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암호화폐공개(ICO)를 금지한 지 1년이 지났다. 정부는 최근 암호화폐 거래소를 벤처업종에서 제외하는 등 블록체인은 육성하되, 암호화폐는 투기로 보는 정책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국회가 앞장서 정부에 암호화폐 규제 마련을 촉구하고 관련 입법을 추진 중이다. 암호화폐에 대한 가이드 역할을 할 규제가 전무한 상황이어서 오히려 각종 문제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회에 계류 중인 암호화폐 관련 법안은 5개 이상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7월 대표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이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여야를 막론하고 암호화폐에 대한 정의부터, 암호화폐 관련 업체에 대한 규제, 피해자 보호에 대한 규정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암호화폐 관련 의원 입법만 5개

박용진 의원 등 10명의 의원은 암호화폐를 매매하던 이용자들이 해킹사고를 당하고 다단계판매 등으로 투자사기 행위가 급증하고 있으나, 현행법상 암호화폐의 정의와 암호통화거래에 대한 규정이 없어 암호통화 이용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들은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암호화폐 취급업에 대한 인가 요건 및 인가 신청에 대한 내용을 정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암호화폐 거래업자가 암호화폐 예치금을 예치하거나 피해보상 계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 조선일보DB
여의도 국회의사당. / 조선일보DB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의 의원은 지난 3월 암호화폐 거래소와 거래가 늘면서 자금 세탁 우려가 있으나, 이를 예방하기 위한 법∙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규제 공백 상태를 유지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하태경 의원 역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공백 상태를 우려했다. 하태경 의원 등 10인은 ICO 합법화를 주장하면서도 암호화폐 발행은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의 안전책을 마련해 암호화폐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다져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금융당국, ICO 금지 유지 기류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ICO 금지 정책에 대한 정부의 기조 변화가 있냐고 질의하자 "ICO가 어떤 효과와 부작용이 있을지 해외 사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기존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봐도 되냐는 질문에 대해선 "그렇게 말하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민 의원은 "미국을 비롯해 스위스, 싱가포르 등에서 ICO를 열어주고 있다"고 강조했으나, 최 위원장은 "아직 일반적이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ICO 전면 금지 정책을 당분간 유지할 방침이라는 것임을 시사했다.

여기다 금융감독원은 9월 10일 ICO를 실시했거나 준비 중인 블록체인 기업에 설문지를 보내 실태 조사에 나섰다. 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블록체인 기업 현황은 물론 ICO 진행 국가와 발행 물량, 국내 거주자에게 배정된 물량 등 52개 항목을 조사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감독기관이라는 금감원의 성격상 ICO를 허용하기 위한 조사가 아닐 것"이라며 "질문 내용 자체가 불법 행위를 조사하려는 것으로,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 등을 만들어 ICO 금지 정책을 우회하려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는 차원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암호화폐 열풍이 불어닥친 지난해 9월 모든 형태의 ICO를 금지하기로 했다. 정부가 법적 조치 없이 ICO 금지를 선언한 것에 불과하지만, 국내 ICO는 사실상 얼어붙은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