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성장 엔진 중 하나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차전지(Secondaty Cell) 산업의 앞날에 대한 우려가 일고 있다. 일본이 기술력과 점유율을 선도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을 계기로 신뢰도가 급락했다. 반면 중국은 한국의 뒤를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이미 한국을 추월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IT 조선은 한국 이차전지 산업의 경쟁력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제시해 본다. <편집자주>


이차전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과 함께 정보산업(IT)의 3대 핵심부품이다. 반도체가 두뇌, 디스플레이가 얼굴이라면 이차전지는 심장에 비유될 정도다. 특히 이차전지는 인공지능(AI), 로봇, 사물인터넷(IoT), 전기차 등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산업의 에너지원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차전지는 니켈수소(Ni-MH), 리튬이온(Lithium-Ion Battery : LIB), 리튬폴리머(Lithium Polymer Battery : LPB) 등으로 이뤄지는데, 니켈수소 전지와 리튬이온 전지는 기존 니켈카드뮴 전지보다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뛰어나 기존 전지 시장을 이미 대체했다. 특히 리튬이온 전지 시장은 전기차와 전력저장용설비(ESS) 등 중대형 배터리를 중심으로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세계 리튬배터리 시장 규모. / SNE리서치 제공
세계 리튬배터리 시장 규모. / SNE리서치 제공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세계 배터리 시장(팩 가격 기준)은 2015년 212억달러(약 24조원)에서 2020년 630억달러(약71조원)으로 연평균 20% 이상 고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이점은 전체 이차전지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IT용 전지의 성장세는 둔화하지만 전기차와 ESS 등 중대형 배터리가 성장하면서 이차전지 시장 규모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8년에는 중대형 배터리 시장이 IT용 이차전지 시장보다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소형 전지 시장 둔화, 중국의 추격...갤노트7 발화에 따른 신뢰도 하락까지

한국의 이차전지 산업은 2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빠르게 성장했다. 스마트폰과 자동차, ESS 전지 시장에서 고른 점유율을 보이면서 이차전지 강국으로 거론된다.


용도별 배터리 시장 전망. / SNE리서치 제공
용도별 배터리 시장 전망. / SNE리서치 제공
특히 소형 배터리 시장은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업체들이 일본을 따돌리고 1위를 달리고 있다. 배터리 전문 조사기관인 B3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IT용 리튬이온 전지 시장에서 삼성SDI는 점유율 25.2%로 1위를 차지했다. LG화학은 17%로 2위를 차지한 가운데, 일본 파나소닉이 14.7%, 중국 ATL 11.4%, 소니 8.5% 등이다.

문제는 소형 배터리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된다는 점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IT 기기를 중심으로 한 소형 배터리 시장은 연평균 10.1%로 중대형 전지 시장과 비교하면 더딘 성장세를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중국 기업들이 소형 전지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면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이차전지 관련 기업은 이미 일본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량이 많아지면서 기술력까지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곧 한국 기업에 위기로 다가왔다. 삼성SDI와 LG화학은 소형전지 사업 부진으로 지난 2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여기에 또 악재가 터져 나왔다.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이다. 이 사고로 인해 한국의 소형 전지 산업은 신뢰도까지 잃게 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형 전지 부문에서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는데, 갤노트7 발화 사고까지 겹쳐 어려움에 직면했다"며 "특히 삼성SDI는 초기 발화 사건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큰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중국발 전기차 배터리 '빨간불'

자동차용 전지 시장은 이차전지를 생산하는 업체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부상했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수요가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 시장은 2020년 18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됐으며, 그 결과 업체간 혼전이 벌어지고 있다. B3가 조사한 2015년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보면 일본 AESC가 점유율 23.5%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위는 LG화학(16.6%), 3위는 중국의 BYD(15.1%)다. 파나소닉(13.7%)과 삼성SDI(12.5%) 그 뒤를 잇고 있다.


중국 전기차 시장 전망. / IITP 제공
중국 전기차 시장 전망. / IITP 제공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은 중국이다. 중국은 2015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의 31.3%로 1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20년 70만대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도 증가 추세다. 지난해 중국 전기차 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54만9000대)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2025년이되면 중국내 전기차 생산량은 300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SDI, LG화학, SK이노베이션 등이 중국시장에 적극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관계자는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큰 성공률을 보이는 중국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는 전지업체가 전지 산업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시장은 중국 정부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워 자국 배터리 업체를 보호하고 나섰다.

중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하기 위해선 중국 정부의 전기차 배터리 모범 규준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을 받은 기업은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또 전기차 생산업체들은 우선적으로 모범규준 인증을 받은 배터리업체로부터 제품을 공급받기 때문에 인증 획득 여부가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삼성SDI와 LG화학은 번번히 이 인증을 받지 못했다. 5차 인증 발표가 있을 예정이지만 기약이 없다. 여기에 갤노트7 발화 사건으로 5차 인증 획득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을 위해선 중국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데, 인증으로 인해 발목을 잡히고 있다"며 "때문에 유럽과 미국으로 사업을 집중하려는 전략도 마련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기술력 확보는 한국 기업의 약점으로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배터리는 결국 가격보다 안전하고 오래가는 게 중요하다"며 "한국 기업들의 소재 개발 능력과 배터리 관련 기초 기술력이 여전히 글로벌 기업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