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의 큰 제목이 ‘밀리터리 프라모델 세계’인데 어찌어찌 하다 보니 밀리터리 잡학 시리즈가 되어버린 관계로 이번 회에서는 제목에 충실한 프라모델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프라모델이란 플라스틱+모형(모델)의 합성어로(사실은 일본 사람들이 만든 말이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립식 모형을 말한다.

제101전투비행대 ‘그림리퍼스’ 소속 F-14D 톰캣 전투기 프라모델. / 타미야 제공
제101전투비행대 ‘그림리퍼스’ 소속 F-14D 톰캣 전투기 프라모델. / 타미야 제공
사람들이 ‘조립식 모형’이라고 부르는 프라모델은 지금의 40대 이상 남성들은 어렸을 때 거의 한두 번은 만져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은 컴퓨터 게임이나 여러 가지 동영상 같은 것들이 많아서 전혀 심심할 틈이 없지만, 예전에는 놀 거리가 많지 않아서 바둑·장기·프라모델 같은 것은 거의 국민적인 취미생활이었기 때문이다.

◇ 장난감과 프라모델의 차이

예전 세대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남자 어린이는 한 번쯤은 해 보았던 조립식 모형은 대부분의 사람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그만두게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학생이면 이제 애들이 아닌데 아직도 장난감을 갖고 노느냐?”는 부모님의 질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성인이 프라모델을 보는 시각은 ‘장난감’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시각은 지금도 거의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키덜트’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면서 프라모델이 재조명되고는 있지만 역시 키덜트란 용어도 “장난감을 갖고 노는 어른”이라는 말이니 예전의 시각에서 전혀 변한 것은 없고, 그저 “어른도 장난감을 갖고 놀 수는 있지”라는 관대한 인식이 새로 등장했을 뿐이다.

장난감의 정의를 무엇이라 할지는 모르겠지만, 장난감은 기본적으로 험하게 만져도 파손되지 않고 만지는 사람이 다치지 않아야 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프라모델은 장난감이 갖추어야 할 요소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정교하게 만든 프라모델은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부분을 쥐고 옮겨야 할지 만든 사람만 아는 것들도 있고(그 부분을 쥐지 않으면 바로 파손된다), 조금이라도 험하게 만졌다가는 모형도 바로 파손되고 플라스틱에 찔려 신체에 고통이 올 수도 있다.

프라모델은 상당히 정교한 물건이고 그 대상이 되는 실물이나 조립을 진행하는 과정 안에 많은 의미들을 담고 있다. 그리고 하나하나 정성껏 조립하다 보면 다른 취미에서 느낄 수 없는 보람과 희열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 프라모델의 분야

프라모델도 몇 가지로 분야가 나뉘는데, 크게 나누어 보면 SF와 캐릭터 모형, 그리고 스케일 모형으로 나눌 수 있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음악에서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으로 구분하는 것과 비슷하다 보면 된다.

SF·캐릭터 모형은 요즘 인기있는 ‘건담’ 시리즈를 중심으로 한 로봇 모형이나 영화나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모형으로 만든 것들이다.

퍼펙트그레이드 RX-0 유니콘 건담 3호기 페넥스. / 반다이 스피리츠 제공
퍼펙트그레이드 RX-0 유니콘 건담 3호기 페넥스. / 반다이 스피리츠 제공
이런 프라모델(캐릭터 모형은 플라스틱이 아닌 레진이나 소프트 비닐로 만든 것들도 많지만 여기서는 모두 그냥 프라모델이라고 부르기로 한다)은 전체 시장으로 보면 점유율이 스케일 모형보다 훨씬 크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찾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조립의 편의를 추구하는 제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이를테면 접착제 없이 스냅식으로 조립한다든가, 사출물을 여러 가지 컬러로 만들어 굳이 색칠할 필요가 없도록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역시 ‘오덕(오타쿠)’들은 있어서 로봇에 정교한 색칠을 하고 여러 가지 옵션 부품을 달기도 하면서 완성도를 높이는 경우도 많다.

그냥 빨강색 플라스틱과 빨강색 플라스틱 위에 빨강색 도료를 칠한 것은 질감에 차이가 크다. 그리고 전투 로봇이 전투를 벌인 흔적도 표현해줘야 하고 제품에 들어있지 않은 다른 무기도 장착해 보고 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스케일 모형은 어디까지나 세상에 존재하는 실물에 근거하여 그 실물을 35분의 1, 72분의 1 같은 몇 가지 축척으로 축소해 똑같이 만든 모형이다.

스케일 모형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 가지는 자동차·오토바이 모형이고 다른 한 가지는 밀리터리 모형이다.

20분의 1 스케일의 F-1카 모형. 자동차 모형은 스케일 모형 가운데에서는 대중성이 높은 편이다. / 유승식
20분의 1 스케일의 F-1카 모형. 자동차 모형은 스케일 모형 가운데에서는 대중성이 높은 편이다. / 유승식
자동차·오토바이 모형은 어느 정도는 대중적인 면을 갖춘 분야다. SF·캐릭터만큼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접하는 탈것이므로 전반적인 인기는 높은 편이다. 조립도 비교적 쉽고 여러 가지 사출색으로 부품이 나누어져 있어 굳이 색칠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모양은 나온다(물론 색칠을 제대로 하면 훨씬 더 멋있다).

벤츠 자동차의 완성 모형. 보닛을 걷으면 나오는 엔진등 기계부분도 플라모델의 매력중 하나다. / 유승식
벤츠 자동차의 완성 모형. 보닛을 걷으면 나오는 엔진등 기계부분도 플라모델의 매력중 하나다. / 유승식
밀리터리 프라모델은 전차·군용기처럼 군대 물을 축소한 모형이다.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었거나 전쟁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물건들이므로 남자들이 좋아할 분야다.

액션 영화를 중심을 한 많은 영화에서 별의별 무기들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자동차보다도 더 친숙한 존재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모형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큰 것은 아닌 것 같다.

◇ 밀리터리 프라모델의 매력

앞서 어렸을 때 프라모델을 하던 사람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거의 다 그만둔다고 했는데, 필자의
경우는 그만두지 않은 케이스에 속한다.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바로 프라모델을 만들면서 그에 대한 실물을 같이 공부했기 때문이다. 어떤 프라모델이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그냥 조립하고 색칠하는 수준에 머문다면 금세 그만두게 되지만 그에 대한 실물의 역사나 성능, 활약상 등을 알게 되면 이 취미를 계속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예를 들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책상 앞에 붙여놓거나 바탕화면에 깔아두는 행동은 그 연예인에 대한 일종의 애정표현이고, 실제 연예인을 옆에 두지 못한 데 대한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밀리터리 프라모델 또한 어느 멋있는 무기가 어느 전투에서 어느 부대가 사용하면서 어떤 실적을 올렸느냐에 대해 알게 되면 그 모형을 갖고 싶게 되고, 그러고 나면 그 실물과 상대했던 상대방의 무기라든가, 그 실물의 변형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어 또 그 모형을 만들게 된다.

필자가 굳이 밀리터리 프라모델 칼럼에 실물 이야기를 계속 쓴 것도 그 실물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라모델을 접하는 것이 프라모델 취미를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밀리터리 프라모델은 사실은 만들고 색칠하기가 제일 어려운 분야에 속한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많고 완전히 만들고 나면 자부심도 느낄 수 있다.

48분의 1스케일 F-16 전투기 모형. 무기를 주렁주렁 매단 모습이 멋있고 친서방 국가 공통의 전투기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은 기체다. / 유승식
48분의 1스케일 F-16 전투기 모형. 무기를 주렁주렁 매단 모습이 멋있고 친서방 국가 공통의 전투기이기 때문에 인기가 높은 기체다. / 유승식
프라모델의 전성기인 1970년대에서 1990년대 경에는 그냥 대중적이고 누구나 사서 만들 수 있는 물건들이었지만, 이후 컴퓨터의 보급 확대와 함께 프라모델 매출이 떨어지면서 ‘오덕’들을 중심으로 남게 되자 메이커에서는 점점 정밀하고 비싼 제품들을 내놓게 시작했다.

게다가 프라모델 시장의 한 분야인 프라모델 서적들에서 약간 ‘맛이 간’ 필진이 이 모형은 어디가 실물과 모양이 틀리다 느니, 35분의 1 스케일로 축소했을 때 1밀리미터(㎜)가 짧다느니 하는 식으로 사정없이 ‘지적질’들을 해대는 바람에 제품들이 더욱 정교하고 복잡해지는 결과가 되었다.

이런 제품들은 초보자는 만들기가 대단히 어려운데, 메이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시장이 좁으니 살 놈만 사면 된다”는 식으로 내놓다 보니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40년 넘게 모형을 만든 필자도 이런 키트 한번 만들고 나면 완전히 지칠 정도다. 대체로 보면 중국제와 대만제, 동유럽에서 나온 키트들이 이런 현상이 심하고, 한국이나 일본에서 나온 키트들은 그래도 조립의 편의와 정밀성의 중간을 취하는 합리적인 키트를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서유럽제 키트들은 아무래도 복잡한 키트는 거의 없지만 조립에서의 편의성이나 정밀도에 있어서는 제품별로 편차가 심한 편이다. 신기하게도 미국은 제대로 된 프라모델 메이커가 거의 없다.

색칠없이 조립만 한 상태의 Ti-67 전차. 색칠한 것보다는 못하지만 이 정도로 조립수를 늘어가다가 색칠까지 해보고 싶을 때 색칠하면 된다. / 유승식
색칠없이 조립만 한 상태의 Ti-67 전차. 색칠한 것보다는 못하지만 이 정도로 조립수를 늘어가다가 색칠까지 해보고 싶을 때 색칠하면 된다. / 유승식
처음으로 프라모델을 접하시거나 어렸을 때 잠시 해보았다가 다시 해보고 싶으신 분은 가능하면 국산제품이나 일본제를 권하고 싶다. 색칠은 하게 되면 더 멋있겠지만 처음부터 할 필요는 없다.

요즘은 프라모델 매장 직원들도 ‘아는 체’하는 재미에 이런저런 색칠을 못 하면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지만 그냥 소신껏 구입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지난 회에 필자가 쓴 F-117A 스텔스 전투기 이야기를 알고 나서 F-117A의 프라모델을 산다고 하면 국산이나 일본제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일단 조립을 해 보고 나서 또 관심을 갖게 되면 후계 기체인 F-22나 F-35의 모형을 사도 좋을 것이고, F-117A와 맞섰던 이라크군의 장비를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속한 모형클럽의 멤버 4명이 10개월동안 만든 대형 디오라마. 길이 130㎝의 이 디오라마는 무거운 전차를 끌기 위해 트럭 3대를 연결해 견인하는 장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 유승식
필자가 속한 모형클럽의 멤버 4명이 10개월동안 만든 대형 디오라마. 길이 130㎝의 이 디오라마는 무거운 전차를 끌기 위해 트럭 3대를 연결해 견인하는 장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 유승식
밀리터리 프라모델의 또 다른 재미는 바로 ‘디오라마’다. 그냥 덩그러니 놓인 전차와 뭔가 바닥을 제대로 만들어 그 위에 놓은 전차는 분위기가 하늘과 땅 차이다.

48분의 1스케일의 비행장 디오라마.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이 정도의 디오라마는 제작의 난이도가 별로 높지 않은 편이다. / 유승식
48분의 1스케일의 비행장 디오라마.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이 정도의 디오라마는 제작의 난이도가 별로 높지 않은 편이다. / 유승식
디오라마는 프라모델 차량과 인형을 이용하여 어떤 장면을 꾸며놓는 것을 말한다. 물론 만들기가 쉽지는 않고 프라모델 키트의 조립과는 다른 기법들이 많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을 보고 어느 정도 따라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