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최용석] 손안의 PC라고 불리는 스마트폰과 공책만 한 크기에 8~11인치급 큼직한 화면을 제공하는 태블릿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자 업계에서는 PC의 시대가 끝날 것으로 전망했다.

기존의 PC에서 하던 일들의 상당수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서도 할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이동하면서 전화는 물론 자유로운 인터넷 검색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PC가 필요 없을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여전히 IT 업계의 핫 이슈중 하나지만 태블릿 쪽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 심지어 본격적인 태블릿 시대의 장을 열었고 지금도 태블릿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애플의 ‘아이패드’ 시리즈도 갈수록 시장 점유율과 출하량이 줄어들고 있을 정도다.

애플 아이패드 에어2 (출처=애플 홈페이지)
애플 아이패드 에어2 (출처=애플 홈페이지)
 

태블릿이 ‘고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과도한 공급으로 인한 시장의 포화 ▲다른 IT기기에 비해 긴 교체 주기와 그로 인한 신규 수요 감소 ▲5인치급 이상의 대화면 스마트폰을 뜻하는 ‘패블릿’의 급격한 대두 등이 시장조사기관의 각종 보고서와 업계 전문가들이 꼽는 대표적인 이유다.

하지만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도 있다. PC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한 조건 중 하나였던 ‘생산성’ 측면에서 여전히 PC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태블릿 디바이스 시장은 거의 대부분이 일반 소비자에 집중되어 있다. 주된 용도 또한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새로이 작성하고 만들며 수정하는 등 ‘생산적’인 것보다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수많은 콘텐츠와 앱들을 이용하고 감상하는 ‘소비적’인 용도에 치우쳐져 있다. 생산성과 관련이 깊은 기업 시장에의 도입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어디서든 기존의 PC를 완벽히 대체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특히 입력장치인 ‘키보드’의 부재는 태블릿의 생산성에 한계를 그었다. 가상 키패드를 제공하고 터치 조작 및 스타일러스 펜을 이용한 그림이나 필기 입력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텍스트’ 중심의 업무 현장에서는 물리적인 키보드의 효율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태블릿 주변기기 중 가장 많이 팔리는 것 중 하나가 휴대 가능한 블루투스 무선 키보드임을 감안하면 키보드의 부재로 인해 태블릿으로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일이 의외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업무용으로 쓰는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PC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화면도 태블릿의 생산성 저하 원인 중 하나다. 애플이 화면 크기를 12.9인치로 키우고 키보드 커버까지 갖춘 ‘아이패드 프로’를 고심 끝에 선보이고, 애플과 함께 태블릿 시장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도 꾸준히 대화면 태블릿을 내놓고 있는 것도 모두 생산성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인텔의 6세대 코어프로세서 발표회에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프로 4'
인텔의 6세대 코어프로세서 발표회에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피스 프로 4'
 

한편, 태블릿이 주춤한 사이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것이 ‘2in1’ 제품들이다. ‘2in1’이란 기존의 노트북과 같이 키보드를 탑재하고 있으면서 필요에 따라 화면 부분을 떼어다 태블릿처럼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을 일컫는 말이다.

당초 2in1 제품들은 기존 노트북의 두께와 무게를 더욱 줄여 휴대성을 극대화한 ‘울트라북’과 더불어 차기 모바일 PC 시장을 이끌어갈 기대주로 꼽혔다. 그러나 일반 노트북에 비해 어중간한 성능과 ‘윈도 RT’ 등 전용 운영체제를 사용함으로 인한 애플리케이션의 태부족, 급성장을 거듭하던 태블릿에 비해 떨어지는 효율성과 휴대성, 사용 시간 등의 문제가 겹쳐져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태블릿이 정체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사이에 2in1 제품들은 그간 기술의 발달로 일반 노트북이나 울트라북급의 성능을 갖추게 됐다. 운영체제도 안드로이드나 전용 OS 대신 PC와 같은 윈도 운영체제를 탑재함으로써 ‘애플리케이션 부족’과 호환성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노트북의 생산성과 태블릿의 휴대성을 동시에 구현한다는 2in1 제품들의 초기 의도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이크로소프트가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는 ‘서피스(Surface)’ 시리즈다. 초창기 서피스는 태블릿 중심인 당시 시장 흐름에 편승하기 위한 제품 중 하나로 여겨졌지만, 윈도 운영체제와 대표적인 생산성 애플리케이션 ‘오피스’를 탑재하고, 키보드가 내장되어 실질적으로 2in1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타이핑 커버’를 제공함으로써 ‘업무용으로 최적화된 제품’이란 평가를 받았다.

판매량도 처음엔 거의 의미 없던 수준이었지만, 작년 선보인 3세대 ‘서피스 프로 3’에 이르러서는 소위 ‘대박’이라 할 정도의 큰 성공을 거뒀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신제품으로 완벽한 2in1 노트북인 ‘서피스 북’을 공개해서 쐐기를 박았다. 아예 차세대 모바일 PC의 ‘레퍼런스’를 서피스 시리즈와 같은 2in1로 세우려는 분위기다.

인텔은 차세대 프로세서 발표와 더불어 2in1 시장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 의사를 밝혔다.
인텔은 차세대 프로세서 발표와 더불어 2in1 시장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 의사를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PC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인텔 역시 2in1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지난 2013년 선보인 저전력 고효율 ‘베이트레일’ 프로세서와 이에 기반한 ‘윈도 태블릿’으로 상당한 재미를 봤지만, '코어M' 등의 프로세서 라인업을 통해 여전히 태블릿보다는 PC에 가까운 2in1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다.

특히 인텔은 지난달 있었던 6세대 ‘스카이레이크’ 기반 프로세서 발표에서도 대대적으로 PC 시장 활성화와 더불어 정책적으로도 2in1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뜻을 내비쳤다. 꾸준히 2in1 제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여왔던 에이수스나 HP, 에이서, 레노버 등 주요 PC 제조사들도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분위기다.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정체 분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태블릿과 달리, ‘휴대성’과 사용의 ‘편리함’이라는 태블릿의 장점과 태블릿의 약점이었던 ‘생산성’을 모두 갖춘 2in1의 약진은 이후 모바일 IT기기 시장의 향방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된다.

최용석 기자 rpch@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