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3」 신드롬

 

신드롬이라 할만 하다. 시민들이 일개 게임의 한정판을 구매하기 위해 발매일 전 날부터 대형마트 앞에 텐트까지 쳐 놓은 채 장사진을 이룬 저 모습 말이다. 이에 마트 측은 그들에게 번호표를 나누어 주며 혹시나 벌어질지도 모를 불미스러운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마치 폭풍전야와 같은 긴장과 경직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지루함 또는 피곤함 역시 찾아볼 길 없다. 오히려 다들 나름 기대에 부푼 표정들로 처음 만난 이들과도 거리낌없이 통성명하며 누구도 의도한 바 없는 현재의 색다른 이벤트를 즐기고 있다. 아마 같은 취미와 관심사가 있기에 더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리라. 저들의 면면 또한 다양하다. 말 그대로 남녀노소, 게임은 그저 애들의 놀이 감이라는 세간의 통념이 무색해지는 광경이다. 이 모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생소한 장면이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즐거운, 그리고 신선한 또 하나의 축제다.

 

이윽고, 발매 날이 밝았다. 역시나 한정판은 판매시작과 동시에 매진이다. 일반판 또한 별 차이 없다. 1인 1패키지 구매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완매, 마트는 안내데스크에서부터 「디아블로3」의 품절 소식을 마트 전체에 공지하며 죄송하다는 판에 박힌 인삿말을 던진다. 발매 시작은 보통 오전 9시 전후, 품절 사태의 발생은 불과 1시간만의 일이다. 10시 이후에 마트를 방문한 구매자들은 품절 소식에 허무해하며 터덜터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상황이 전국의 수많은 대형마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이다. 과연, 신드롬이라 할만 하다.

 

 

▲ 디아블로3 출시 전야제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도대체 무엇이 수많은 사람들을 이토록 열광하게 했을까. 단순히 양질의 게임 콘텐츠 덕분에? 아니다. 위의 사건이 벌어진 시점은 「디아블로3」라는 게임이 완벽하게 공개되기 이전의 시점이다. 대중들에게 「디아블로3」의 콘텐츠의 완성도에 대한 ‘신뢰’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실체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국내 게임 콘텐츠의 상대적 빈곤 탓에? 그것도 아니다. 2011년 현재 9조에 달하는 엄청난 시장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의 게임시장에서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갈증 때문에 특정 게임에 이와 같은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는 명제는 분명 어폐가 있다.

 

결국, 「디아블로3」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의 가치뿐 아니라, 「디아블로3」를 둘러싸고 있는 게임 외적인 요소들이 폭발적으로 화학작용을 일으킨 결과가 현재의 현상이라는 결론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디아블로3」를 이야기할 때는 단순히 게임의 내용뿐 아닌,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역학관계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만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디아블로3」는 그렇기에 더더욱 흥미롭다. 대한민국의 게임산업은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성장가도를 달려왔다. 그리고 수많은 화제와 전설을 양산해 왔다. 하지만 이번 「디아블로3」의 신드롬 속에 숨겨져 있는 한국 게임산업의 전망의 이정표는 이전의 것들과는 무언가 다른 새로움과 혁신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 본질을 가리고 있는 얇은 꺼풀을 살짝 벗겨내 보는 것, 제법 재미있는 일이 될 듯싶다. 그래서 지금부터 바로 그것을 해보려 한다.

 

 

 

유통의 혁신

 

대한민국 게임시장의 규모는 2011년 현재 무려 9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다. 게임 외의 영화, 만화 등의 각종 콘텐츠시장을 모두 합한 것을 압도할 정도의 크기로, 사실상 대한민국의 콘텐츠산업 전반의 가장 큰 기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낮은 수준의 저작권인식의 풍토를 고려할 때 거의 기적과도 같은 성과라고 할만한데, 이는 다른 문화산업 시장과는 달리 게임산업계의 콘텐츠 유통혁신의 성공에 따른 바가 크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조금 미뤄두고, 일단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국내 게임 유통의 혁신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PC용 싱글패키지 시장과 콘솔 시장은 외면당하고 결국은 고사하여 일부 하드코어 매니아들만의 시장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상 싱글패키지 게임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디아블로3」의 유통의 양상은 눈여겨보아야 할만한 대목이 많다.

 

우선 「디아블로3」는 기존 게임들의 유통방식, 바로 용산의 도매상을 통한 게임매장 배포가 아닌 전국의 대형마트를 이용한 대중적인 유통을 선택했다. 가격도 오픈프라이스라고 하기 보다는 거의 정찰제에 가까운 정책으로 전국 어디에서나 쓸데 없이 바가지를 쓴다는 등의 일 없이 게임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다운로드 콘텐츠 형태로의 구매도 가능하다. 특이한 점은 디지털 구매의 경우 또한, 실물패키지를 소유할 수 없음에도 가격은 패키지 가격과 동일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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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임의 경우 소비자가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쉽게 한정판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디아블로3」의 한정판 패키지는 말 그대로, 소수의 선택 받은 소비자들만 구매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정판의 물량 자체가 타 게임 대비 그다지 소량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다만, 온라인에 집중되어 있던 한정판의 유통채널을 전국 대형 마트에 골고루 분산시킴으로 인해 소수의 하드코어 유저 층뿐 아닌 일반 대중들에게도 한정판의 구매공간을 충분히 노출해 놓았을 뿐이다. 덕분에 실질적인 한정판의 주된 구매층이었던 하드코어 유저들이 한정판 구매단계에서부터 박탈(?)당하게 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무나 손에 넣을 수 없다는 「디아블로3」 한정판 프리미엄 현상의 본질-한정판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컬렉터들이 정작 이번에는 손가락만 빨고 있으니-이며 국내 게임유통에서 손꼽히는 한정판 배포의 대표적인 모범사례라 할만하다.

 

이와 같이 「디아블로3」는 기존의 하드코어 유저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매니아 시장의 유통구조가 아닌 일반 생필품 시장과 같은 대중적 유통구조 속에 게임 콘텐츠를 편입시켰고 성공시켰다.  놀랄만한 일이다. 사실상 콘솔 및 PC패키지 시장이 고사해가던 한국게임 시장에서 일궈낸 굉장한 쾌거다. 온라인게임에서 이루어냈던 유통의 혁신이 패키지시장에서 또한 재현이 가능하다는, 대단히 의미 있고 값진 열매가 드디어 열린 것이다.

 

물론 이는, 블리자드사의 게임에 대한 대중들의 무조건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게다. 블리자드 정도의 브랜드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게임업체들이 이러한 유통방식을 시도할 수 있었을지 가늠하려 한다면 누구나 회의적이 될 수 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그뿐일까? 과연, 그것뿐 이었을까? 자, 다시 애초의 명제로 돌아가 보자. 원래 우리 대한민국의 게임시장은 무려 9조의 어마무시한 크기의 시장이었다는 사실로.

 

 

 

제품(Product)인가 서비스(Service)인가

 

국내 게임시장이 폭발적 성장을 시작하게 되는 분기점에는 게임이 제품의 형태에서 서비스의 형태로 전환되던 일종의 터닝포인트가 있다. 게임콘텐츠의 물적 가치에 대해서는 지갑을 선뜻 열지 않던 소비자들이 그것을 서비스로 인식하는 순간 돈을 지불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9조 게임 시장을 가능케 한 게임 콘텐츠 유통혁신의 본질이다. 또한 이런 연유로 제품의 형태에 가까운 PC패키지들과 콘솔용 게임들은 외면 받았고 전적으로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게임들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국내에서의 블리자드의 성공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블리자드는 블리자드만의 독특한 온라인 서비스인 배틀넷이 있다. 블리자드사의 모든 게임은 배틀넷을 기반으로 하여 각종 온라인 패치 및 멀티플레이가 제공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게임은 패키지라는 제품의 형태로 판매되지만 본질은 서비스인 셈이다.

 

 

「디아블로3」 또한 마찬가지다. 단순히 배틀넷에서 멀티플레이 매칭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의 개인데이터, 게임의 오브젝트 데이터들까지 전부 서버에서 컨트롤하고 있다. 솔로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국내 대다수의 온라인RPG의 서비스 구조와 상당히 흡사하다. 역시나 「디아블로3」 또한, 패키지의 형태로 유통되고는 있지만 결국은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형식으로 소비되는 셈이다. 「디아블로3」 콘텐츠의 이러한 독특한 성격은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디지털콘텐츠와 오프매장에서 구매 가능한 패키지제품의 가격에 차별을 두지 않는 블리자드의 가격 정책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알맹이(디아블로3)는?

 

게임 외적인 환경의 화학작용이 아무리 활발하다 할지라도 이건 그저 변수값에 불과하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콘텐츠 그 자체의 완성도와 가치다. 양질의 콘텐츠라는 상수와 외부적인 환경이라는 변수가 서로 제곱의 관계로 맞물릴 때 이른바 대박이라는 게임제작사라면 바라 마지 않는 흥행의 카타르시스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아블로3」의 콘텐츠로서의 가치는 어떨까. 일단 기본기는 충실하다. 오소독스한 정통 핵앤슬래쉬 RPG라고 해야 할까. 좋게 표현하면 시리즈 전통의 재미에 충실한 높은 완성도의 게임이라 할만하고 조금 나쁘게 말하자면 약간의 매너리즘의 냄새를 풍기는 「디아블로2」의 스킨 버전이라는 평가절하 또한 무리는 아니다. 물론 디테일의 결은 전작과 차원이 다르다. 뭐랄까, 장인의 손길이 느껴질 정도로 공들여 다듬고 다듬은 테가 게임의 곳곳에서 그 나름의 빛을 발하고 있다. 전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유저의 시각에서 시스템 전반을 설계했음을 여실히 느낄 수가 있다.

 

 

시리즈를 통해 어느 정도는 정형화한 인터페이스는 마우스 왼클릭과 오른클릭만으로도 모든 것이 가능하게 느껴질 정도로 더 이상 진화가 불가능할 것 같은 최적의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다. 캐릭터마다 미묘하게 다른 운용방식의 차이는 게임의 즐길거리를 보다 풍성하게 만든다. 간략화된 캐릭터 성장시스템은 기존의 스킬트리 방식과 같은 심오함은 없지만 플레이어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플레이방식을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게임디자인 전반적으로, 유저들이 게임의 스토리텔링, 몬스터사냥, 아이템파밍 등의 다양한 콘텐츠의 소비에 부담 없이 집중할 수 있는 간결하고도 유저친화적인 구성인 것이다.

 

전통적인 쿼터뷰 형태의 화면 구성은 게임을 조금 낡아 보이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비교적 저사양PC에서도 원활한 구동이 가능토록 하는 순기능이 있다. 화면의 시점이 고정되어 있음으로 해서 적은 자원으로도 제법 화려한 게임아트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 또한 나름의 미덕이다.

 

무엇보다도 블리자드가 공들인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커뮤니티 요소들이다. 게임 전반의 구성 자체가 유저들이 함께 즐기는 파티플레이에 최적화가 되어 있다. 내가 다른 플레이어의 필드에 들어가는 것도, 다른 플레이어가 내 쪽으로 접근하는 것도 너무나 쉽고도 간편하다. 파티 인원이 늘어날 때마다 난이도의 상승과 아이템 출현율의 보정 등을 통해 미묘하게 여럿이 플레이를 유도하는 점에서도 나름 섬세한 배려가 느껴진다. 필드에서의 아이템을 두고 유저끼리 분쟁이 벌어지지 않게끔 아예 출현아이템을 유저마다 독립적으로 나눠버린 점 또한 현명한 판단으로 여겨진다. 멀티플레이에서 서로의 행위에 큰 스트레스 받는 일 없이 편한 마음으로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은 썩 괜찮은 미덕이니까.

 

 

이처럼, 현재 기준으로 「디아블로3」의 커뮤니티 기능은 경쟁보다는 어울림 쪽에 좀 더 포커스가 기울어 있는 점이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쏠림은 누구에겐가는 쾌적한 플레이를 위한 나름의 배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하드코어한 재미를 원하는 유저 입장에서 보면 멀티플레이에서의 긴장감이 사라진, 대책 없는 밋밋함으로 여겨질 수 있는 맹점이기도 하다. 이는 앞으로 「디아블로3」의 경쟁요소들, 앞으로 추가된다고 하는 투기장 등의 PVP 시스템 등을 통해 어떤 식으로 보완이 될지에 대해 진지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다.

 

현재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경매장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논란의 여지가 많고 국내 도입의 여부 또한 불투명한 현금경매장의 예는 일단 차치해두도록 하자. 또한 지금의 경매장이 앞으로 어떤 형태의 진화 발전의 모습을 보일지에 대해서 아직 알 수는 없다는 점도 미리 환기해 두도록 하겠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의 결과로만 보자면, 수많은 유저들이 이러한 경매장 시스템을 통해서 많은 도움과 즐거움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사실상 아이템 현거래라는 현상은 게임이 커뮤니티와 결합한 이후 자연 발생한, 그렇기에 인위적인 제한 또는 규제가 불가능한 게임의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블리자드가 시도하고 있는 아이템 현거래의 양성화(또는 자사 독점화) 정책은 성패여부를 떠나 분명 유의미한 일임은 분명하다.

 

 

 

게임산업의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나타난 긍정의 신호

 

현재 세계적으로 게임시장은 격변기를 겪고 있다. 이는 게임의 유통방식이 제품에서 서비스로 전환되어 가는 과도기적 현상에 의한 것이다. 스팀 서비스와 EA의 오리진 서비스로 대표되는 디지털콘텐츠 유통의 활성화, 이제는 거의 당연시되고 있는 DLC(Download Content) 서비스의 등장과 이의 남발로 인한 유저들의 반발, 게임의 중고거래 자체를 차단하기 위한 업계의 움직임과 이로 인해 빚어지는 기존 중고시장과의 갈등 등 세계적으로 유통질서의 변화에 따른 혁신과 혼란이 공존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황하에서 블리자드의 행보는 적어도 현재까지로는 가장 정답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그리고 그 모범답안 속에 「디아블로3」가 있다. 사실상 패키지상품의 시대는 점차 저물고 있는 추세다. 어찌 보면 패키지시장 자체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던 한국 게임시장의 특성상 이러한 시장의 격변은 어찌 보면 큰 기회일 수도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디아블로3」가 보여준 유통의 혁신은 국내 게임업계에도 매우 큰 자극과 교훈이 될 것이 분명하다.

 

 

IT조선 필자/ 까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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