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로보어드바이저 기업들이 관리하는 자산 운용규모가 1조원을 돌파했다.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신해 자산을 운영하는 금융서비스인 로보어드바이저가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들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한 장기 투자 상품에 이어 연금·PB(private banking) 등으로 시장 확대에 나선다.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에 따르면 파운트, 에임, 디셈버앤컴퍼니자산운용(디셈버), 두물머리 등 국내 대표 로보어드바이저 기업 4곳의 자문계약(디셈버는 일임계약) 자산규모가 총 1조2959억원(3분기말 기준)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보다 1조397억원 증가한 수치다.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2020년 자산규모는 1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금융투자협회의 공시는 각 기업이 직접 운용하는 자산만을 포함한다. 시중은행 및 금융사가 AI의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거나 직접 로보어드바이저에 나서는 경우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AI가 관리하는 자산규모는 더 커진다.

올 한 해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의 AI가 업계와 이용자에게 신뢰를 쌓기 시작했다면, 새해는 각 기업이 적극적으로 시장 확대에 나선다. 이들은 마이데이터 등 국내 금융 시장의 빠른 디지털 전환과 장기 금융상품에 대한 이용자의 늘어난 수요를 발판으로 확장할 전망이다.

8000억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며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기업 중 자문계약 자산규모가 큰 파운트는 2021년 연금 시장에 문을 두드린다. 현행 제도상 파운트가 직접 연금을 운용할 수 없어, AI가 추천하는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방식 등으로 시중 은행과의 협업을 통해 시장 개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파운트는 연금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 파운트
파운트는 연금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 파운트
이미 파운트는 삼성생명 변액보험 고객에게 AI 추천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AI포트폴리오를 제공받는 삼성생명의 AI변액보험 펀드관리 서비스 대상 자산 규모는 약 21조7000억원에 이른다.

금융 문턱 낮추기도 이어간다. 파운트는 이용자가 쉽게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체감할 수 있도록 투자 시작 자금도 업계 최저인 10만원 수준을 지원한다. 또한 파운트 앱 내에서 이해하기 쉬운 금융 정보와 자료를 계속해서 제공한다. 코로나19 확산 이전 활발히 진행되던 오프라인 금융 강연도 유튜브 등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해 이어간다. 다양한 채널로 금융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층의 눈높이를 맞춘 금융 정보를 제공해 문턱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파운트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예금이 아닌 다양한 금융 상품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었다. 초기 투자 자본(10만원)을 낮춰보니 시험 삼아 참여하는 젊은 층이 많았다"며 "안정적인 수익률이 나오기 시작하자, 추가 납입으로 이어졌다"라고 밝혔다. 실제 파운트 이용자의 연평균 추가 납입 횟수는 7.4회에 이른다.

안정적인 수익률을 보장한 AI 기술 자체도 신뢰를 충분히 쌓았다는 평가다. 파운트의 평균 수익률은 8.57%다. 파운트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에 상품에 관한 신뢰가 쌓이고 있다"며 "진입장벽을 계속 낮춰 투자자들의 금융 시장 진입을 돕겠다"라고 전했다.

디셈버는 기술력을 앞세워 초개인화 AI PB를 선보인다. 디셈버의 투자AI '아이작'은 내년 개방되는 마이데이터를 학습해 고도화된다. 이용자 소비 습관이나 자산 형태 등 각 고객 개인을 학습한 아이작이 맞춤형 투자를 이끈다는 것이다.

이미 디셈버는 업계에서 빠르게 금융 플랫폼을 도입하며 가입자 수 증가를 이끌었다. 디셈버가 운영하는 핀트의 가입자수는 32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2월 업계 최초로 오픈뱅킹 서비스를 도입한 후 일 년 동안 약 11배 증가한 셈이다. 특히 디셈버 개발인력은 네이버, 엔씨소프트, 삼성전자 등에서 경험을 쌓은 출신으로 구성돼, 자체 개발한 플랫폼 ‘프레퍼스’ 등에서 안정적인 디지털 금융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디셈버 관계자는 "마이데이터로 인공지능이 각 고객에게 최적화된 투자를 제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업자 등록 여부에 따라, 빠르면 하반기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기존 금융사의 AI 활용도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은행 케이봇쌤 펀드 포트폴리오는 2018년 11월 이후 수익률이 현재 22.28%, 신한 쏠리치는 ‘공격투자형’을 택한 고객들의 최근 1년 수익률이 11.53%로 업계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가 하나의 투자 선택지로 평가받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로보어드바이저가 장기적인 투자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쌓이고 있다. 기존에는 사람이 계속해서 관리해야 했지만, 관리자가 바뀌는 등 현실적인 상황으로 안정적인 서비스가 쉽진 않았다"며 "올해 로보어드바이저가 수익률을 증명한 만큼, 업계에서 AI활용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송주상 기자 sjs@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