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에 스타트업 피칭·네트워킹 줄취소
투자 기회 잃을까 ‘전전긍긍’
위기는 기회…과거 주목받지 못했던 비즈니스 부각될 수 있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국내외 스타트업 데모데이 등이 잇따라 취소 움직임을 보인다. 이로 인해 스타트업이 회사와 서비스를 알리는 기회의 장이 사라지고 투자 유치 기회까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인공지능(AI)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나 온라인 쇼핑 등 일부 서비스 몸값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한다. 업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될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찾은 승객들이 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조선일보 DB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찾은 승객들이 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다./ 조선일보 DB
3일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엑셀러레이터 기업 프라이머는 2월 16일 예정된 데모데이를 취소했다. 대신 참가 스타트업 11개 피칭 영상을 5일 오후 2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공개한다. 회사 측은 "국내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 격상과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에 따른 조치다"라고 전했다.

방탄소년단(BTS)으로 유명한 빅히트엔터테인먼트도 4일 개최 예정이던 회사설명회를 취소했다. 빅히트는 지난해 성과와 함께 상장 등 향후 계획을 전할 예정이었다. 이 업체는 회사설명회를 외부인사 초청없이 자체 진행한 뒤 녹화 영상을 따로 유튜브에 5일 공개한다.

해외 스타트업 관련 행사도 먹구름이 꼈다. 10일부터 홍콩에서 열릴 예정이던 스타트미업HK페스티벌은 올해 말로 잠정 연기됐다. 이 행사는 홍콩 정부기관인 홍콩투자청(InvestHK)이 주관한다. 세계 54개국에서 최소 400개 이상 기업과 300여명의 연사가 참석하는 글로벌 규모 스타트업 축제다.

3월로 예정된 각종 투자 컨퍼런스도 영향을 받았다. 중국 상하이에서 3월 24일부터 26일까지 예정된 중국 헬스케어 투자 컨퍼런스(China Healthcare Invest Conference)도 연기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올해 봄으로 예정됐던 각종 전시회와 금융 상품 런칭, 부동산 거래 등 각종 경제일정이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됐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투자에 미칠 영향 "지켜봐야"

업계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각종 피칭(Pitching, 비즈니스 아이템을 소개하는 자리)과 데모데이 등 오프라인 네트워킹 기회가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다.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현장행사를 계기로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실제 해외 투자자 국내 유입이 줄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서양지역 국가 스타트업 대표나 투자자가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며 "몇 명 투자자와 대표들도 국내 입국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WHO가 사스 발생으로 국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던 2003년 이후 아시아 지역 투자가 대폭 줄어든 모습./ CB인사이트 갈무리
WHO가 사스 발생으로 국제 비상사태를 선포했던 2003년 이후 아시아 지역 투자가 대폭 줄어든 모습./ CB인사이트 갈무리
실제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전염병 등이 벤처·스타트업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사스(SARS)와 지카 바이러스가 확산된 후 각 지역 벤처·스타트업 분야 투자액은 감소했다.

2003년과 2004년은 중국에서 시작된 사스가 세계로 확산된 시기다. 이 때 아시아 시장 벤처투자자금은 2002년과 비교해 각각 27%, 29% 줄었다. 거래량과 자금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사스 종식을 선언한 후인 2005년에야 회복됐다.

2016년 브라질에서 시작돼 남미를 거쳐 세계로 확산된 지카 바이러스 사례도 유사하다. WHO가 지카 바이러스의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했던 2016년 1분기엔 남미 지역 벤처투자 자금 규모는 1억3300만달러(1591억원)로, 2015년 4분기에 비해 10% 수준(7억9700만달러, 9536억원)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국내 스타트업 시장에 미칠 영향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매출이 증가하는 등 호재 현상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비자가 외출을 삼가다보니 온라인 쇼핑 매출액은 늘고 있는 추세다.

국내 스타트업 펀더멘탈(경제기반)이 과거보다 튼튼해졌다는 점도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이 장기화되지만 않으면 당장 4조원 규모로 확대된 벤처투자자금이 갈 길을 잃는 일은 없을거란 전망이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염병 확대로 국내 주가가 떨어지면서 일부 스타트업 밸류에이션이 함께 줄어들 수는 있다"면서도 "언택트(Untact, 비대면 서비스) 등 일부 업종은 오히려 부각되는, 조정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보경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단기적으로 피칭 등 현장 투자 유치 기회가 사라져 비즈니스가 일부 위축되는 효과가 있다"며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스타트업은 더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오히려 AI기반 전염병 확산 예측 등 이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서비스가 부상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사업분야에 따라 영향은 조금씩 다를 듯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