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박상훈]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 시장에서 오라클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연 매출 372억 달러(약 40조 원)로 전 세계 관계형DBMS 시장의 45~50%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시장만 보면 오라클의 입지는 더 커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밝힌 한국오라클의 지난해 매출은 8175억 원으로, 국내 시장의 60% 가량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 이면에 한국오라클의 라이선스를 둘러싼 잡음이 곳곳에서 표출되고 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한 유명 사립대가 대표적이다. 이 대학은 10년 넘게 오라클 제품을 사용한 '우량고객'이었지만, 현재 한국오라클은 대학이 라이선스 계약을 위반했다며 불법 사용분만큼 변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오라클의 공문에는 1달 이내에 라이선스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밖에 증권사 여러 곳이 거액을 청구 당했고, 서울 시내 또 다른 대학도 소송 직전까지 갔다. 정부 통합전산센터도 몇 해 전 비슷한 이유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오라클 라이선스를 둘러싼 갈등이 대학, 증권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오라클 라이선스를 둘러싼 갈등이 대학, 증권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의 시발점은 라이선스 이용 형태다. 오라클의 라이선스는 사용자수, 시스템 구성, 서비스 형태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저렴한 라이선스를 구매해 허용된 범위 이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앞서 사립대는 사용자 라이선스를 구매해 CPU 라이선스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두 라이선스 간 가격 차이는 50%에 달한다. 유료 기능을 임의로 활성화해 사용하는 것도 또 다른 갈등 요인이다. '파티셔닝' 기능이 대표적인데, 성능을 크게 향상할 수 있지만 라이선스의 25% 정도를 추가로 내야 한다.

유료 기능을 임의로 활성화해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한국오라클은 전적으로 '사용자(고객)의 잘못'이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일부 외신이 오라클 최신 버전인 12c 패치를 설치하면 프로세서당 비용이 2000만 원이 넘는 고가 유료 기능이 자동으로 활성화된다고 보도했을 때, 한국오라클 측은 경쟁사인 다른 글로벌 기업의 음해이고 오보라고 주장했다. 유료 기능은 자동으로 활성화되지 않고, 무조건 사용자가 명시적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오라클의 해명,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그러나 한국오라클 출신 한 인사는 이러한 해명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오라클에서 수년간 컨설팅 업무를 담당했고, 지금은 한 외국계 소프트웨어 기업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오라클 12c 이전 버전인) 오라클 11g부터 옵션을 활성화하는 절차가 더 명확해진 것은 맞다"며 "그러나 그 이전 버전인 10g까지는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었고 일부 유료 옵션은 기본으로 온(사용하도록) 상태로 설치된다"고 말했다.

더 논란이 되는 것이 한국오라클이 라이선스 문제를 제기하는 시점이다. 현재 갈등을 빚고 있는 사립대학을 비롯해 또 다른 대학과 증권사 모두 기존 오라클 제품을 더 저렴한 제품이나 오픈소스로 교체를 추진할 때 한국오라클로부터 불법 라이선스 통보를 받았다. 교체를 검토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라이선스 위반이라며 거액을 청구하고, 결국 오라클 제품으로 재계약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전환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한국오라클의 라이선스 정책은 오라클에 대한 고객들의 반감을 확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오라클 라이선스 정책에 대해 88%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표=CCL)
오라클 라이선스 정책에 대해 88%가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표=CCL)
오라클의 이러한 영업 행태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라이선스를 더 엄격하게 관리하는 미국에서도 오라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비영리단체인 CCL(Campaign for Clear Licensing)이 지난해 오라클 사용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0% 정도가 오라클의 라이선스 감사 요구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라클의 라이선스 관리 부서인 '오라클 글로벌 LMS'에 라이선스 관련 도움을 요청했을 때 조언 대신 감사가 나온다는 것이다.

'라이선스 영업'의 이익이 실제로 막대한 규모라는 분석도 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오라클의 지난해 매출은 8175억 원이다. 본사의 매출 구성을 기준으로 국내 유지보수 매출을 4000억 원으로 추산하고 국내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 38%를 대입해 역산하면, 기존 고객사 라이선스 단속만으로 당장 2500억 원 가량을 벌 수 있다. LMS는 할인되지 않은 가격을 기준으로 청구되고 불법 사용 기간에 따라 청구액이 늘어난다. 라이선스 전반을 정밀하게 감사해 DBMS 계약 위반까지 적발하면 금액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한국오라클은 정말 몰랐을까

이에 대해 한국오라클 DB사업부 관계자는 "벤더(오라클)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료 기능을 활성화하면 이전에는 밤새 돌려야 했던 것을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다"며 "이런 편의는 다 누리면서 비싸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유료 기능을 활성화하면 추가 비용이 청구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고지했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된 기능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품에 적용됐고 유료라고 계속 알리고 있다"며 "고객이 정말로 유료 기능이라는 것을 모르고 썼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은 한국오라클에도 적용될 수 있다. 현재 논란이 되는 고객사 대부분이 오랜 기간 오라클을 사용했다. 영업 기간이 길고 기업별 맞춤 컨설팅이 필요한 제품 특성을 생각하면, 한국오라클이 불법 사용 여부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객이 라이선스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지원하는 대신 영업에 이용했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상황인데, 앞서 CCL 조사에서도 이런 불신을 읽을 수 있다. '고객이 몰랐을 리 없다'는 한국오라클의 반박이 궁색한 이유다.

28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한국오라클에 대해 '끼워팔기' 혐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지보수 서비스를 판매하면서 차기 버전을 묶어 판매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라이선스 갈등의 마지막 단계가 적당한 규모의 신규 라이선스와 유지보수 계약, 관련 제품 판매에 대한 협상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현재 제기된 라이선스 논란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빠르면 6월경 끼워팔기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한국오라클에 대한 제재에 나설 예정이다.

박상훈 기자 nanug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