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의 업무 공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민간에는 획일적인 공간을 벗어나 창의적인 모습을 뽐내는 곳이 늘었다. 공공 영역 역시 여러 해에 걸친 행정안전부의 선도적인 활동으로 꽤 많이 바뀌었다. 신청사를 짓는 기관들 역시 저마다 완전히 새로운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민한다.
소통과 협업을 강화하고 창의적으로 일할 환경을 만드는 것을 그 목표로 한다. 공간을 개방화하면서 사유공간 최소화, 공유공간 확대를 추구한다. 그 결과로 업무 효율이 높아지고 개인 삶도 나아지기를 희망한다.
더구나 ‘코로나 19’는 업무 환경에 큰 변화를 요구한다. 그렇게 강조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던 재택·원격 근무제와 같은 비대면 업무를 어느덧 당연시하는 시대가 됐다.
이렇게 미래 모습을 향해 달려 가던 조직들이 요즘 혼돈에 빠졌다. 지금은 급한 대로 방역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확신도 없이 이런저런 조치들을 하는 실정이다. 또다시 칸막이가 강화된 사무실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여기저기 오래도록 붙어있는 항균 필터는 오히려 위생에 더 나빠 보인다. 어설프게 칸막이를 세운 플라스틱 판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 확신도 없다. 칸막이를 쳤다해서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초기에 집단 감염을 일으켰던 콜센터만 해도 철저하게 개인별 칸막이를 둔 업무 환경이었다. 공기 흐름(환기)과 밀집도가 오히려 감염에 악영향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과 같이 일하는 방식을 그대로 놔두고 비과학적인 조치를 하거나 심지어 시대 역행적 발상을 할 게 아니다. 아예 상시적인 팬데믹 상황을 상정하고 업무공간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 재택근무등 유연근무를 정착시킬 계기로 삼아야 한다. 방역단계에 따라 근무자 밀도도 조절해야 한다.
지정 좌석이나 사무실이 아니라 재택까지 포함해 언제 어디서라도 일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이를 위해 IT 환경을 비롯해 근무규정 같은 필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십 수 년 째 말만 하던 것을 ,코로나가 준 선물로 여기고, 이참에 바꿔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많은 기술 기업들이 상시적인 재택근무에 돌입했더니 사무실 비용과 주택 가격이 떨어졌다고 한다. 내가 근무한 영국회사는 코로나가 없던 2000년대 초에 이미 10만 5000명 직원 중 6만 5000명의 지정 좌석을 없앴다. 1만 5000명이 재택 근무를 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작은 사무실 건물 300개를 처분해 1조원 현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성능과 기능이 좋은 영상 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내부 업무 뿐 아니라 대민 업무도 어설픈 플라스틱 칸막이가 아니라 영상과 IT 기능으로 대체할 수 있다. 화상으로 안내하거나 단말에서 스스로 처리하는 것이다. 민원실 업무도 차제에 공무원은 사무실에서, 민원인은 화상과 특정 기기를 갖춘 방에서 처리할 수도 있도록 바꿀 수 있다. 10년 전 미국 IT 회사를 방문했을 때 영상을 통해 출입 안내를 받았다.
인류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정치권은 혁신도시로의 물리적인 이전과 같은 원시적인 토론만 벌인다.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다. 일하는 환경과 방식의 변화에 따라 기존 개념의 청사, 사옥, 사무실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 정부기관 청사 기준도 새로 정의해야 할 것이다. 중앙 청사에 투입한 예산도 줄이고 이를 통신과 IT, 원격근무센터와 같은 같은 기능에 투입해야 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질병 전파 차단을 넘어 시스템을 어떻게 디지털에 맞게 전환(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하느냐에 따라 국가 미래가 달렸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ho123j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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