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CES'에서는 한 해 동안 IT 업계를 주름잡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스타가 꼭 탄생한다. CES 2017의 스타는 단연 아마존이었다. 스마트폰, 가전, 자동차, 액세서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군의 수많은 기업이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알렉사'를 자사 제품에 탑재해 선보인 것이다. 아마존은 CES 2017에 부스 하나 마련하지 않았지만, 알렉사는 전시장 어디에나 있었다.

CES 2018에서는 구글이 1년 전 아마존의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나서 눈길을 끌었다. CES에 처음 참가하는 구글이지만 야심이 컸다. 구글은 주 전시장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입구에 자사의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구글 어시스턴트'를 알리기 위한 옥외 부스를 차렸다. CES 2018 전시장 곳곳은 물론, 라스베이거스 주요 호텔 전광판에 구글 어시스턴트 호출 명령어인 '헤이 구글' 광고를 내보냈다.

라스베이거스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한 호텔 전광판에 구글 어시스턴트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다. / 노동균 기자
라스베이거스 메인 스트리트에 위치한 호텔 전광판에 구글 어시스턴트 광고가 흘러나오고 있다. / 노동균 기자
비록 일 년에 몇 번 비가 오지 않는 라스베이거스에 CES 2018 개막일 비가 내리면서 구글 부스는 첫날 문을 닫았지만, 전시장 곳곳에는 구글 어시스턴트를 탑재한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다.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가 1년 새 빠르게 대중화되면서 이제는 대부분 참가 기업이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 탑재를 핵심 차별화 포인트로 전면에 부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 아마존 진영과 새로 구글 진영에 합류한 신제품 간의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졌다.

이처럼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는 미래 IT 기기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구글에 따르면, 2017년 7월 1억개의 기기에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됐는데, 이 숫자는 6개월이 지난 지금 4배 늘어난 4억개가 됐다. 말 그대로 폭발적인 성장세다.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는 우리 일상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그동안 스마트폰, 스피커, 냉장고 정도를 떠올렸다면 CES 2018에서는 스위치, 안경, 조명, 욕실 거울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제품이 등장했다.

CES 2018 구글 부스에 전시된 구글 어시스턴트 탑재 제품들. / 노동균 기자
CES 2018 구글 부스에 전시된 구글 어시스턴트 탑재 제품들. / 노동균 기자
디지털 마케팅 업체 어도비가 미국 250개 유통 업체의 550억개 고객 방문 데이터와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17년 4분기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를 탑재한 제품의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10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를 탑재한 제품을 가진 소비자 절반 이상이 하루에 최소 한 번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22%는 음성 명령을 통해 쇼핑한다고 응답했다.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도 높았다. 같은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소비자가 현재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의 성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부정적 의견을 밝힌 소비자는 4%에 그쳤다. 소비자는 주로 음악감상(61%), 날씨 예보 확인(60%), 가볍고 재미있는 질문(54%), 검색(53%) 등에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를 활용한다고 답했다. 어도비는 이를 바탕으로 AI 음성인식 비서 서비스를 탑재한 제품의 시장성이 아주 밝다고 전망했다.

코스타 레시 어도비 디지털 인사이트 선임 분석가는 "우리는 이제 더는 디스플레이를 통해서만 기기를 작동하지 않아도 된다"며 "소비자는 음성 기반 기술에 더욱 익숙해지고, 이 기술을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는 더욱 많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삼성전자에서 빅스비를 총괄했던 이인종 부사장이 "사람과 기기 간 인터페이스는 텍스트 입력에서 음성 피드백으로 변할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임지훈 카카오 대표도 음성 인터페이스를 "터치가 아닌 대화나 음성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PC 시대에는 사람과 기기가 키보드와 마우스와 같은 직접 입력장치로 소통했다면, 스마트폰 시대에는 손가락만으로 직관적으로 조작 가능한 터치 인터페이스가 급부상했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돼 유기적으로 동작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에는 수많은 기기를 직접 조작하지 않고 말 한마디로 명령을 내리는 음성 인터페이스가 대세로 떠올랐다. 나아가 미래에는 뇌파를 인식해 생각만으로 기기를 조작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미래는 이미 다가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