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가 횡령으로 비상이다. 우리은행의 700억원 횡령을 비롯,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객 돈을 관리해야 할 금융사 임직원들이 오히려 고객돈,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꺼내다 썼다. 얼마나 많은 횡령 사고가 있었고, 재발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지, 금융사 내부통제는 이대로 놔둬도 좋은 것인지, 업계 전문가들과 함께 고민해 봤다. [편집자주]

지난 5월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은 "지난 5년여간 금융업권의 횡령직원이 174명, 횡령금액은 1092억원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7년부터 올 5월까지 수치로 여기에는 지난 4월 발생한 우리은행의 614억원 횡령건도 포함됐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5월 전후로도 금융권의 횡령사고 뉴스는 계속 터져나왔다. IT조선이 올 2분기를 기점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된 주요 횡령사고를 집계한 것만 해도 1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강민국 의원실 발표한 5년치 자료와 맞먹는 수치다. 우리은행의 횡령 금액이 워낙 크기도 했지만, 그 밖에도 크고 작은 횡령사고가 올해 유독 많았다. 적발시점은 최근이지만 우리은행의 경우처럼 5년 이상 해묵은 횡령건도 적지 않았다.

2022년 적발된 금융권 주요 횡령 사건 /그래픽=신영빈 기자
2022년 적발된 금융권 주요 횡령 사건 /그래픽=신영빈 기자
올해 금융권 횡령사고로는 우리은행을 비롯해 농협과 새마을금고 등 은행권 사고가 컸고, KB저축은행이나 모아저축은행 등 저축은행 사고도 만만치 않았다. 얼마 전 대표(CEO)가 바뀐 메리츠자산운용도 포함됐다. 몇 백만원이나 몇 천만원 정도의 소액은 드러나지도 않아 이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라는 게 업계 진단이다. 횡령에 가담한 직원들은 대부분 주식이나 코인투자의 손실을 만회하거나 도박빚을 갚기 위해 범행을 일으킨 것으로 파악된다.

그중 우리은행은 최근 횡령 사고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우리은행 일개 직원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약 8년 간 6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다. 횡령 금액은 금감원 조사결과 697억원으로 늘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나 해당 직원은 자금 대부분을 페이퍼컴퍼니로 빼돌려 회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결국 회사 돈으로 피해를 메우게 생겼다.

우리은행만의 문제는 아닌…농협, 새마을금고 횡령도 천태만상

NH농협과 새마을금고도 금액만 우리은행보다 적다 뿐이지, 임직원들의 직업윤리의식은 실종 그 자체다. 농협중앙회는 올해 확인된 것만 9건에 달하는 횡령이 발생했다. 중앙 농협 구의역 지점에서는 최근 1년새 4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불법 유용됐다. 해당 직원은 불법 도박에 자금을 사용했고 현재 경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에 구속 송치된 상태다.

경기 광주와 파주 지역농협에서는 각각 50억원과 76억원에 달하는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 광주지점 직원은 지난 4월 한 달간 돈을 빼돌렸다. 해당 직원은 주식 투자와 도박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자금에 손을 댄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기 파주에서는 2017년부터 최근 5년간 자금을 빼돌려 가상자산에 투자하고 수입차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검찰에 구속 송치된 상태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내부 감사가 진행 중이고 감사 결과에 따라 징계가 확정된다"며 "감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연이은 횡령 사고에 농협 이성희 회장 책임론도 불거지는 모양새다. 이 회장에 대한 국정감사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동안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의 횡령을 방치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지난 4월에는 경남 진주시 농민회가 대곡농협 경영진이 직원의 횡령사건에 대해 감사나 고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권고사직으로 무마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도덕적 해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새마을금고에서는 송파중앙과 강릉에서 각각 40억원과 22억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송파중앙은 16년 동안, 강릉에서는 10년간 지속적으로 횡령이 일어난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새마을금고 관계자는 "강릉 사건은 본사 감사가 진행 중이고 송파 직원은 경찰 수사를 받고 있으며 현재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수사 결과에 따라 내부 징계 수위가 결정될 예정이다.

그동안 ‘윤리경영’을 내세운 박차훈 새마을금고 회장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가 높다. 박차훈 회장이 연임에 성공한 지 3개월만에 사고가 터지면서 리더십 문제가 불거지는 상황이다. 특히 고위 간부들의 비위가 문제되면서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의 배신, 5년간 800억 꿀꺽…전체 횡령 사범 절반이 은행

횡령사고는 덩치가 큰 시중은행의 사고가 많았다. 강민국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은행권 횡령 금액은 808억원으로 전체의 74%를 차지했고, 여기에 가담한 인원도 91명(52.3%)으로 횡령사범의 절반이 넘었다. 금액으로는 우리은행이 가장 컸지만, 횡령 직원은 하나은행이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강민국 의원은 "5년여간 확인된 금융업권 횡령금액만도 1000억원을 넘고, 특히 최근 들어 횡령금액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은 결국 금융위원회의 금융감독 기능의 부재와 무능함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권의 횡령사고가 점차 고도화, 전문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정태경 삼정KPMG 이사는 "은행 업무가 갈수록 복잡화, 고도화 되다 보니 횡령 금액도 커지는 게 최근 추세"라며 "정형화되지 않은 거래에다 허위거래까지 일으켜 장기간 은폐하게 되면 노출도 되지 않고 적발조차 쉽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부정행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은행들이 조금씩 내부통제를 강화하면서 지점 단위의 거래들을 잡아내기 시작한 것은 성과다. 이번 신한은행과 농협중앙회, 새마을금고 일부 건의 경우 대대적인 내부 감사를 통해 일부 횡령 행위를 적발, 수사 당국에 사건을 넘겼다는 점에서 되새겨 볼 법하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횡령은 그동안 수년간 누적된 행위를 적발 또는 발견하는 것인데 발견 시점이 올해라는 것은 내부통제 점검의 결과로 볼 수 있다"며 "감사권을 가진 기관들이 사고를 발견하고 외부에 공개한 것은 나름 내부통제 역할이 가동됐다는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사고를 하루아침에 없앨 수는 없는 일. 전문가들은 CEO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지금보다 최고 경영진의 책임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동원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무엇보다 개인의 일탈이 문제이고 그러한 생각을 갖게 하는 조직도 문제"라며 "최고경영자의 내부통제 관심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최고경영자에 대한 법적책임을 묻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