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추운 날씨 탓에 도로가 자주 얼어 자동차를 몰기에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 없다. 때문에 1924년 경제학자인 아서 가브리엘손과 철강회사 SKF의 엔지니어 구스타프 라르손은 식당에서 바닷가재를 먹던 중 바닷가재처럼 튼튼한 차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고, 1927년 첫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다. 볼보차 탄생의 순간이다.

. / 볼보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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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특유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높은 수준의 성능과 안전성의 발휘는 볼보차에게 있어 ‘생존조건’과 같다. 헤드램프의 활성, 와이퍼의 펼침 정도, 실내 각종 기능 버튼 위치, 각도를 조절할 수 없는 2열 시트 모두 안전과 관계된 것들이다.

또 볼보차는 21세기에 들어서는 뒷바퀴굴림차를 만들지 않았다. 앞바퀴굴림이 여러모로 자동차 만들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대신 앞바퀴굴림차의 단점인 언더스티어(곡선주로에서 도로 바깥으로 나가려는 성질)를 해결하기 위해 토크벡터링(좌우 바퀴에 구동력을 따로 보내주는 기술)을 판매 차종에 보편적으로 적용했다. 그간 자동차 회사들이 보여주지 않은 정책으로, 역시 안전을 위한 조치다.

이런 볼보차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차량 중 하나가 왜건이다. 왜건은 엔진룸이 돌출돼 있으면서 트렁크룸의 높이가 세단과 달리 높고, 해치백 형식으로 된 자동차를 이른다. 특유의 실용성 덕분에 유럽과 북미에서는 오랜 시간 사랑 받아왔다. ‘왜건=볼보차’라는 공식이 통할 정도다.

다만 최근 SUV의 전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최대 시장으로 분류되는 중국 및 아시아 등지에서는 SUV 스타일의 제품이 각광을 받는다. 현재 볼보차의 무게 중심도 SUV 쪽으로 쏠려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볼보차는 왜건과 세단에도 SUV의 유전자를 이식하기 시작했고, ‘크로스컨트리’라는 크로스오버 제품을 만들었다. ‘세단처럼 편안하고, 왜건처럼 실용적이며, SUV처럼 강인한 모델’로서의 특징을 지닌다.

크로스컨트리는 본래 노르딕 스키의 한 갈래로, 스웨덴이 속해 있는 노르딕 지역에서 스키를 통한 장거리 이동을 스포츠화한 것이다. 들판과 언덕을 스키로 내달리는 탐험가의 모험 수단이 바로 크로스컨트리라고 할 수 있다. 볼보차는 20년전부터 XC라는 이름에 ‘크로스컨트리’의 정신을 새겨왔다.

크로스컨트리의 매력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 볼보차가 태어난 스웨덴을 찾아 차에 올랐다.

◇ 모험에 특화된 차, 크로스컨트리

크로스컨트리는 모험에 특화된 차다운 재능이 뛰어나다. 먼저 기본이 되는 V60에 비해 지상고를 75㎜ 높여 어떤 지형에서든 수준있는 기동성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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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이 이뤄진 룰레오는 스웨덴 북부 노르보텐주에 속해 북극권에 가까워 겨울철에는 완전히 눈과 얼음에 덮히는 곳이다. 룰레오와 같은 지역에서 크로스컨트리는 100%의 능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승 당시 얼어붙은 바다 위를 크로스컨트리로 달리면서 볼보차 인스트럭터가 가장 강조한 내용은 "마음껏 미끄러져 보라"였다. 비슷한 곳에서 아이스 드라이빙 행사를 여는 경쟁 브랜드가 얼음과 눈위에서 자유롭게 미끄러지면서 운전 스킬을 높이는데 주력하는 것과 다르게, 볼보차는 아무리 ‘미끄러져 볼래도 미끄러지기 어렵다’는데 방점이 찍힌다. 이 또한 안전에 중점을 둔 브랜드 철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크로스컨트리 전용으로 세팅된 투어링 섀시와 서스펜션은 눈과 얼음길 위에서도 안정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할덱스가 만들어낸 5세대 네바퀴굴림 시스템이 모든 날씨와 도로 상황에 구애받지 않도록 돕는다. 이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모듈식 설계로 이뤄졌다. 전자식 콘트롤, 전기식 유압공급펌프, 습식 다판 클러치가 통합된 ‘액티브 온 디맨드 커플링’이 적용됐다.

. / 볼보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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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티브 온 디맨드 커플링은 지속적으로 바퀴의 회전속도와 추진력, 엔진 토크, 엔진 회전, 브레이크 등을 모니터링 해 마찰력이 높은 휠에 출력을 모아준다. 건조 도로에서는 차체 안정성과 연료효율을 최대화하기 위해 거의 모든 동력을 앞바퀴에 모으고, 바퀴 미끄러짐이 감지될 경우 앞뒤 바퀴의 구동력을 즉각 배분해 사고의 가능성을 줄인다.

얼음 위에서 속도를 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밖으로 밀려나갈 정도로 원심력이 걸렸으나, 차는 자세를 금새 잡아냈다. 분명히 휘청거리며 미끄러져야 하는데, 마치 도로를 움켜쥐는 듯하다. 조금 과장하면 일반 도로를 달릴 정도로 안정성이 뛰어나다.

물론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계를 넘어서면 차가 돈다. 놀라운 차체 자세 제어에 감동하면 힘을 더 줬더니 코스 밖으로 차가 향한다. XC90이 큰 몸집을 굴려 서둘러 구하러 왔다. 하지만 그 한계에 임박하기 직전의 거동은 기대 이상이다. 괜히 모험을 위한 차라고 자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 신뢰해도 좋은 동력계, 충분한 성능이 강점

볼보차가 세계적 수준의 터보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스웨덴의 터보기술은 그 나라만의 독특한 유전자로 이해된다. 바로 자동차 세금을 배기량 기준으로 매기는(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세제 때문인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배기량 2.4리터를 넘을 경우 세금 상승률이 꽤 크다. 때문에 저배기량으로도 고출력을 내기 위한 터보 기술이 발달했다. 여기에 환경규제로 인해 배기량을 키워 성능을 높이는 방법은 지양되는 부분도 역설적으로 터보기술의 발달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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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판매 크로스컨트리는 254마력의 최고출력을 확보한 직렬 4기통 T5 가솔린 터보 엔진을 올린다. 운좋게 스웨덴에서도 동일한 엔진을 탈 수 있었다. 여기에 T8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도 준비됐지만, 현재까지 국내 출시 계획은 없다. 혹, 크로스컨트리가 많이 팔리면 볼보차코리아도 출시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변속기는 8단 자동을 붙인다. 여기에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도입했다. 세단과 거의 동등한 수준의 주행감각을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가솔린 특유의 끈적한 속도 상승이 반갑다. 최근 몇년간 국내 수입차 시장은 디젤엔진 일색으로 흘러 순발력이 강조돼 가솔린 엔진의 감성은 대부분 잊고 살았다. 볼보차는 2년전부터 대부분의 라인업을 가솔린 엔진으로 채우는 중이다. 물론 현재 주력하는 SUV 제품군에는 디젤이 더 어울린다는 지적이 적지 않으나, SUV도 편하게 타고 싶다는 소비자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가솔린 엔진은 속도를 올리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뭉근한 속도감에 좋은 기분을 느낀다. 얼음 바다 위 주행에 앞서 룰레오 인근의 일반도로를 주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아주 편안한 주행이 이어졌다. 소음과 진동이 적은 가솔린 엔진의 특성도 꽤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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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에서 나오는 힘은 8단 변속기를 통해 바퀴로 전달된다. 그리고 각 바퀴에 걸리는 힘은 실시간으로 조절된다.

◇ 안전의 볼보, 누구나 다치거나 죽지 않게

2020년까지 볼보차로 인한 사망자나 부상자가 없도록 하겠다는 볼보차의 ‘비전 2020’은 가장 앞선 안전정책으로 꼽힌다. 이를 위해 1970년대부터 가동된 볼보 세이프티 센터는 전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분석한다. 모든 상황에서 가장 안전해야 한다는 볼보차의 철학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회사의 방향성은 기술로써 구현된다. 크로스컨트리라고 특별히 다르지 않다. 밤낮에 관계없이 자동차, 보행자, 사이클, 대형 동물을 인지해 스스로 멈춰서는 시티세이프티는 볼보 안전철학을 대변한다. 스웨덴에서는 특히 대형동물과의 충돌사고가 가장 빈번하다. 때문에 2010년대 후반까지 볼보차 실내 디자인은 매우 심플하게 이뤄졌다. 각종 기능을 조작하느라 전방 상황에 대한 주의력을 잃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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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크로스컨트리는 어댑티브 크루즈 콘트롤과 차선유지보조, 파일럿 어시스트 등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갖춘다. 이런 기술 덕분에 부분자율주행이 가능하다.

단, 대부분 눈길인 스웨덴의 겨울에는 차선유지보조가 상당히 어렵다. 차선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 브랜드는 앞차를 추적하는 기술로 차선이 없는 지역에서의 움직임을 보완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볼보차에서 이 전방 차량을 추종하는 차선유지기능은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 마티아스 로버트슨 볼보차 세이프티 센터 매니저는 "볼보차의 파일럿 어시스트(부분 자율주행을 가능케 하는 기술)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차선을 인식해야 한다. 바로 안전 때문"이라며 "미래 자율주행 시대에서도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하려면 완벽히 차선을 인지할 수 있는 구간이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시 말해 앞차를 추종하는 것은 볼보가 지향하는 안전상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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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차의 현재 슬로건은 ‘디자인드 어라운드 유(Designed Around You)’로, 소비자를 둘러싼 모든 것을 디자인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는 생활방식과 안전, 주행 및 효율, 친환경 등 자동차 생활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볼보차의 책임감을 보여주겠다는 다짐이다. 이 철학에 맞춰 세대를 바꾼 모든 제품이 현재 전세계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줄을 이어 볼보차를 사겠다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크로스컨트리도 그렇다. 다양한 생활방식을 가진 소비자에 모두에게 가장 적합한 솔루션을 제안하고, 취향을 모두 만족한다. 그렇게 본다면 크로스컨트리의 시장 성공 잠재력은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국내 사전계약 중인 크로스컨트리는 두가지 트림 구성이다. 기본형인 크로스컨트리는 5280만원, 고급형인 크로스컨트리 프로는 5890만원이다. 3월초 공식 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