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김남규] 국내 증권사에 이어 주요 시중은행들이 자산관리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로보어드바이저(로봇+어드바이저)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관련 업계에서는 빅데이터 기반의 객관적인 투자 서비스가 인기를 얻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과 함께, 경험부족 및 규모의 경제를 충족하지 못해 시장형성 초기부터 고전할 것이란 회의적 분석이 교차하고 있다.

표=우리금융경영연구소
표=우리금융경영연구소

1일 금융권에 따르면 KDB대우증권과 NH투자증권, 삼성증권에 이어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신한금융, IBK기업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빅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을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어서, 서비스 확산 여부에 관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란 로봇을 의미하는 ‘로보(robo)’와 자문 전문가를 의미하는 ‘어드바이저(advisor)’의 합성어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자 성향에 맞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설정하고 알고리즘에 따라 자동으로 투자가 진행되는 서비스를 말한다.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금융투자는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객관적인 투자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인터넷과 모바일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서비스가 제공돼 언제 어디서든 자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특히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 상품은 연간 수수료가 0.25~0.5% 수준으로, 기존 투자자문사를 통했을 때의 절반에 불과하다. 또한, 상대적으로 적은 자금으로도 투자가 가능해 그동안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금융권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경쟁 확산
 
국내 금융권이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려는 이유는 저성장∙저금리 기류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수수료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금융권의 경우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위해 자체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전문 온라인 자문사와의 제휴를 추진 중이다.
 
KDB대우증권은 1일 증권 업계 최초로 투자자문 종합시스템을 오픈하고 본격적인 서비스에 돌입했다. 이 시스템은 자문사 전용 정보제공 사이트와 인프라, 프로세스 등을 활용해 ‘투자권유 업무위수탁계약’을 맺은 투자자문사의 일임 상품을 고객에게 제안하는 플랫폼이다. 
 
KDB대우증권은 이 서비스를 위해 지난해 9월 관련 기술을 보유한 AIIM, 디셈버앤컴퍼니 등과 협력을 맺었고, 투자자문사 생태계 조성을 위해 지난해 12월에는 VIP투자자문과 투자권유 업무위수탁계약을 체결하는 등 40여개의 투자자문사와 협력을 추진 중이다.
 
NH투자증권도 지난해 12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인 ‘QV로보어카운트’를 선보인 후, 본격적인 서비스 오픈을 중비 중이다. 또한, 삼성증권 역시 올해 1월 로보어드바이저 플랫폼 핵심기술인 ‘투자성과 검증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1분기 중 서비스에 돌입할 계획이다.
 
국내 주요 시중은행의 ‘로보어드바이저’ 도입 경쟁도 가열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초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회사인 쿼터백투자자문사와 협력해 자문형 신탁상품인 ‘쿼터백 R-1’을 선보였다. 
 
국내 시중은행 중 최초로 선보인 쿼터백 R-1은 쿼터백 자체 알고리즘을 통해 6개 자산군과 77개 지역, 920조 개 이상의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통해 상황별로 최적의 투자대상을 선별해 안정적인 성과관리를 추구하도록 개발된 글로벌 자산배분 상품이다.
 
KEB하나은행 역시 올해 안에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인 ‘사이버 PB(가칭)’ 베타버전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우리은행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로보어드바이저를 접목한 금융상품 출시를 준비 중으로 이르면 관련 서비스를 이달 중 선보일 계획이다. 
 
신한은행과 기업은행도 최근 TFT를 구성하고, 관련 서비스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신한은행은 마케팅과 IT 등 10개 부서가 참여하는 TF를 구성하고, 로보어드바이저 파트너 선정 작업을 진행 중이며, 기업은행은 최근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제안 설명회를 진행하는 등 관련 서비스 준비에 착수한 상태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초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회사인 쿼터백투자자문사와 협력해 자문형 신탁상품인 ‘쿼터백 R-1’을 선보였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초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회사인 쿼터백투자자문사와 협력해 자문형 신탁상품인 ‘쿼터백 R-1’을 선보였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초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회사인 쿼터백투자자문사와 협력해 자문형 신탁상품인 ‘쿼터백 R-1’을 선보였다.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안착 가능할까?

국내 금융권을 중심으로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이 한창이지만, 일각에서는 서비스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 이르다는 지적이다. 로보어드바이저에 기반을 둔 투자 실효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장이 형성돼 규모의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이 시스템을 도입·운영 중인 미국의 경우, 현재 200개 이상의 로보어드바이저 회사가 영업 중이다. 또한, 상위 15개사의 운용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510억 달러로 집계되는 등 로보어드바이저 기반의 투자 일임 시장이 활성화된 상태다. 
 
문제는 지난 2012년 이후 연간 200~300%의 가파른 상승곡선을 보였던 해당 기업들의 성장세가 과도한 시장 경쟁에 의해 한풀 꺾였다. 이에 ‘Betterment’와 ‘Wealthfront’ 등 로보어드바이저 전문회사의 자산 성장률은 대형 금융회사가 본격적으로 진입한 2015년 이후 각각 68.7%, 89.1%로 급감한 상태다.
 
게다가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의 경우, 연간 3000만~4000만 달러의 운영비용이 필요한 데, 이 기준을 적용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려면 최소 160억 달러 규모의 운용자산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대부분의 운용자산이 이 수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알고리즘 기반 거래의 유효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점 역시 또 다른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로보어드바이저 업체가 자산시장이 호황기를 누리던 시기에 설립됐기 때문에 침체기의 투자를 경험하지 못했다. 알고리즘 기반의 투자가 실제 수익률을 낼 수 있을지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국내의 경우 선진국과 비교 시 전체 시장규모는 작고, 서비스 런칭 시점도 늦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서비스는 출발 시점부터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기반에 놓여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도 자동화된 온라인 시스템 거래 특성상 비대면 커뮤니케이션 서비스가 중요한데, 이 역시 제도적 준비가 미비해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실제 스마트폰 기반의 서비스를 준비 중인 ‘두나무’의 경우에도 비대면 인증 규제에 발목이 잡혀 정확한 런칭 시점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시장 여건이 충분히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로보어드바이저 투자 서비스가 수익률을 내지 못할 경우, 이는 투자자의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자칫 관련 서비스가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투자자로부터 외면받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설자리 더 좁아진 금융 ‘영업맨’

로보어드바이저의 확산은 지난 수년간 급격한 구조조정에 몸살을 앓아온 금융 업계 종사자 입지를 더욱 좁힐 것으로 예상된다. 상당수 금융사가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추진할 계획이어서, 투자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비용절감 차원의 구조조정을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 보험, 증권 등 금융권 종사자 숫자가 크게 감소했다. 특히 보험사와 증권회사의 인력 구조조정이 두드러졌는데,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은행, 증권·선물, 자산운용, 보험, 여신전문, 상호저축, 신협 등 금융인력 조사대상 기관에 고용돼 있는 금융전문인력은 28만5029명으로 전년 대비 1189명 줄었다.
 
업권별로 살펴보면 자산운용사·신탁사, 상호저축은행, 여신전문사 인력은 증가했으나, 은행, 보험사, 증권·선물사, 신협은 감소했다. 인력 감소폭이 큰 영역은 보험사 1502명, 증권·선물 1684명 등이다.
 
권우영 우리금융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낮은 수수료율이라는 특성상 규모의 경제 달성 여부가 관건이지만, 업권 내 경쟁 심화로 손익분기점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 운용 기간이 짧아 모델의 안정성에 대한 검증이 미흡해 제한된 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한 고객 불만의 증대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로보어드바이저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경기변동에 따른 알고리즘 기반 거래의 적합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대고객 커뮤니케이션 원활화 방안 등과 더불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사업모델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남규 기자 ngk@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