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박상훈 기자] 특허청이 내달부터 소프트웨어(SW) 특허 신청 대상을 확대할 예정인 가운데, SW 생태계가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와 특허 권리자 보호 정책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SW 온라인 유통 규제와 SW 개발자의 자기검열 가능성 등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특허청은 오는 7월 1일부터 새로운 SW 발명 심사기준을 적용한다. 기존에는 방법과 장치, 기록매체 발명만 SW 발명으로 인정했지만, 이번에 '컴퓨터 프로그램'이 추가됐다. 가장 크게 바뀌는 부분은 특허 출원을 할 수 있는 SW의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기준에서는 모바일 앱의 경우 장치인지, 방법인지 명확치 않다는 이유로 특허 신청이 거절됐지만 이제는 특허 출원이 가능해졌다.

 

박상현 특허청 컴퓨터시스템심사과 사무관은 “사실상 같은 내용인데 행정적인 이유로 특허 출원이 거절되는 사례가 연평균 600여건에 달했다”며 "이번 심사기준 개정으로 이러한 사례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심사기준 개정에 따른 SW발명의 청구항 기재형식 사례 (표=특허청)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번 심사기준 변화가 SW 생태계를 파괴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가장 민감함 부분은 온라인 유통을 특허 침해로 제한하는 시나리오다. 남희섭 오픈넷 이사는 “이번 심사기준 개정이 지금은 큰 변화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그 다음 단계”라며 “일단 모바일 앱이 특허로 인정되면 이를 온라인으로 유통하는 것도 특허 침해로 제한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많은 SW 개발과 사업모델이 프로그램의 무료 배포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SW 특허는 이런 모델 자체를 금지할 수 있다”며 “자칫하면 모든 비즈니스가 특허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특허청은 지난 2011년 온라인 유통을 특허 침해로 규제하는 내용의 특허법 개정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부가 저작권과의 충돌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반대해 결국 무산됐다. 이번 특허청의 심사기준 변경을 두고 법 개정이 뜻대로 안되자 손쉬운 내부 규정을 손대는 ‘꼼수’를 부리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SW 개발 과정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다. 남 이사에 따르면, SW에 대한 특허가 광범위하게 인정될 경우 SW 개발 과정에서 특정 기능이나 구현 방법이 특허 침해인지 여부를 개발자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특허 문서는 전문가도 그 기능을 유추하기 어려울만큼 난해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개발자가 매번 특허 내용을 확인해 우회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남 이사는 지적했다. 저작권의 경우 불법복제처럼 당사자가 알고 저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특허 침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방비로 노출된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특허청에 따르면, 국내 SW 특허 출원 발급 비율은 40%대에 불과하다. 전체 특허 신청 대비 발급 비율이 60%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2/3 수준에 그친다. 그만큼 기존 기능과 중복되는 특허 출원이 많다는 의미다. 남 이사는 "SW 특허의 가장 큰 부작용은 소송 같은 현실적인 위협이 아니라 개발자가 특허 문제를 우려해 주요 기능을 자발적으로 삭제하는 것”이라며 “개발자가 스스로 자기 검열에 나설 경우 전체 SW 생태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오픈소스 진영이 저작권 보호와 달리 SW 특허를 반대하는 이유 (표=오픈넷)

 

이에 대해 특허청은 특허가 오히려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박상현 사무관은 “기존의 기술발전 역사를 보면 특허를 통해 권리자를 보호하면 이를 회피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또다른 기술이 나오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전체 기술 수준이 향상돼 왔다”며 “SW 역시 특허권자 보호를 강화해 전체 기술 수준 발전을 유도해 나가는 것이 기본적인 정책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과거 온라인 유통을 특허법으로 제한하는 법 개정을 추진했던 것은 맞다”며 “그러나 현재는 추가 법 개정은 전혀 준비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SW 특허가 SW 개발을 오히려 위축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실제 개발자의 의견인지 따져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사무관은 “일반적인 SW 개발 과정을 보면 기능 흐름에 따라 플로우차트를 그리는 것이 출발점인데 이 과정에서 특허를 검색해 확인하면 된다”며 “SW 소스 코드를 불법으로 얻어 일부 수정하는 방식이 아니라면 SW 특허에 대해 우려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발 과정에서 특정 기능에 대한 특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특허청도 인정했다. 박 사무관은 “현재는 키프리스(www.kipris.or.kr) 같은 웹사이트를 통해 특허정보를 알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관련 업계와 개발자 의견을 수렴해 기존 웹사이트를 보강하는 등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 특허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키프리스 홈페이지(화면=특허청)

 

한편 SW 업계의 이익단체인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SW 관련 권리를 강화하는 정책 기조에 대해 일단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박환수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실장은 “특허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실효성은 저작권과 큰 차이가 없어 그동안 저작권에 많이 의존해 왔다”며 “(이번 특허청 심사기준 변화로)단기간에 SW 기업의 권리가 크게 강화될 것 같지는 않지만 공공 프로젝트에서 특허나 저작권 관련 분쟁이 있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SW 특허를 둘러싼 이같은 논쟁에는 SW를 둘러싼 근본적인 인식 차이가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SW 개발주체, 특히 오픈소스 진영에서는 SW에 대한 보호가 저작권으로 충분하며 특허는 오히려 SW 개발 자체를 위축시키고 기술 개발을 저하한다는 입장인 반면, 특허 당국은 더 강력한 권리자 보호가 기술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소스 코드를 자유롭게 실행, 변경, 재배포, 개량하며 기술을 혁신하는 오픈소스 진영과, 특허권 강화를 위해 설립됐고 특허 관련 수수료로 운영비용 일부를 충당하는 특허당국은 현실적으로 이해가 충돌한다.

 

SW 특허 신청 대상 확대에서 촉발된 이번 논쟁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특허청은 현재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SW 온라인 유통을 특허로 규제하는 것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고, 특히 장기적으로 SW 특허가 전체 SW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 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리며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

상품지식 전문뉴스 IT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