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조선 최재필] SK브로드밴드가 CJ헬로비전와 합병 시 향후 1년간 콘텐츠 제작을 위해 총 3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5년간의 콘텐츠 투자 계획에 있어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인찬 SK브로드밴드 대표는 8일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 수펙스 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합병법인의 국내 콘텐츠 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 계획을 밝혔다. SK브로드밴드는 1년간 3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 콘텐츠 제작에 집중 투자한다. 

이인찬 SK브로드밴드 대표
이인찬 SK브로드밴드 대표

먼저, SK브로드밴드와 CJ헬로비전 합병법인은 1500억원을 출자한다. 지난해 11월 2일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발표 당시 총 1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운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총액이 500억원 추가됐다. 이와 함께 투자자로부터 총 17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한다.

이렇게 조성된 금액 중 2200억원은 콘텐츠 제작에 투입되고, 1000억원은 관련 스타트업 활성화에 들어간다. 아울러, 원금과 수익을 합쳐 1800억원을 재투자해 향후 5년간 총 5000억원 규모를 콘텐츠 산업 생태계에 투입한다.

합병법인은 제작사 및 창업투자회사를 대상으로 콘텐츠 펀드 설명회를 거쳐 펀드 운용사를 선정하고, 오는 7월부터 펀드 운영에 본격 들어간다. 다만, 이 같은 계획은 정부가 양사의 합병을 최종 승인했을 때 실행 가능하다.

이인찬 SK브로드밴드 대표는 "정부 승인이 안 되면 투자 계획이 지연되거나 축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콘텐츠 펀드 3200억원, 어디에 어떻게 쓰이나

우선, 합병법인은 12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한류 드라마 및 사회·환경·교육·문화 관련 명작 다큐멘터리 등 주문형비디오(VOD) 형태의 콘텐츠 제작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사업자들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초고화질(UHD) 등 선도기술을 적용한 콘텐츠 제작과 글로벌 한류 콘텐츠 제작을 위한 초대형 프로젝트를 발굴·추진한다.

또 합병법인은 총 600억원 규모의 융복합 콘텐츠 펀드를 조성해 1인 창작자(MCN), 가상현실(VR) 등 신기술 기반의 뉴미디어 콘텐츠에 적극 투자한다. 콘텐츠 진흥기관 또는 지자체 등과 협력해 개인 우수 창작자를 지속 발굴·육성하고, 고품질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을 위해 주요 콘텐츠 제작사와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이미지=조선일보DB
이미지=조선일보DB

합병법인은 VR 콘텐츠 활성화를 위해 콘텐츠 공모전을 지속 개최하고, 교육·여행·애니메이션·의료 등 VR 콘텐츠 제작을 지원한다. 관련 기반 기술 향상을 위한 R&D 투자도 병행된다. 특히 올림픽, 월드컵 등 초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가상현실(VR) 기술을 지원하는 콘텐츠의 제작을 지원한다.

글로벌 콘텐츠 제작에는 400억원의 펀드가 조성된다. 합병법인은 국내 제작사들의 해외 진출 기회를 제공하고 해외 플랫폼 간 연대를 통한 공동제작을 추진할 예정이다.

총 2200억원의 펀드 운영을 통해 제작된 콘텐츠는 국내외 유료 플랫폼 및 OTT에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국내 콘텐츠 제작사의 수익 창출 기반을 강화하고 추가적인 외부 투자를 유도해 국내 콘텐츠 산업의 질적 성장구조를 강화할 예정이다.

이 밖에 1000억원은 스타트업 활성화에 지원되며, 특히 빅데이터·VR·IoT 등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한다.

이인찬 대표는 "합병법인은 플랫폼 차별화와 콘텐츠 산업 선순환 구축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할 것"이라며 "이후 콘텐츠의 다양성은 늘어나고 고객의 만족도가 향상돼 결국 국내 미디어 플랫폼 및 콘텐츠 산업이 크게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1년간 3200억원 펀드 조성…5년 계획은 '불투명'

SK브로드밴드는 '1년간 3200억원 콘텐츠 투자 계획'이라는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지만, 5년간의 콘텐츠 투자 계획에 있어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 대표는 "1년간 합병법인이 1500억원 출자하고, 1700억원을 매칭 펀드로 투자된다"면서 "모태 펀드 등에서 충분히 조달한 후 원금이 회수되면 재투자하는데, 재투자 금액 1800억원은 원금과 수익을 합친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이인찬 대표(오른쪽)와 윤석암 부문장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는 이인찬 대표(오른쪽)와 윤석암 부문장

1년간 32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고, 이를 통해 발생한 수익과 원금으로 재투자를 하겠다는 설명이다. 합병법인이 계획하는 5년간 재투자 규모는 1800억원으로, 수익이 기대만큼 발생하지 않을 경우에는 투자 규모가 축소될 수도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보여주기 식 투자 계획'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1년간의 집중 투자 계획만 발표하고, 나머지 4년 동안의 투자 계획은 담보할 수 없는 수준으로만 공개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SK브로드밴드가 인수합병 승인을 앞두고 있는데, 이를 위해 당장 보여줄 수 있는 카드를 꺼낸 것 아니냐는 이유에서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 입장에서는 당장 합병을 승인받아야 하기 때문에 4~5년 뒤 미래가 중요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1년 안에 집중적인 성과들을 보여줌으로써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재필 기자 mobilechoi@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