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반드시 열을 가하여 그린커피(greencoffee bean)를 볶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볶아진 정도에 따라 커피의 향과 맛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2018년 3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커피회사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은 독성물질교육조사위원회가 2010년 인체에 유해한 발암 화학물질인 아크릴아마이드(Acrylamide, C3H5NO)가 커피에 함유됐다는 경고를 하지 않았다며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회사들을 고소한 데서 시작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커피회사측은 화학물질이 매우 소량이기 때문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담당 판사는 태아, 영아, 아동 그리고 성인까지 위험을 줄 수 있다는 데 대해 명백한 반증을 제시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커피회사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2019년 6월 3일 캘리포니아 환경건강위해평가청(Office of Enviromental Health Hazard Assesement)은 커피와 심각한 발암 위험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여야 하는 법적 요건에서 커피를 공식적으로 제외하였다.
2019년 10월 1일부터 시행되는 캘리포니아 주의 규정은 "커피를 로스팅하는 과정 또는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야기되거나 본질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커피 속 화학물질에 노출된다고 하여 중대한 발암 위험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까지 명시하였다.
캘리포니아주의 법 규정 개정으로 커피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라는 법원 판결은 그 의미를 잃게 되었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세계 어디에서도 커피에 발암 경고문을 부착하는 곳은 없다. 실로 전세계 커피 애호가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한 사건이었다.

아크릴아마이드는 무색무취의 결정성 고체로 화학적, 산업적 용도로 널리 사용되는 물질이다. 정수시설이나 폐수시설의 응집제로도 쓴다. 사람 신경계에 이상을 일으키는 물질로 알려졌다,

우리가 먹는 음식물에 아크릴아마이드가 함유됐다는 사실은 2002년에 처음 알려졌다. 스웨덴 시골마을의 터널 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이 사지에 감각이 없다는 고통을 호소하고 마을 주변 양식장 물고기가 죽어나가기 시작하였다. 가축들도 잘 걷지 못하고 사지가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역학조사 결과 아크릴아마이드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곧이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감자, 빵, 과자에도 아크릴아마이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세계보건기구(WTO)는 커피에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전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2009년에 발표된 국내 연구논문에 의하면, 여러 식품 군 중 감자스낵이 아크릴아마이드 함량이 가장 높게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커피류, 프렌치프라이 순이었다.


김미교 외(2009), 아크릴아마이드 관련 논문에서 발췌
김미교 외(2009), 아크릴아마이드 관련 논문에서 발췌
빵류는 77㎍/kg, 그 중 식빵은 17㎍/kg, 케이크는 11㎍/kg, 피자는 22㎍/kg로 나타났다. 떡은 42㎍/kg, 한과는 105㎍/kg로 나타났다. 비스킷류가 1016㎍/kg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특히, 감자스낵은 195~4002㎍/kg로 가장 높았고 그 외 스낵에서도 1200㎍/kg 검출되었다.

다류 중 커피는 볶아진 원두상태는 11~681㎍/kg 수준으로 검출되었으나 커피음료로 제조되었을 때는 11~18㎍/kg로 낮은 수준이었다.

2018년 KBS ‘소비자리포트’도 국내 커피에 든 아크릴아마이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볶은 커피에는 최대 244㎍/kg 이 들어있는데 믹스커피를 포함한 인스턴트 커피에는 4배에 해당하는 1000㎍/kg 에 달하는 수치가 나왔다.

‘소비자리포트’는 일부 인스턴트 커피가 유럽의 기준치(850㎍/kg)을 초과하는 수치를 나타낸 셈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아크릴아마이드의 함량은 사용하는 커피의 종류와 어떻게 추출하는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크릴아마이드는 탄수화물 함량이 높고 단백질 함량이 낮은 식물성 식품을 고온으로 조리하거나 가공할 때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화학물질이다. 주로 탄수화물이 많이 든 식품을 120도 이상으로 오래 가열할 때 발생하게 된다.

음식을 가열할 때, 아미노산의 아스파라긴과 환원당(포도당, 과당, 엿당 등) 사이의 마이야르(Maillard) 반응은 160도 이상의 고온에서 진행된다. 커피도 로스팅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아크릴아마이드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2002년 스웨덴에서 감자칩이나 커피와 같이 우리가 즐겨 먹은 음식에 아크릴아마이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 아크릴아마이드의 암 유발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음식에 포함된 ‘정상적’인 양의 아크릴아마이드를 오랫동안 섭취해도 암에 걸릴 확률은 매우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정한 아크릴아마이드 함량 기준은 음용수 내 0.5ppb(1ppb=1/1000ppm) 수준이다.

동물에서 각종 암(종양)을 일으키는 양의 수 십분의 일 혹은 수 백분의 일 보다 적은 양이다. 즉 보통 쥐를 대상으로 실험할 때 사용하는 아크릴아마이드 양의 약 1/1000 정도에 해당하는 것을 먹는 것은 그리 염려할 바는 아니라는 것이다.

2016년 국제암연구기관(IARC)는 "160도 이상에서 로스팅되는 커피 자체가 암을 유발한다고 볼 근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보건당국도 2016년 식품 400여 품목 24만건에 대해 총 64종 유해물질 위해 평가를 실시하면서 아크릴아마이드 노출량을 조사했다. 하지만 위협 요인을 확인하지 못했다. 보건당국은 "소비자들이 지금까지 커피소비행태를 유지해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도 커피에 미량이라도 발암물질이 포함됐다는 사실이 영 찝찝하게 느껴진다. 커피 전문가들은 "우수한 품질(결점두가 없게 선별된)의 그린커피를 적정한 온도에서 잘 볶는 카페를 선택하여 커피를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적정한 온도로 커피를 볶으라는 말은 커피를 볶을 때 2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오랜 시간 로스팅하는, ‘다크로스팅’까지 가지 말라는 뜻이다. 다크로스팅을 하면 그린커피에 남아있을 수 있는 잡미를 없애주는 장점은 있다. 그러나, 커피 본연의 향과 맛이 소실될 수 있다.

또, 항산화작용을 하는 클로로겐산은 열에 약하기 때문에 약하거나 중간 정도 로스팅한 커피에는 약 50~30% 정도를 남길 수 있으나 그 보다 더 다크하게 로스팅한 커피에는 다른 성분으로 전환되고 아주 미량만 남게 된다. 그러므로 아크릴아마노이드와 항산화 작용 성분의 소실이 걱정된다면 다크하게 로스팅한 커피보다 약하게 볶은 신맛이 남아있는 커피를 마셔보자.

유럽식약청은 아크릴아마이드 수치를 감소시키기 위하여 커피를 필터링하여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드립커피나 더치커피 등과 같이 여과식으로 커피를 추출하여 마시면 아크릴아마이드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커피 건강 연구는 꾸준히 진행된다. 커피소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논문들을 살펴보면, 적당한 커피음용은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보다 좋은 점을 더 많이 준다고 한다. 적당한 커피섭취는 항암작용과 위험 질병에 걸릴 확률을 낮춰준다고 한다.

하루에 한두 잔의 커피를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지금부터라도 볶아진 정도의 원두 상태를 살피고 어떻게 추출해서 마셔야할지를 한번 더 생각해보며 자신에게 적당한 양을 마셔 보도록 하자.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혜경 칼럼리스트는 이화여대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커피산업전공으로 보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원과학기술대학교 커피바리스타제과과와 전주기전대학교 호텔소믈리에바리스타과 조교수로 재직하였으며, 바리스타 1급 실기평가위원, 한국커피협회 학술위원회 편집위원장, 한국커피협회 이사를 맡고있다. 서초동에서 ‘젬인브라운’이라는 까페를 운영하며, 저서로 <그린커피>, <커피매니아 되기(1)>, <커피매니아 되기(2)>가 있다. cooykiwi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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