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업계가 위험 불감증에 빠졌다"
최근 개최된 콘텐츠산업포럼 현장에서 게임산업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가 던진 자책이다. 게임 산업을 두고 많은 이들이 "매년 규모가 성장한다" "수출 효자 종목이다"고 이야기하며 장밋빛 미래를 그리지만, 이면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 지갑을 열고 게임 업계를 살찌우는 ‘아저씨’ 게이머들의 자리를, 곧 ‘한국 게임에 염증을 느끼는 젊은 세대’가 채울 것이다. 이 때 한국 게임 업계에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이 찾아올 것이다. 젊은 세대는 지갑을 여는 대신, 한국 게임을 외면하고 조롱하기 때문이다.

‘대작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 쏟아지는 오늘날이지만, 젊은 세대는 이들 게임에 관심이 없다. 대작이라고 해도 단지 그래픽이나 지식재산권(IP)이 다를 뿐, 게임성은 하나같이 똑같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즐길만한 게임을 찾았다. 대작 게임이라는 광고를 보고 게임을 설치하고 즐겼다. 하지만, 이들을 맞은 것은 ‘판박이 게임성’과 ‘높은 과금의 벽’이다. 젊은 세대는 실망해 게임을 지운다. 이 일이 반복됐고, 결국 이제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한술 더 떠 젊은 세대는 한국 게임을 ‘양산형 게임’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양산형 게임은 ‘개성 없이 찍어낸 중국 게임’을 비판하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 게임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데 이 단어가 쓰인다.

물론, 한국 게임이 정말 양산형 게임이라 불릴 만큼 게임성이 빈약한지 여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더라도 젊은 세대가 한국 게임에 염증을 느끼고 앞장서서 욕하는 현상이 벌어진 것 자체를 심각한 위기로 봐야 한다.

이런 현실로 미루어보면, 최근 몇년 간 한국 게임 업계는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다만, 한국 게임 업계는 위기를 알아채고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을 뿐이다. 위기를 피하고, 익숙한 것을 답습하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게임 장르를 다변화해야 한다. 게임 개발 능력 면에서 이미 중국이 한국을 따라잡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상황이다. 미소녀 수집형게임 부문에서 한국 최고의 게임 기업으로 꼽히는 넥슨도 중국 게임을 이기지 못했다. 언젠가 중국 게임 기업이 한국의 대형 MMORPG 개발력마저 따라잡는다면, 한국 게임계는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게임업계는 새로운 시도도 거듭해야 한다. 최근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아 ‘대박’을 터뜨린 영국 소규모 게임사 미디어토닉의 ‘폴 가이즈’, 미국 소규모 개발사 이너슬로스의 ‘어몽어스’의 성공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폴 가이즈에는 ‘폭력성·선정성·확률 뽑기 요소’가 전혀 없다. 게임 내용이 아주 단순하지만, 큰 성공을 거뒀다. 어몽어스는 많은 이들이 즐기는 ‘마피아 게임’을 변용한 게임성을 갖춰 세계 이용자로부터 사랑 받았다. 이들처럼 기존 게임 업계의 판도를 깨는 새로운 시도를 거듭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배틀그라운드’ 이후 이런 시도가 없었다.

새 IP 발굴에도 힘써야 한다. 최근 게임계 트렌드는 게임 IP ‘곶감 빼먹기’다. 이미 성공한 ‘PC게임 전성기 시절 과거의 유산’을 재활용해 ‘돈 되는’ 모바일게임 장르의 틀을 입혀 다시 출시하는 형태다.

물론 원작을 변용해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단지 상업적 이득을 위해 IP를 계속 소모하기만 하고, 새 IP를 만들지 않거나 새로운 시도를 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당장 달콤하다고 해서 매달아 놓은 곶감을 자꾸 빼먹으면 언젠가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빼먹을 곶감이 모두 없어지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건전한 과금모델을 발굴하는 일도 중요하다. 최근 한국 게임은 과금 구조가 너무 복잡하고, 과금을 많이 한 이용자와 무·소과금 이용자의 격차가 많이 벌어지도록 설계하는 경우가 많다.

MMORPG에 익숙하지 않은 20대 초반 젊은 세대는 어릴 때부터 ‘리그 오브 레전드’, ‘배틀그라운드’ 같은 게임을 하며 자랐다. 10대 이용자는 ‘브롤스타즈’를 즐긴다. 이 게임들은 모두 ‘과금이 승리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누구나 ‘노력하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과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게임을 즐길 재미를 우선시해야 한다.

기자는 중국 게임업계 관계자로부터 한국 게임 우수성과 관련 황당한 의견을 들은 적이 있다. ‘한국 게임 기업으로부터 배울 점’에 대한 질문에 이 관계자는 원화·그래픽 같은 게임 요소가 아닌 "이용자의 결제를 유도하는 기술이 매우 정교하므로, 이를 배워 중국 게임에 결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익 추구도 게임사에게 중요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다. 고작 과금 요소를 배우고 싶다니.

냉정하게 보면 이것이 한국 게임의 현실이다. 과금 유도 기술과 ‘최후의 보루’인 MMORPG를 빼면 한국 게임이 다른 나라의 게임보다 낫다고 할 수 없다.

미래 소비자인 젊은 세대를 붙잡고 세계 게임 시장에 진출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장밋빛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는 한국 게임 업계의 ‘레벨업’이 절실하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