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배터리 사업부문)과 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침해 소송 최종판결이 2개월 미뤄졌다. 이번이 세 번째다. 최초 선고일 대비 4개월 늦어진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일정 연기에 대한 구체적 배경이나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11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ITC는 차기 집권할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를 살피기 위해 판결을 미룬 것으로 본다. ITC는 앞서 10월 5일로 예정한 판결일을 10월 26일→12월 10일→2021년 2월 10일로 잇따라 변경했다. 새해 1월 20일 취임할 바이든 대통령이 ITC 판결에 거부권 등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사실상 ITC가 트럼프 대통령이 든 공을 뺏어 바이든 당선인에게 넘긴 셈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 조 바이든 페이스북
조 바이든 당선인/ 조 바이든 페이스북
바이든 당선인은 2050년 탄소배출 제로를 목표로 전기차 보급 활성화 등 향후 4년간 2조달러(2260조원) 규모의 친환경 인프라 투자를 공약했다.

하지만 ITC의 조기 패소 결정이 최종 확정될 경우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2조9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내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다.

조지아주는 공화당 텃밭이었지만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선 승리에 밑거름이 된 조지아주에 미칠 경제적 영향을 감안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정부의 계획에 따라 미 자동차 회사들의 전기차 투자를 유치하려면 배터리 공급사에 대한 의존은 필수적이다"라며 "SK이노베이션은 ITC가 조기패소를 유지할 경우에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거부권은 ITC 최종판결이 나온 후 60일 이내 행사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코로나19 확산이 ITC가 최종 판결을 연기한 주된 이유로 본다. 판결을 내릴 정도로 면밀한 심리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2월 ITC가 내린 SK이노베이션의 조기 패소 결정이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확신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2020년 중 ITC 판결이 코로나19 영향으로 50건 이상 연기됐다"며 "ITC에서 연기 이력이 있는 소송 14건 중 현재까지 9건 소송은 최종결정이 나왔고, 모두 관세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사례로 11월 말에는 미디톡스와 대웅제약이 ITC에서 진행 중인 영업비밀 침해 소송도 세 차례 연기된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소송전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한 것으로 풀이한다. ITC가 10월 30일 양사에 포드와 폭스바겐을 인터뷰한 녹취록을 추가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것 외에는 더 살펴볼 쟁점이 없는 데도 판결을 2개월이나 미룬 것은 정치적 판단 외에는 이유가 마땅찮다는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ITC 판결이 세 차례 연기된 소송 사례는 비중이 30%쯤으로 많지 않다"며 "단순히 코로나19 영향으로 보기는 어렵고, ITC가 보다 신중하게 사안을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2개월 선고 연기로 고착 상태인 양사 합의가 재개될 지도 관심이 쏠린다. SK이노베이션은 ITC 소송과 관련 수천억 수준의 합의금을 제시했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은 1조원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 현재도 이 간극을 좁히지 못한 상태다.

SK이노베이션은 ITC 판결 연기 후 입장문을 통해 "소송이 3년에 걸쳐 장기화되면서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