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강추위가 찾아올 때마다 디젤 연료를 사용하는 경유차는 걱정이 많았다. 시동불량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서다. 기온이 떨어지면 경유 속에 파라핀이 서로 엉겨붙어 큰 입자를 만들고, 이렇게 뭉칭 파라핀은 연료필터나 인젝터를 막아 엔진 실린더에서 원활한 폭발과정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다. 다시 말해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추위가 계속되면 디젤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 SK에너지 제공
추위가 계속되면 디젤차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 SK에너지 제공
사실 경유의 어는 점은 영하 60도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경유가 어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건 대단히 힘들다. 다만 경유 속에는 엔진 내 윤활 작용을 위해 파라핀을 넣는데, 파라핀은 상온에서는 경유 속에서 액체 상태로 존재하지만 기온이 떨어지면 고체화 된다. 이를 두고 '경유 왁싱현상'이라고 부른다. 디젤엔진은 연료의 불순물 제거를 위해 필터를 통해 연료를 엔진 내부로 보낸다. 때문에 경유 내 파라핀이 굳으면 이들이 연료필터를 막고, 연료가 엔진 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지역에 따라 겨울철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과거 경유의 시동불량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그래서 겨울철에 공급하는 경유의 경우 연료필터 막힘점(CFPP, 또는 유동점)을 정해 경유 내 파라핀의 응고를 막아왔다. 2011년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혹한기(11월15일~2월28일)에 공급하는 경유의 필터막힘점을 영하 18도로 규정했다. 그런데 일부 지역에서는 영하 19도로 떨어지기도 했고, 내륙 산간에서는 영하 20도 이하를 기록한 사례도 많이 발견됐다. 그럴 때마다 해당 지역의 경유차들은 시동불량을 겪어야만 했다.

경유는 기온이 내려가면 함유된 성분 중 파라핀이 굳는다. / GS칼텍스 제공
경유는 기온이 내려가면 함유된 성분 중 파라핀이 굳는다. / GS칼텍스 제공
그러자 2015년 7월 새 규정이 마련됐다. 12월부터 2월까지의 혹한기에는 영하 23도 이하에도 응고되지 않도록 필터막힘점을 낮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하'라는 기준이다. 때문에 정유사들은 겨울철 경유 왁싱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영하 27도 정도에도 끄덕없도록 경유를 생산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영하 30도 이하에서 버티는 경유를 만들어 판매한다.

경유가 강추위에 견딜 수 있다고 해서 겨울철 시동불량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승용차와 달리 화물차는 한파에 노출된 야외에 주차하기 때문에 경유 왁싱현상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부분 연료탱크와 연료필터가 철로 만들어져 온도에 민감해 역시 왁싱현상이 쉽게 발생할 수 있다. 또 평소 영상 15도로 관리하는 주유소 경유 저장탱크는 주유 시 기온 차이로 인해 연료탱크 안에서 결로현상이 있을 수 있다. 이 수분이 연료필터에 들러붙어 빙결되면 필터가 또 다시 막힌다.

따라서 매서운 추위가 며칠간 계속된다면 먼저 정품 경유를 사용해야 한다. 배출가스를 줄여주는 역할인 요소수도 정품을 써야 한다. 연료 주입시에는 가능하면 탱크를 가득채워 결로현상을 방지해야 하고, 갑작스럽게 시동불량이 발생했다면 헝겊 등을 뜨거운 물로 적셔 연료필터 주변을 덥히는 것이 좋다. 추가로 한파를 대비해 동결방지제나 수분제거제를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고, 노후화된 연료필터는 추위가 몰려오기 전에 교체하는 것이 현명하다.

게다가 겨울에는 꼭 경유와 연료필터 때문에만 시동성이 저하되는 것이 아니어서 예열 플러그를 점검한다든지, 노후 배터리를 새것으로 교환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