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LUNA) 후폭풍이 거세다. 디파이 시장(De-Fi·탈중앙화 금융)이 코인 가치 폭락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서 관련 업체들이 줄도산 할 거란 우려가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복수의 외신이 가상자산 중개·대출 업체인 보이저 디지털이 5일(현지시각) 밤 미국 뉴욕 남부연방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에 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고 보도했다. 가상자산 인출을 요구하는 고객들이 급증하면서 뱅크런(대규모예금 인출 사태)에 직면한 결과다.

보이저의 파산보호 신청은 글로벌 금리 인상에 따라 가상자산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루나(LUNA) 붕괴로 담보 가치가 떨어진 영향이다. 앞서 보이저는 가상자산 헤지펀드 쓰리애로우캐피털(3AC)에 빌려준 6억5000만달러(약 8500억원)를 변제받지 못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

3AC는 보이저에게 빌린 돈 2억달러(약 2600억원)를 루나 토큰에 투자해 모조리 날렸다. 이후 보이저로부터 1만5250 비트코인(BTC)과 미국 달러화 연동 스테이블 코인인 USD코인(USDC) 3억5000만달러를 추가로 빌렸다.

추가 대출은 보이저에게 독이 됐다. 보이저는 3AC에 USDC와 대출금 전액을 갚으라고 요구했지만 최종 만기일까지 변제받지 못했다. 결국 지난 27일 (현지시각) 보이저는 채무불이행(디폴트) 통지서를 발행한 후 복구 방안을 논의했지만 3AC의 파산을 막지 못했다.

3AC는 지난달 29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법원에 청산절차를 신청한 데 이어 이달 3일 미국 뉴욕 맨해튼 연방 법원에도 파산을 신청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AC는 루나 사태로 인한 손실은 견딜 수 있었지만, 루나 재단이 테라 가격 방어를 위해 비트코인을 대량으로 내다 팔면서 가상자산 시장 위축됐고, 3AC는 이를 버티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스티븐 얼릭 보이저 최고경영자(CEO)는 6일 트위터를 통해 "이 산업의 미래에 대한 믿음은 굳건하지만, 가상화폐 시장의 변동성 지속과 3AC의 채무 불이행으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파산 신청 배경을 밝혔다.

3AC 파산 충격은 보이저에 그치지 않고 있다. 3AC에 자금을 빌려준 홍콩 가상자산 거래소인 8블록스캐피털과 디파이업체인 카이버네트워크도 손실을 입게 됐다.

3AC나 보이저디지털과 같은 예금 인출을 중단하거나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줄 도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앞서 가상자산 담보 업체 셀시우스가 예금 인출과 대출을 중단한 이후 홍콩에 본사를 둔 바벨 파이낸스도 예금 인출을 중단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의 가상자산 대출업체 볼드가 예금 인출을 중단하고 모라토리엄(채무지불 유예) 계획을 발표했다.

WSJ는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서로 얽히고 설킨 모습은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초래한 은행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파산 등 사업을 접는 가상자산 관련 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는 "아직 끝이 아니다. 지금까지 규모가 있는 사업자의 파산 소식이 알려졌지만, 실제로 도산 위기에 처한 규모가 작은 기업들도 여럿 있다"며 "파산 등의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잠적하는 상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도 정비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본다. 시장 전체로 봤을 때 유의미한 과정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무리하게 고객을 모으는 디파이 서비스는 대부분 사라지고 건강한 기업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