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상욱 KAIST 교수
"병역혜택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라 자부심이 걸린 문제"

국방부가 전문연구요원 병역특례 감축을 강행하려 하자 과학기술인과 산업계가 허탈해 한다. 특히 이 제도를 통해 연구성과를 거둔 연구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탈감은 집단 반발로 이어졌다.

전문연구요원제도는 병역 대상자가 군에 입대하는 대신 연구기관이나 산업체에서 근무하며 과학기술 연구에 종사하도록 돕는 제도다. 박사급 1000명, 석사급 1500명씩 매년 2500명을 선발한다.

국방부는 석·박사 정원을 절반으로 줄이거나 박사 정원을 유지하되 석사 정원을 3분의 2가량 감축하는 방안, 박사급 인력만 유지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이르면 이달 말 최종 개편안을 마련한다. 어쨌든 수년 내 전문연구요원 연간 정원이 최대 1500명이 줄 판이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기술전쟁을 계기로 원천기술 경쟁력을 한층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역행하는 병역특례 축소다. 현장의 불만이 고조됐다.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는 지난 5일 정부에 전문연구요원제도 확대를 공식 요구했다. 지난달 카이스트(KAIST)를 비롯한 4개 과학기술원 교수협의회와 교수평의회가 제도 축소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김상욱 KAIST 교수(신소재공학과)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연구 현장 분위기를 들었다. 그는 전문연구요원제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 "장기간 인내의 길 걷는 연구자를 배려해야"


김상욱 카이스트 교수. / 카이스트 제공
김상욱 카이스트 교수. / 카이스트 제공
김 교수는 무엇보다 훌륭한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의 의지가 꺾일까 우려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연구원들이 연구 중간에 영장이 날라오지 않을까 걱정한다"며 "다녀오면 다시 처음부터 연구를 시작해야 하니 손실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병역특례가 없으면 돈을 벌려고 빨리 취직하는 근시안적인 길만 가려 할 것"이라며 "오랜 시간을 투자해 세계적인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나라가) 배려해주지 않으면 그 길은 힘든 가시밭길이 되며 아무도 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문연구요원제도 축소가 단순히 병역혜택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바라봤다. 그는 "과학기술자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며 "고생해도 대접을 못 받는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갈수록 심화하면 결국 똑똑한 인재들은 대접을 잘 해주는 곳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이 부품소재 원천기술을 개발하지 못해 이뤄진 사태인 만큼 과학기술 연구개발(R&D)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형성된 것에 그나마 안도감을 표시했다.

김상욱 교수는 카이스트 화학공학과에서 학사와 석·박사 학위까지 다 받았다. 박사 후 카이스트와 위스콘신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2003년엔 삼성SDS에서 책임컨설턴트도 했다. 2004년부터 쭉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 교수로 일한다.

나노기술과 신소재 분야의 권위를 인정받는 과학기술인이다. 다차원 나노조립제어 창의연구단장, 그래픽산화물 액정섬유센터 연구단장 등을 맡았다. ‘젊은 과학자상',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등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특히 탄소소재 물성과 구조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기술을 통해 광범위한 응용 소자를 개발하는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교수야말로 전문연구요원제도의 긍정적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는 병역특례 기간에 미국에서 반도체 관련 획기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김교수는 "다시 한국에 들어와 국내 반도체 기업들과 관련 연구를 진행 해 성과를 거뒀다"며 "병역특례제도를 통해 더욱 안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제도 악용한 소수로 다수 인재가 피해보는 일은 없어야"
김 교수는 "전문요원연구제도는 스포츠인 특례와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스포츠는 사람의 생사가 걸려있지 않아요. 먹거리는 과학기술과 산업에서 창출됩니다. 과학기술이 무너지면 국민들 다 같이 못 먹고 못 살게 되는 생사 문제로 이어집니다."

그는 이어 "과학기술은 무에서 무한대를 창출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며 "일부 특례제도를 악용한 소수로 인해 열심히 연구하는 다수 인재들의 혜택까지 빼앗고, 긍정적인 제도의 이미지를 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기술 이전의 문제와 인력 유출의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고급인력들이 해외로 유출되면 결국 지금의 미국처럼 외국인들을 영입할 수밖에 없다"며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여서 괜찮지만 그렇지 않은 우리는 더 많은 기술이전 문제가 발생하며, 장기적으로 과학기술 성장동력이 꺾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