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동 IP컨설턴트
유경동 IP컨설턴트
지난달 보급형 전기차 세단 ‘모델3’의 공식 주문접수가 한국에서 시작됐다. 때마침 영화 ‘커런트 워’가 국내에 전격 개봉되면서, 모델3의 제조사 바로 ‘테슬라’에 대한 관심이 새삼 커지고 있다.

커런트 워에서도 잘 묘사돼 있지만, 영악한 에디슨에 맞서 특허전쟁을 펼치는 천재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에서 사명을 따 설립된 테슬라는, 2019년 상반기에만 전년대비 124% 증가한 16만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전세계 자동차 판매대수가 6.4%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약진이다. 특히 올들어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의 모델3와 모델S는, 모두 부동의 1위 GM의 볼트를 누르고 판매순위 1, 2위를 각각 차지했다.

북미시장 전기차 판매 현황./ 자료: 인사이드EVs
북미시장 전기차 판매 현황./ 자료: 인사이드EVs
여러 통계자료 속에서, 내연기관의 종말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전기차 시대의 총아 테슬라는, 지금 어떤 특허전략으로 그들이 펼쳐놓은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특허공개에 숨은 전략
테슬라 특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특허 개방’이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한 이 회사 CEO 엘론 머스크가 지난 2014년 깜짝 발표한 ‘IP 오픈’ 선언에 따르면, 테슬라가 보유중인 모든 특허는 선의로 기술을 사용하는 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기존 내연기관 업계에 맞서, 전기차 시장 파이부터 키우겠다는 얘기다. 마치 구글이 안드로이드 소스를 오픈한 것과 같은 방식과 동일해, 당시 전세계적으로 크게 화제가 된 바 있다. 엘론 머스크 특유의 스타성에, 생태계 조성을 위한 대인배 코스프레까지 덧붙여져, 이후 테슬라는 투자와 마케팅에서 적잖은 이득을 본 게 사실이다.

자, 그럼 5년여가 지난 지금, 관련 시장은 어떻게 됐을까. 전기차 업계는 급속도로 커지고 해당 생태계 역시 자리를 잡은 건 맞다. 그러나, 이게 앨런 머스크의 깜짝 선언 때문만은 아녀 보인다.

테슬라 특허를 상대로 미국 특허청에 청구된 ‘무효심판’ 건수만 봐도 그렇다. 테슬라 특허 총 7건이 무효심판에 피소됐다. 심지어, 이 가운데 5건은 테슬라의 ‘특허공개 선언’이 있는 2014년 이후 등록된 특허다. 당초 앨런 머스크의 선한 취지대로였다면, 7건 모두 굳이 무효심판장까지 갈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이다.

테슬라의 특허무효심판 피청구 특허./ 자료: USPTO·Biz-IP
테슬라의 특허무효심판 피청구 특허./ 자료: USPTO·Biz-IP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 누구나 자신의 기술을 쓸 수 있게 하겠다면, 애초에 특허 자체를 내지 말았어야 옳다. 그런데도 테슬라는 지금도 매년 최대 100건에 육박하는 특허를 쏟아낸다. 특허는 ‘독점’을 전제로 존재한다. 따라서 ‘개방’이라는 말과 태생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 우리가 테슬라의 특허개방 전략, 그 이면을 째려봐야 하는 이유다.

테슬라 특허출원 추이./ 자료: USPTO·Biz-IP
테슬라 특허출원 추이./ 자료: USPTO·Biz-IP
배터리에 초집중
2019년 8월말 현재, 테슬라는 총 617건의 US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437건, 즉 70% 가량이 과열방지와 충전, 배터리 팩 등 배터리 관련 기술에 집중돼 있다. 단순 특허 숫자만 그런게 아니다. 타 업체가 특허를 낼 때, 테슬라 특허를 얼마나 참고했나를 나타내는 ‘특허 피인용도’에서도, 전체 인용의 약 75%를 배터리 관련 특허가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 단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체 차량 가격의 절반 가량을 점한다. 그만큼 배터리의 생산 단가를 낮추고 용량을 늘리는 기술에, 모든 전기차 업체가 총력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가운데 2018년 11월 공개된 ‘배터리 팩을 이용한 측면충격 흡수·분배 시스템’이라는 특허를 보자. 테슬라는 전통적으로 파나소닉 등으로부터 독점 공급받는 ‘원통형 배터리’를 고수하고 있다. 이 방식은 가격이 싸고, 고출력이 가능한 반면, 부피가 크다. 바로 이런 단점을 이용해 큰 몸집의 배터리 팩을 자동차 충격 흡수재로 활용한다는 게 이 특허의 골자다.

테슬라 원통형 배터리./ 자료: 블룸버그
테슬라 원통형 배터리./ 자료: 블룸버그
수천개의 원통형 배터리가 병렬과 직렬로 연결돼 크고 묵직한 팩 형태로, 차량 하부에 장착된다. 이를 차량의 여러 종방향 채널과 도어 등에 연결해 측면으로부터 오는 충격을 순간적으로 흡수, 이를 다시 수천개의 여러 배터리에 분산시켜 탑승자를 보호한다.


배터리 팩을 이용한 측면충격 흡수·분배 시스템 도면./ 자료: USPTO·Biz-IP
배터리 팩을 이용한 측면충격 흡수·분배 시스템 도면./ 자료: USPTO·Biz-IP
또다른 특허 하나 보자. 2017년 12월 공개된 ‘통합 냉각제 어셈블리’라는 특허다.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여러나라에서 전기차 화재사고 소식 심심찮게 들린다. 배터리 과열 문제는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가장 큰 선결 과제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여러 배터리를 팩으로 연결하는 원통형 방식의 경우, 과열 문제가 항상 대두되곤 한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엔진 등 주변 기계장치를 통해 냉각제를 기동시키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과열에 취약한 배터리를 전용 에너지 공급없이도 지속 냉각이 가능토록 했다는 게 이 특허의 설명이다.

‘통합 냉각제 어셈블리’ 특허 도면./ 자료: USPTO·Biz-IP
‘통합 냉각제 어셈블리’ 특허 도면./ 자료: USPTO·Biz-IP
테슬라 특허를 전체적으로 보면 단연 ‘배터리’ 관련 기술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2년간 가장 큰 출원량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배터리가 아니다. 차량 컨트롤이나 내비게이션 등을 담당하는 이른바 ‘Data Processing’ 분야다. 이 기간 테슬라 전체 출원 특허의 절반 이상을 데이터 프로세싱이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해, 테슬라는 이미 배터리 분야에선 어느 정도 기술적 완성도에 올라섰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기계나 장치분야의 특허 대신, 차량의 플랫폼화를 위한 컴퓨팅 영역의 기술 개발이 집중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모델S’에는 각종 계기판과 조작 버튼 대신 17인치 터치스크린(태블릿)이 장착됐다. 터치스크린은 자동차 주요 기능을 제어하는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단말기로 인터넷 연동된다./ 자료: 테슬라
‘모델S’에는 각종 계기판과 조작 버튼 대신 17인치 터치스크린(태블릿)이 장착됐다. 터치스크린은 자동차 주요 기능을 제어하는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단말기로 인터넷 연동된다./ 자료: 테슬라
그 가운데 최신 특허 하나 보자. 2019년 6월 미 특허청이 공개한 ‘차량 개인화 시스템’이란 특허다. 차내 특정 이미지를 저장하고 있는 테슬라 차량 운행시스템이 해당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주로 운전자 한명만 탑승하던 평소 저장 이미지와 달리, 여러명이 탑승한 경우, 송풍의 양과 방향 등을 평소와는 다르게 변환시켜 차내 환경을 다인승에 최적화시킨다. 또 늘 같은 포지션에 위치해 있던 운전자의 자세가 일정 시간내 회복되지 않을 경우, 위급 상황으로 간주해 병원과 경찰 등 인근 응급기관에 곧바로 구조 요청을 자동 전송한다.


‘차량 개인화 시스템’ 특허 도면./ 자료: USPTO·Biz-IP
‘차량 개인화 시스템’ 특허 도면./ 자료: USPTO·Biz-IP
변칙도 IP전략중 하나
테슬라와 함께 앨론 머스크가 CEO로 있는 ‘스페이스X’는 특허가 하나도 없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에 대해 앨론 머스크는 최근 와이어드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특허가 공개되면 중국이 ‘레시피 북’처럼 사용하려들 것"이라고 말했다.

특허는 독점권을 주는 대신, 그 대가로 해당 기술을 세상에 공개토록 하는 제도다. 전체 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다. 그래서 공개를 원치 않는다면, 굳이 특허를 내지 않고 트레이드 시크릿(영업비밀)으로 간직하는 변칙 전략도 한 방법이다. 코카콜라 제조법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이 경우, 특허와 달리 별다른 보호장치가 없어, 비밀유지를 위한 ‘보안’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유경동 IP컨설턴트
윕스 전문위원과 지식재산 전문 매체 IP노믹스 편집장, 전자신문 기자 등을 역임했습니다. 현재 SERICEO에서 ‘특허로 보는 미래’를 진행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 △ICT코리아 30년, 감동의 순간 100 △ICT 시사상식 등이 있습니다. 미디어와 집필·강연 등을 통한 대한민국 IP대중화 공헌을 인정받아, 글로벌 특허전문 저널인 영국 IAM의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에 선정됐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