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과 니콘, 소니와 올림푸스. 일본 광학 기업은 오랫동안 세계 디지털 이미징 시장을 주도했다. 한국 기업이 낄 자리가 없다. 이 기업을 뺀다면 그렇다. 교환식 렌즈 서드파티(호환 제품) 제조사 ‘삼양옵틱스’다.

‘삼양광학공업’으로 시작한 삼양옵틱스는 아날로그 시대, 실력 있는 SLR 카메라 교환식 렌즈 제조사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쳤다. 디지털로 급변한 광학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2013년 수백억원대 적자를 기록한 채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수렁에 빠진 삼양옵틱스를 다시 양지로 이끌어낸 사람이 있다. 2013년 취임한 황충현 대표다. 그는 삼성전자 이미징 부문 상품기획·마케팅 담당 임원 출신이다. 그 경험을 살려 사업 구조와 체질 개선에 나섰다.

황충현 삼양옵틱스 대표. / 차주경 기자
황충현 삼양옵틱스 대표. / 차주경 기자
황 대표는 삼양옵틱스의 주력 CCTV 렌즈를 과감히 포기하고 기존 강점인 SLR 카메라용 MF(Manual Focus, 수동 초점 렌즈) 렌즈 제작에 몰두한다. 이어 35㎜ 카메라용 렌즈, 영화 촬영용 시네마 렌즈를 개발하고 AF(Auto Focus, 자동 초점) 및 미러리스 카메라용 교환식 렌즈 제품군도 마련했다.

그의 도전은 성공이라 평가할 만하다. 2018년에 매출 604억6000만원에 영업이익 141억4300만원을 올렸다. 지난 2일 황 대표를 서울 역삼 삼양옵틱스 본사에서 만났다. 부활 비결과 향후 광학 시장 전망이 궁금했다.

◇ "틈새 시장 노리고 미래를 대비한 게 유효했다"

황 대표가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업계 내 삼양옵틱스 브랜드 위치다. 교환식 렌즈 부문에서 삼양옵틱스를 비롯한 서드파티 브랜드의 입지가 좁다. 업계는 캐논과 니콘 등 메이저 브랜드 렌즈 판매량을 85%, 서드파티 브랜드 렌즈 판매량을 15%쯤으로 추산한다.

황 대표는 당시 삼양옵틱스 제품군이 시장 경쟁을 하기에 너무나도 빈약했다고 말했다. 인기 제품인 자동 초점 렌즈는 없었다. 부가가치가 낮고 변별력도 떨어지는 주문자생산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황 대표는 다른 브랜드가 집중하지 않던 틈새 시장 ‘MF 렌즈’를 눈여겨 봤다.

당시 MF 렌즈 시장은 독일 광학 명가 ‘자이스’가 장악했다. 삼양옵틱스는 고가 정책을 펼친 자이스에 맞서 싸고 좋은 렌즈를 선보이는 ‘대중화 전략’을 폈다. 고화질에 가격도 저렴한 삼양옵틱스 렌즈는 단시간에 인기를 끌었다. ‘삼자이스(삼양옵틱스 + 자이스)’라는 별명도 얻었다.

MF 렌즈 성공에 고무된 황 대표는 2015년 ‘영상 촬영용 렌즈’로 눈을 돌린다. 디지털 카메라에 영상 촬영 기능이 속속 추가되며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영상 촬영용 렌즈가 부족한 때였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비롯한 MCN(Multi Channel Network) 업계도 고화질 영상 촬영 기기를 찾았다.

황 대표는 ‘이미지 센서 크기와 화소수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늘 생각한다. 당시 전문가용 영상 카메라 업계에는 35㎜ 규격보다 이미지 센서 크기가 작은 슈퍼35㎜, APS 규격 비디오 카메라가 유행했다. 그는 사진뿐 아니라 영상 업계에 35㎜ 제품군이 대세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고급 시네마 렌즈 브랜드 ‘XEEN’을 만들었다.

삼양옵틱스 시네마 렌즈 XEEN 제품군. / 삼양옵틱스 제공
삼양옵틱스 시네마 렌즈 XEEN 제품군. / 삼양옵틱스 제공
경쟁 렌즈보다 다루기 쉽고 부피도 작았던 삼양옵틱스 XEEN 렌즈는 출시 직후부터 인기를 끌었다. 당시 시네마 카메라 업계 맹주였던 자이스, 아리 제품과 또다른 매력을 보인 덕분이다. 시네마 카메라 및 렌즈 부문은 매우 보수적으로 수십년간 혁신이 없었다. 황 대표는 이 점에 착안해 삼양옵틱스 XEEN 렌즈를 보완했다.

한국 영화 감독들이 이 렌즈를 주목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동주’, ‘항거’ 등이 삼양옵틱스 XEEN 렌즈로 촬영했다.

황 대표가 새로 주목하는 분야는 ‘35㎜ AF 렌즈’다. 교환식 렌즈 전체 시장에서 MF 렌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5%뿐이다. MF 렌즈로 세운 삼양옵틱스의 사업 영역이 AF 렌즈 시대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직감한 그는 개발자를 영입하고 35㎜ 기술력을 가다듬었다.

2016년 말 삼양옵틱스는 AF 기술을 개발, DSLR 및 미러리스 카메라용 AF 교환식 렌즈를 선보였다. "화질을 유지한 채 렌즈마다 다른 AF 특성을 파악하는 것, 브랜드 충성도를 뛰어넘고 삼양옵틱스 인지도를 높이는 것,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 교환식 렌즈 제조사와 겨루는 것,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고 황 대표는 말했다.

그의 선택은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 ‘알파 마운트 렌즈’를 우선 출시하는 것이었다. 업계에서 신진 세력이라는 점, 젊은 소비자가 많다는 점에서 소니 미러리스 카메라와 삼양옵틱스 렌즈의 궁합이 좋았다.

이어 삼양옵틱스는 캐논 미러리스 카메라 ‘RF 마운트 렌즈’도 선보였다. 고가인 RF 렌즈와 달리 가격을 낮췄다. RF 렌즈에 없는 단초점, 광각 렌즈를 출시했다. 미러리스 카메라 고유의 촬영 편의와 MF 렌즈 고유의 사용자 경험을 녹여낸 것은 물론이다.

◇ 지금은 디지털 전환 과도기…사진 시장 자체는 크게 줄지 않을 것

일본 광학 제조사는 제품 개발 주기를 대개 24개월로 잡고 연간 교환식 렌즈 신제품을 5개 전후로 선보인다. 삼양옵틱스는 연구개발 인력을 3배 이상 확장, 개발 주기를 단축하고 제품 종류를 늘린다. 올해에만 삼양옵틱스 교환식 렌즈가 10개 이상 나온다. 황 대표는 "오랜 역사와 충실한 라인업을 가진 일본 광학 기업과 경쟁하려면 변화와 속도가 생명"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고충이 없을 수 없다. 황 대표는 최근 광학 업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하는 중간 과정, 즉 과도기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전통 광학 기술이 적용된 SLR 카메라가 지고, 디지털 기반 미러리스 카메라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교환식 렌즈 제조사는 제품 개념과 연구 방법, 장비와 인력 운용을 디지털로 바꾸고 양산까지 성공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2010년 세계 디지털 카메라 생산량이 1억2000만대를 넘었으나, 2018년에 1950만대로 쪼그라들었다. 꾸준히 줄고 있는 광학 시장 규모도 삼양옵틱스에게 시련이다.

황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학 시장에 기회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 유럽 광학 기기 전시회 인원은 꾸준히 늘고 있다. 광학 업계가 과도기이기에 소비자는 신제품을 사지 않고 완성된 제품이 나오기까지 관망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스마트폰은 디지털 카메라와 교환식 렌즈의 적이 아니라 벗이 될 수 있다. 초보 사용자가 실력을 단계적으로 쌓아가는 이른바 ‘스텝 업(Step up)으로 새 수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사진을 처음 배우는 입문자가 쓰기에 적합하다. 이들이 사진에 익숙해지면 더 좋은 화질, 더 우수한 기능을 가진 카메라를 원한다. 자연스레 디지털 카메라와 교환식 렌즈를 찾게 된다.

스마트폰은 디지털 카메라 시장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사진 인구를 늘린다. 그렇기에 사진 시장 자체의 규모는 비교적 견조하게 유지되리라는 것이 황 대표의 시장 전망이다.

황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미루어 광학 기기 업계 패러다임이 30년마다 크게, 10년마다 작게 바뀐다고 분석했다. 1989년 캐논은 EOS 1으로 SLR 카메라 시대를 연다. 니콘은 1999년 플래그십 DSLR 카메라 D1을 출시한다. SLR 카메라는 30년간 시장을 지배했다.

1989년에서 30년이 지난 지금 캐논과 니콘은 미러리스 카메라에 주력한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은 2010년 최고점을 찍었다. 그렇기에 10년 주기에 해당하는 2019년~2020년 다시 변혁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황 대표는 ‘패러다임 변화를 이끄는 것은 항상 소비자였으며 소비자가 쉽고 재미있게 쓸 수 있는 제품은 늘 성공한다’는 철학을 가졌다. 삼양옵틱스 인기 제품 MF 렌즈, 시네마 렌즈와 AF 렌즈 역시 이러한 철학에서 개발됐고 성과를 낸 제품군이다.

그는 투자와 전문 인력, 기술 부족을 삼양옵틱스 한계로 인정했다. 그렇기에 섣불리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기업 역량에 맞고 광학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사업에 승부를 걸 계획이다. AF 렌즈 부문에서 터를 닦고, XEEN 렌즈로 영상 부문을 공략한다. 한편으로는 아날로그 고유의 사용자 경험을 교환식 렌즈에 도입하고, 크리에이터를 비롯한 신규 수요에도 대응한다.

황 대표는 "오늘날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업계를 이끄는데, 이들의 근간이 시각 정보 입력, 즉 광학 기술"이라며 "한국 광학 기술 및 시장을 이끈다는 사명감을 갖고 미래를 대비, 100년 가는 광학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