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등 암호화폐 사업자가 지켜야 할 규제를 담은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서 통과되면서 암호화폐 업계의 오랜 숙원이 풀렸다. 그간 외면받던 암호화폐와 관련 사업이 제도권으로 진입할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는 아직 환호하기에는 이른감이 있다고 조심스러워 한다. 앞으로 정해질 특금법 시행령 내용에 따라 산업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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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정부 및 암호화폐 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국회 특금법 통과 직후 개정안이 원활히 시행되도록 하위 법규 마련 등 준비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업계와 민간 전문가 등 의견을 적극 수렴한다는 방침이다.

특금법 개정안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2019년 6월 내놓은 암호화폐 관련 권고안에 따라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법안을 수정 의결한 것이다. 기존 은행 등 금융기관에만 부여하던 자금세탁방지(AML), 테러자금조달방지(CFT) 등 의무를 암호화폐 거래소를 비롯한 가상자산 사업자(VASP)에게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특금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데 따라 공포 후 1년 후인 2021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된다. 암호화폐 관련 사업자는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에 신고한 뒤 사업을 해야 한다. 미신고 사업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금융위 산하 FIU는 ▲가상자산 사업자 및 가상자산 범위 ▲신고 사항과 신고 절차 ▲금융회사가 가상자산사업자에 실명인증 가상계좌를 발급하는 기준 등 구체적인 내용을 시행령으로 정할 예정이다.

드디어 법 테두리 안으로

업계는 이번 특금법 통과로 오랜 숙원을 풀었다는 반응이다. 김성아 한빛코 대표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법적 지위가 확보됐다"며 "특금법 통과는 거래소 신고허가제가 골자로 장기적으로 암호자산을 다루는 크립토 금융 산업이 조성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오갑수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은 "특금법 개정안 통과로 가상자산 시장과 블록체인 산업이 건전하게 발전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해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는 "금융당국으로부터 가상자산 가이드라인이 마련되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암호화폐와 블록체인뿐 아니라 전체적인 핀테크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일자리 창출 등 장기적으로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라고 점쳤다.

법안을 마련한 김병욱 의원은 "가상자산 거래는 자금세탁 및 공중협박 자금조달 위험성이 높음에도 기본적인 법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이번에 마련된 법과 제도로 국내 가상자산 거래 투명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산업 내 옥석 가리기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환호는 일러…앞으로 나올 시행령이 관건"

업계는 특금법 통과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아직 환호하기에는 이르다는 반응을 보인다. 앞으로 정해질 특금법 시행령 내용에 따라 산업 지형이 바뀔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시행령에 따라 이 산업은 모두가 공존하는 산업이 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며 "만일 은행이 암호화폐 거래소에게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조건이 까다로워진다면 기존 벌집계좌 운영업체는 살아남기 힘든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벌집계좌는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거래소가 고객 원화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활용하는 자체 법인계좌를 일컫는다.

법조계도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블록체인 산업이 육성될 수 있는 기본 법안은 마련됐지만, 자본이 부족하거나 ISMS 인증 발급 여력이 부족한 스타트업 등은 살아남기 힘들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매매나 중개형이 아닌 대부분 암호화폐 사업에 실명계좌 요건을 법률적으로 못박는 것은 과도하다"며 "특금법 통과로 특정 사업의 존폐를 정부가 정하는 사전검열제도가 도입된 것과 같은 양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FIU가 실명계좌 면제 기준을 정하지 않거나, 기준을 만들더라도 기준 적용 여부가 모호한 사업은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구 변호사는 앞으로 나올 시행령에 반영되어야 하는 점으로 ▲FIU의 실명계좌 필요 사업모델 명시 ▲실명계좌가 필요하지 않은 사업 규정 ▲은행이 실명계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는 구체적 사유 마련 등을 꼽았다. 그는 "이런 조치가 뒷받침되면 금융위가 가상자산 사업을 탄압하기 위해 특금법을 활용했다는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고 부연했다.

거래소 업계 한 관계자는 "시행령이 나오지 않은만큼, 규제에 면밀히 대응하기 어렵다"며 "보안 솔루션을 마련하고 ISMS인증을 취득하는 등 안전한 거래 환경을 만드는 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시행령으로 암호화폐 시장이 위축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