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페이를 둘러산 논란이 날이 갈수록 거세진다.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당국, 각 지자체 등 정부가 나서 제로페이 활성화에 사활을 걸었지만 이용률은 저조하기만 하다. 관제페이라는 오명을 뒤로하고 정부가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등 심폐소생술을 하지만 밑빠진 독에 물을 들이붓는 형국이다.

제로페이는 계좌이체 방식의 간편결제 시스템으로 결제 수수료를 대폭 낮춰 소상공인 비용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로 중기부와 서울시가 지난해 12월부터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2월부터는 전국으로 확대됐다.

 6월 28일 오후 서울시가 청계광장 일대에서 개최한 ‘우리 먼저 제로페이’ 행사장은 시민들에게 외면당해 썰렁하기만 하다. / IT조선
6월 28일 오후 서울시가 청계광장 일대에서 개최한 ‘우리 먼저 제로페이’ 행사장은 시민들에게 외면당해 썰렁하기만 하다. / IT조선
◇소비자는 외면

6월 28일 서울시는 청계광장 일대에서 범국민 제로페이 소비운동 '우리 먼저 제로페이' 행사를 개최했다. 가맹점 확보가 아닌 일반 소비자들의 이용을 확대하자는 목적이다. 이날 열린 제로페이 이용 선언식에 소상공인연합회 등 소상공인단체와 한살림, 대한노인회 등 민간단체, 한국소비자 연맹 등 소비자단체로 총 20여개의 단체가 동참했다.

반응은 냉랭했다. 오후 3시 행사장은 썰렁하기만 했다.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모양새다. 행사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본행사가 열린 1시쯤에만 잠깐 사람들이 몰렸을 뿐 이후부터 관심을 갖는 시민이 거의 없었다"며 "굳이 이런 행사를 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소비자 외면은 수치로도 확인됐다. 국회 산업통산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박맹우 의원(자유한국당) 측이 중소벤처기업부와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제로페이 사용현황 자료를 공개했다. 제로페이를 출시한 2018년 12월 20일부터 올해 5월 10일까지 제로페이 사용 건수는 36만5000건, 사용금액은 57억원이다. 같은 기간 신용카드 사용 건수 49억건, 사용금액 266조원, 체크카드 사용 건수 32억건, 사용금액 74조원과 비교하면 턱없이 초라하다.

서울 마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윤모씨는 "식당 손님 중 단 한번도 제로페이로 결제하겠다는 경우는 없었다"며 "공무원까지 나서 제로페이 가맹점 신청을 해 달라고 졸라서 가입을 했지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청 인근이나 정부종합청사가 자리한 광화문 일대마저 제로페이 사용자는 흔치 않다. 공무원들에게 조차 외면당하는 모양새다. 광화문 인근 한 식당 점원은 "한 달에 두세건 정도 제로페이 결제가 이뤄지는 듯 하다"며 "일반인은 아닌 듯하고 시청이나 인근 공무원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식당에 붙어 있는 제로페이 안내. / IT조선
서울시내 한 식당에 붙어 있는 제로페이 안내. / IT조선
◇ 밑 빠진 독에 ‘세금’ 붓기

제로페이는 이처럼 소비자에게 철저히 외면당하지만 정부는 제로페이 알리기에 열을 올린다. 일각에서는 소비자 반응이 제로라서 ‘제로페이’라는 놀림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수십억 예산만 들어가는 전형적인 ‘세금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나온다.

1일 중소기업벤처부는 7월부터 9월까지 부산에서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7% 페이백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중기부 관계자는 "이번 부산시 제로페이 7% 페이백으로 지방에서도 제로페이가 널리 홍보돼 지역골목상권을 살리는데 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 현금을 돌려준다는 내용으로 해석된다.

박맹우 의원은 최근 "실효성 논란이 인 '제로페이'에 정부는 추가경정예산 76억원을 추가 배정했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 측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제로페이 관련 추경 요청예산 세부내역’을 살펴보면 정부는 제로페이 인프라 구축에 50억원, 홍보와 마케팅 비용에 26억원을 배정했다.

앞서 서울시는 제로페이 홍보를 위해 지난해 10월 31일부터 12월 13일까지 약 두달간 34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시와 중기벤처부는 98억의 세금을 더 투입해 제로페이를 홍보할 계획이다.

여기에 정부는 제로페이 결제단말기(QR리더) 구매비 22억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당초 정부는 가맹점 모집 대행사가 직접 단말기를 구매해 가맹점에 무상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최근 이를 폐기했다. 문제로 제기된 우회 리베이트 논란을 불식시키고 가맹 모집 대행사가 재고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적 악순환을 해결하려는 조치다.

5월에는 서울시의회가 박원순 시장이 발의한 제로페이 조례 개정안 18건을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제로페이 가맹점 확보와 이용실적이 저조한 상황에서 공공시설 할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최근 은행에도 손을 벌려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는 제로페이 전담 운영법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에 협조해 달라며 은행에 각 10억원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상공인 카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제로페이를 만들더니 슬그머니 제로페이 전담 운영법인(SPC)를 설립한다.

업계는 결제시장에 개입해 수수료율까지 통제하려는 제로페이가 ‘관제(官製)페이’라는 지적을 받자, 운영권을 외형적으로 민간에 넘기는 운영법인 설립을 추진하면서 은행들에 손을 벌렸다고 지적한다.

◇ 사라진 명분…누구를 위한 제로페이 활성화인가

정부는 제로페이가 소상공인을 위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곳까지 보급을 독려한다.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이마트24 등 전국 편의점은 물론 SPC그룹 배스킨라빈스와 던킨도너츠 등 직영점 등이다. 최근에는 스타벅스 직영 매장에서도 제로페이 사용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맹점주도 소상공인에 속한다. 서비스 확산에 대기업 프랜차이즈 도움도 절실하다. 그렇다 할지라도 제로페이 활성화가 된다면 결국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좋은 일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대기업이 낮춰줘야 할 카드수수료를 세금으로 메꿔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민간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미 시장에는 다양한 간편결제 서비스가 등장했다. 그런데 제로페이를 정부가 밀어부쳐 시장 경쟁 논리를 무너뜨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제로페이 도입 초기부터 여러 논란이 있었다"며 "정부는 다양한 서비스들이 활성화될 수 있게 정책적으로 지원을 하지 않고 사업자들과 경쟁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벤처부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제로페이가 도입된지 1년이 안된 상황"이라며 "초기이기 때문에 자리를 잡고 하면 효과가 나올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서는 QR결제 단말기가 필요해 활성화를 위한 지원은 필요하다"며 "이 역시 초기 활성화를 위해 단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일 뿐 계속된 세금 투입이 이뤄지는 건 아니기 때문에 너무 나쁘게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