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가전회사 월풀(Whirlpool)과 삼성전자·LG전자 간 덤핑 공방이 재현된다. 6년 이상 이어온 월풀과 한국 기업 간 악연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월풀은 5월 31일(현지시각)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삼성전자·LG전자가 미국에서 세탁기를 덤핑 판매했다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청원서를 제출했다. 세이프가드는 수입 업체가 과도하게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해 미국 제조업체가 피해를 볼 경우 도움을 주는 조치다.

◆ 월풀, 한국 가전 업체와 질긴 악연 이어와

월풀이 한국 기업 견제에 나선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풀은 2011년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한국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아 미국 시장에서 부당하게 낮은 가격으로 가전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며 덤핑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의 한 가전 유통업체 매장 직원이 LG전자 세탁기에 대해 설명 중이다. / 조선일보 DB
미국의 한 가전 유통업체 매장 직원이 LG전자 세탁기에 대해 설명 중이다. / 조선일보 DB
당시 미국 상무부는 한국산 가정용 세탁기 관련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했고 2013년 삼성전자에 82.35%, LG전자에 13.0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이후 두 회사는 생산지를 중국 등지로 옮겼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는 2016년 미국 정부가 한국산 세탁기에 부과한 반덤핑 관세가 WTO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한국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월풀은 2012년과 2015년에도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덤핑혐의로 ITC에 제소했다. ITC는 2012년 제기한 덤핑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지만, 2015년 월풀이 제기한 덤핑 판매 의혹에 대해서는 혐의가 있다고 결정했다. ITC는 지난 1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에서 생산한 가정용 세탁기에 각각 52.51%, 32.12%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 월풀의 ITC 제소는 시장점유율 하락 탓?

106년 역사의 월풀은 2015년까지 미국 가전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켰다. 그러나 2016년 삼성전자가 월풀을 제쳤고, 2017년 1분기에는 LG전자도 월풀을 앞섰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이 분석한 미국 가전 시장 1분기 시장점유율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는 19.2%, LG전자는 15.8%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반면 월풀의 점유율 15.7%에 그쳤다.

특히 한국 기업은 세탁기 시장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올해 1분기 미국 세탁기 시장의 37%를 차지했다. 드럼 세탁기 시장 중 900달러(100만8000원) 이상 가격의 프리미엄 세탁기 시장에서 한국 제품은 56.4%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월풀을 밀어냈다.

월풀은 세계 최대 가전회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홈그라운드인 미국에서 한국 기업에 밀리자 덤핑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월풀은 자신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원인을 한국 기업으로 돌렸다. 삼성전자·LG전자가 미국에서 세탁기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해 판매하면서 교묘하게 미국 반덤핑법을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월풀은 두 회사가 관세 회피를 위해 중국이 아닌 베트남·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미국에서 판매했다고 봤다.

제프 페티크 월풀 CEO는 "세이프가드 신청은 미국 무역법을 전례 없이 위반한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대한 조치다"라며 "월풀의 북미 지역 세탁기 사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불법 행위가 없었다면 좋은 성과를 냈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 ITC, 월풀이 주장한 반덤핑 관련 검토 결과는?

페티크 CEO는 트럼프 정부의 제조 협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라 ITC 판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3월 6일 '2017 미국 경제정책콘퍼런스'에 참석한 피터 나바로 미국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미국 기업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불공정 무역행위를 하는 대표 해외 기업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를 꼽기도 했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한미 FTA를 재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ITC가 월풀의 주장을 받아 들일 경우 트럼프 정부는 삼성전자·LG전자에 반덤핑 관세 부과를 권고할 수 있다.

LG전자는 월풀의 세이프가드 신청에 대응한 성명서에서 "월풀의 청원서 제출은 월풀 스스로가 LG전자와 같은 글로벌 브랜드와 경쟁할 능력이 없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라며 "미국 기업이 LG전자의 제품 때문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는 주장인데, 이를 증명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