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노동균] 최근 게임 업계에서 가상현실(VR)이 미래 먹거리로 급부상하고 있다. 단순히 보는 경험을 뛰어넘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가운데, VR 기반의 차세대 게이밍 기어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침체된 PC 시장에 활력소가 될 전망이다.

VR의 인기는 지난 15일 막을 내린 ‘지스타 2015’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지스타 2015에서 VR은 여느 PC 및 모바일 게임 못지않게 관람객들에게 킬러 콘텐츠로 각광받았다. 주요 게임사와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마련한 VR 시연장마다 관람객들의 대기행렬이 이어졌고, 차례를 맞은 관람객들은 저마다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를 쓰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스타 2015에서 ‘플레이스테이션 VR’을 체험해보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룬 관람객들의 모습.
지스타 2015에서 ‘플레이스테이션 VR’을 체험해보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룬 관람객들의 모습.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코리아(SCEK)는 ‘플레이스테이션 VR’과 5종의 VR 게임을 선보였다. 지난해에도 VR 체험관을 운영했던 엔비디아는 올해는 체험관을 5관으로 대폭 늘려 ‘HTC 바이브’와 ‘오큘러스 리프트’를 시연했다. 엔씨소프트는 삼성전자의 ‘기어 VR’을 이용해 ‘블레이드 앤 소울’을 VR로 선보였고, 넥슨은 야외 부스에 인기 게임인 ‘메이플 스토리’를 VR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VR은 전용 콘텐츠도 필수적이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하드웨어의 역할도 중요하다. 현재 일반적인 게임의 경우 24~30프레임, 움직임이 역동적인 격투 게임의 경우 60프레임 수준이지만, VR은 90~120프레임을 구현해야 한다. 그만큼 VR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고성능의 하드웨어가 충분히 보급돼야 한다. 수년째 성장에 제동이 걸린 PC 및 주변기기 시장이 차세대 게이밍 기어로서 VR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게이밍 기어는 침체된 PC 시장에서 홀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존 페디 리서치(JPR)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PC 게이밍 하드웨어 시장 규모는 내년부터 매년 약 20억 달러가량 성장해 오는 2018년에는 300억 달러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JPR은 그 원동력으로 기존의 풀 HD를 뛰어넘는 4K 해상도와 VR과 같은 최신 기술의 도입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게이밍 경험을 원하는 게이머들의 수요 증가를 꼽았다.

관련 업계는 그 징후가 벌써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앞서 일부에서 그래픽카드 시장이 필요성에 의한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VR은 더 강력한 그래픽카드의 등장을 부추기고 있다. 엔비디아와 같은 GPU 전문 업체들도 CPU 내장 그래픽의 성능이 향상됨에 따라 보급형 라인업보다는 고성능 그래픽카드 개발에 더욱 주력하고 있다.

PC 그래픽카드 시장을 대표하는 엔비디아도 VR을 위한 그래픽 플랫폼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사진= 엔비디아)
PC 그래픽카드 시장을 대표하는 엔비디아도 VR을 위한 그래픽 플랫폼 확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사진= 엔비디아)

 

디스플레이 시장의 동반 발전도 주목할 만하다. 27인치 이상 크기에 4K 해상도를 갖춘 모니터에서부터 초당 120프레임 이상의 주사율을 갖춘 게임 전용 모니터의 보급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가격도 빠르게 대중적인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게임 및 PC 시장에서 4K와 VR이 대두되기 시작한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고성능 게이밍 하드웨어 수요의 증가는 PC 시장 전반적으로도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다.

나아가 VR의 가능성은 비단 게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용자와 콘텐츠의 상호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게임이 전면에 부각되고는 있으나, 향후 VR이 대중화되면 교육, 의료, 제조 등 광범위한 산업군에서 활용도가 높은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실제 환경과 같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VR이 응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역시 PC 및 하드웨어 업계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큰 시장이 될 전망이다.

하드웨어와 콘텐츠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새로운 하드웨어의 등장은 콘텐츠의 혁명을 이끌고, 콘텐츠는 하드웨어가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돼준다. VR이 차세대 게이밍 기어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는 시점에서 관련 콘텐츠까지 활발하게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2016년은 VR이 원년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장기침체의 늪에 빠진 PC 시장이 차세대 게이밍 기어의 등장에 힘입어 재도약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인지에 주목된다.

노동균 기자 yesn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