직 증권형 토큰이 유통될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인 요건을 선제적으로 내놓기에는 어떠한 실익도 찾기 어렵다"며 "가상자산 업권법을 마련하고, 미국과 유럽이 증권형 토큰에 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 국내외 규제 체계가 마련된 이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도 늦지 않다"고 제언했다.

정부는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 마련 후, 법적 공백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할 방침이다. 앞서 금융위 관계자는 간담회를 통해 "증권형 토큰은 투자자 보호장치가 마련된 자본시장법 규율체계에 따라 발행될 수 있도록 시장 여건을 조성하고 규율체계를 확립할 것"이라며 "필요하면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우선 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