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 원장
주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똑똑한 자동차 '키트'가 곧 내 것이 된다니! 상상만으로도 흥분된다. 80년대 인기 미국드라마 '전격 Z 작전'의 '키트'처럼 인공지능을 장착한 무인자동차의 고속도로 자율주행 시험이 지난 5월 우리나라에서도 성공했다. 2010년 시험 운행에 성공한 구글, 애플 등 IT 업체와 GM, 포드, BMW, 테슬라 등의 자동차 업체들 간의 각축은 이미 치열하다.

비단 자동차만이 아니다. 인간생활의 기본요소인 衣食住에 소프트웨어와 인터넷을 장착하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하여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시도들이 활발하다. 가트너(Gartner) 조사에 의하면 올해 말까지 약 64억 개의 사물인터넷 기기가 사용되고, 4년 뒤인 2020년까지는 208억 개의 사물인터넷 기기가 세계를 뒤덮을 거란다. 이제 사물인터넷은 일상뿐만 아니라 산업과 경제로 스며들어 스마트의료, 스마트공장, 스마트시티 등 기존의 패러다임과 룰을 변화시키는 혁신의 촉매가 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이 우리경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신산업 동력으로 원활히 작용하도록 지난 5월 제5차 관계부처 합동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ICT 융합 신산업과 자율주행차, 드론 등의 무인이동체에 대한 규제개혁안이 발표됐다. 창조와 혁신의 '빗장을 푸는' 발표가 늦었기에 더없이 반가웠다. 이제부터라도 부처 간 칸막이와 중복이 없는 환경에서 접혔던 날개를 펴볼 수 있을 거라 기대가 되는 한편, 초분야적 '보안'에 대한 논의도 동일한 속도와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걱정도 슬그머니 일기 시작했다.

ICT 융합의 가속화는 기술에 의한 인간역량의 극대화를 실현시키는 동시에,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도 수반한다. 2014년 클라이슬러 인포테이먼트 시스템 해킹 영상은 140만대 리콜사태를 불러일으켰고, 유명 보안컨퍼런스에서 심장 제세동기 해킹시연은 ICT융합 제품의 편의성 이면에 숨은 심각한 보안 취약성과 파급여파를 여실히 드러냈다. 여기에 지난 5월 테슬라 자율주행차의 운전자 사망사고는 사이버위협 만이 아니라 '기술적 불완전성에 의한 위험'의 대비필요성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IoT 융합보안과 관련하여 '통합적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공동노력보다는 여전히 의료, 금융 등 각 분야별, 기업별로 독자적 단편적 보안대응이 이뤄지는 것 같다. ICT 융합산업의 특성상 소관부처나 주관기관 참여기업이 다양하고, 관련 법제도나 시장 환경이 상이함에 따라 전체를 아우른 체계구축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런 속성 때문에 보안만큼은 결코 분절적인 시스템으로 나뉘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기기들이 서로 연동된 환경에서 틈새를 탄 보안위협에 전체가 연쇄 노출되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유럽, 미국 등에서는 이미 다양한 ICT 융합산업별 보안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정부, 민간, 산업 간의 횡종연합을 확대하고 있다. 작년 10월 설립된 일본 IoT AC(Accelerator Consortium)의 경우, 중앙부처 9개와 지방 공공단체 18개, 1900여 기업, 연구소, 개인회원들이 참여하고 있어 범정부 차원의 보안가이드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도 UN 산하 보안청(ENSIA),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등을 중심으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ICT 융합산업별 보안이슈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을 보면서 우리도 서둘러 ICT융합산업별 전문가들과 학계‧업계‧관계 정보보안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수렴과 소통을 하는 거버넌스를 구축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특히, 과거처럼 일부가 주도하는 거버넌스가 아니라, 패러다임을 바꿔 ICT 융합산업에 참여하는 정부기관, 민간기업, 분야별 전문가들이 초분야적 융합과 보안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협업하는 거버넌스가 바람직하다. 이런 거버넌스의 출현을 위해 ICT 융합산업의 총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스마트시티 프로젝트' 추진을 구상해볼 만하다.

이미 현실이 되어버린 ICT융합사회를 안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첫 단추는 바로 융합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상생협력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