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핵심과제로 CBDC 연구·개발 꼽고 관련 법률자문단 꾸려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중앙은행이 전자적 형태로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 연구·개발에 속도를 붙이는 모습이다. CBDC 연구·개발을 주력 과제로 꼽고 관련 법률 자문단까지 꾸렸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경제적 충격과 CBDC를 향한 세계 일부 국가의 신속한 움직임 등이 연구·개발 동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구글 이미지
한국은행/구글 이미지
CBDC 법률 자문단 꾸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최근 CBDC 관련 법적 쟁점과 법률 제·개정 사항 등을 검토할 법률 자문단을 꾸렸다. CBDC를 기존 법률과 제도로 포섭하기 힘든만큼, 발행 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 법률과 제도를 미리 살펴보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자문단에는 정경영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김홍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용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희원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정민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 김기환 한은 법규제도실장이 참여한다.

자문단은 앞으로 CBDC 관련 법적 이슈와 법률 제·개정 필요사항을 검토한다. 또 올해 하반기 중 진행될 외부 연구용역 주제 선정과 결과물 평가 등을 맡는다.

자문단 운영 기간은 내년 5월까지다. 한은은 1년간 자문단을 우선 운영하고 지속 여부를 추후 검토할 계획이다.

이주열 총재, 기념사에서 리브라·CBDC 언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은 창립 70주년 기념사에서 CBDC 연구·개발을 향한 한국은행의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그는 이 자리에서 페이스북 가상자산 리브라를 언급하며 CBDC 연구·개발을 향후 주력 과제로 꼽았다.

이 총재는 "코로나 위기가 사회 전반의 디지털화 등 사회·경제적 구조에 적지 않은 변화를 야기한다"며 "그 과정에서 노동 시장의 이중구조와 소득 양극화, 부채 누증 등 경제 각 부문의 불균형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때문에 지식과 기술에 기반을 두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주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특히 페이스북 리브라와 CBDC를 언급하며 디지털 혁신 흐름에 궤를 함께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페이스북 리브라 논란에서 볼 수 있듯 디지털 혁신은 중앙은행 고유 지급결제 영역까지 파급될 수 있다"며 "중앙은행으로서 변화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한은도 현재 진행 중인 CBDC 연구·개발을 계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은행으로서 리브라 논란 이후 일어나는 디지털 혁신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 여파에 세계 각국 CBDC 눈독까지

한은의 최근 행보는 지난해와 완전히 대비되는 상황이다. 한은은 2019년 1월 "CBDC 발행 논의에 비교적 적극적인 일부 국가 발행 동기가 우리나라에는 적용되기 어렵다"며 "가까운 장래에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고 밝혔다.

한은은 당시 CBDC 도입을 고려한 일부 국가와 달리 한국은 다수 업체가 소액지급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소수 민간업체의 서비스 독점에 따른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강조했다. 특히 인터넷·모바일뱅킹 인프라도 확대되고 있어 금융포용성이 높기 때문에 굳이 CBDC를 발행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은 코로나19 장기화로 뒤집혔다. 현금 사용이 줄어들고 비대면·비접촉 결제 수요가 급증했다. 세계 각국은 CBDC 발행을 앞당겼다. 스웨덴은 이미 ‘e크로나’라는 화폐로 입·출금과 송금, 지급결제가 가능한 플랫폼 개발했다. 유럽연합과 영국, 캐나다, 일본 등 중앙은행은 CBDC 연구에 들어갔다. 중국은 이미 디지털 위안화를 담을 수 있는 모바일 앱 개발에 한창이다.

한은이 부랴부랴 CBDC 연구·개발에 동참하게 된 배경이다. 한은은 최근 중장기 발전전략 ‘BOK2030’ 보고서에서 CBDC 연구·개발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16개 전략과제 중 하나로 제시하며 "미래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선 CBDC 도입 관련 기술적, 법적 사항을 사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또 CBDC 파일럿 테스트 진행 계획도 공개했다. 올해 9월까지 CBDC를 설계하고 구현 기술을 검토한 후 CBDC 발행 권한과 한은-시중 금융기관-민간과의 법률 관계 등을 고려해 올해 안으로 관련법 개정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내년엔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해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한은 측은 파일럿 테스트와 관련해 "CBDC 시스템을 구축하고 특정 환경에서 지급결제에 정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지를 테스트해보겠다는 의미다"라며 "민간·해외에서 디지털화폐가 확산되는 상황에 대비하는 차원이다"라고 전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