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통신 사업자의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서비스를 차별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은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할 전망이다. FCC는 12월 14일 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투표를 진행한다. 망 중립성 원칙 폐기가 확정되면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의 파장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퍼블릭 놀리지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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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각) 아지트 파이 미 FCC 위원장은 망 중립성 폐기를 담은 최종안을 발표했다. 이 폐기안은 12월 14일 표결에 부쳐진다. FCC의 이번 결정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급증하는 데이터 트래픽 해결을 위해 콘텐츠 사업자도 망 구축비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따른 조치다.

망 중립성은 통신망을 보유하지 않은 사업자도 같은 조건으로 차별 없이 망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 시절 FCC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오픈 인터넷규칙'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아지트 파이 위원장은 "망 중립성을 자유시장 원칙에 반하는 만큼 폐기돼야 한다"며 "오바마 정부 규칙은 시장 불확실성을 가져왔고 불확실성은 성장의 적이다"라고 폐기 이유를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아지트 파이 위원장이 주도해 만든 이 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한다. 5월 전체회의에서 망 중립성 폐지를 제안하는 '오픈 인터넷 규칙 수정안' 예비 표결에서 이미 2대 1로 통과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FCC 결정에 미 이통사는 환영의 뜻을 비췄고, 구글·페이스북 등 IT 기업은 반발하고 나섰다. 망 중립성이 폐기되면 통신사 결정에 따라 인터넷 속도나 과금 등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즉, 통신사가 특정 인터넷 기업에 느린 회선을 제공하거나 추가 비용을 요구할 경우, 해당 기업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업계에 부담을 주는 비용은 자칫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망 중립성 폐지 분위기 팽배…눈치보는 한국

미국에서 망 중립성 원칙이 폐기될 경우, 한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정책이 미국을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2011년 가이드라인 형태의 망 중립성 지침을 시행했다. 2013년에는 합리적 트래픽 관리 기준을 마련하고, 2017년 8월부터 망 중립성 강화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자간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조건·제한 부과의 부당한 행위 세부기준' 고시 제정안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꾸준히 망 중립성 문제가 제기됐다.

통신 업계는 미국의 망 중립성 폐지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통신사업자 입장에서는 망을 설치하고 유지·보수하는 책임이 있지만, 인프라를 이용하는 업체는 비용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에서는 통신망을 활용해 성장한 인터넷 기업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MWC 2017에서 망 중립성 문제에 대해 "누군가 너무 많은 초과 이익을 가져갔다면, 생태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이익을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국내 한 통신업체 관계자는 "망 중립성 원칙은 ISP(Internet Service Provider)가 CP(Contents Provider) 트래픽을 차별하면 안된다는 개념이었다"며 "하지만 글로벌 거대 CP가 협상력 우위를 이용해 ISP에 프리라이딩하는 현상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국 역시 망 중립성 완화를 통해 생태계에 참여한 다양한 사업자에게 정당한 망 이용 대가를 부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국내 인터넷업계는 망 중립성 폐지에 대해 반대 입장을 명확히하고 있다.

인터넷 기업 한 관계자는 "망 중립성은 유지돼야 한다"며 "망 중립성이 폐지될 경우 ISP의 불합리한 비용 청구와 무리한 요구가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의 망 중립성 원칙 폐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고, 폐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 관계자는 "망 중립성 원칙 폐지가 확정된 후 시행된다 하더라도 그 시기는 2018년 하반기는 돼야할 것이다"며 "당장은 변화가 없기 때문에 미국 제도가 바뀌는 것을 지켜볼 예정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