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의 정국 운영 기조는 기본적으로 기존의 정책, 제도, 관행, 시장, 역사를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적폐, 불법, 해악, 불공정 등으로 규정하며 뒤집기를 하고 있다. 확신을 갖게 된 근거를 알기 어려우나 본인들의 판단을 지고의 선으로 여기고 左顧右眄 없이 힘으로 밀어 붙이고 있다.
민주주의 원리까지 훼손하며 다수 힘으로 일방적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다. 자신들과 판단이 다르면 사법부의 판결까지 부정하며 판사의 탄핵을 서슴없이 꺼내기도 한다. 불투명한 판단 근거와 비과학적인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적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돌진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탈원전이 이렇게 결정되어 과학계와 에너지 산업계를 양분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가장 먼저 뒤바뀔 정책으로 꼽히고 있다. 검찰개혁 또한 정확한 사실과 증거, 절차적 정당성과 합의 정신을 무시하고 밀어 붙이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주택정책 역시 대표적으로 잘못 된 확신과 이념을 바탕으로 밀어 붙여 시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정책이다. 자신들이 제시한 목표조차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빅데이터는 관두고 기초데이터라도 보거나 몇 가지 보고서 만 살펴봐도 보일 텐데 말이다.
KB 부동산 보고서에 의하면 전체 1949만 가구 중 순수 전월세 가구가 671만으로 34.5%이고, 4.2% 83만 가구는 자가 보유 상태에서 여러 이유로 전월세에 살고 있다. 즉, 전체 가구의 38.7%인 754만 가구가 전월세 가구인 것이다. 754만 가구 중 5%를 공공임대로 가정하면 716만채의 주택이 민간 임대 물량 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의 다주택인 것이다.
이 상태에서 정부가 말하는 1가구 1주택이 가능하고 타당할 것인지 의심스럽다. 700만채 이상의 주택을 다주택자들이 소유하고 있어서 주택 가격이 오르고 투자 이익을 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불공평하니 1주택 외에는 다 팔라는 것이다. 그것도 내년 금년 6월을 기한으로 정하고 있다.
다주택자가 과연 700만채의 주택을 시장에 내놓을 것이며, 무주택자들이 그 주택을 매입할 능력이 있느냐의 문제이다. 다주택자는 연령층, 주택 규모, 주택 수에 따라 월세수입, 시세차익, 상속/증여, 전원주택용 등 다양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일부가 세금 압박에 못 견뎌 1가구 1주택 정책을 따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목표 실현을 위한 방법을 더 찾을 수도 있다. 더구나 670만 순수 전월세 가구 중 자신들에게 적합한 주택을 구입할 능력이 있는 가구가 얼마나 될 지 알 수 없다.
2019년 신규 등록된 임대주택을 보면 고가주택은 1% 미만이고 다세대, 단독, 연립, 도시형생활, 오피스텔 등 고연령층이 임대수입을 위해 보유한 주택이 대부분이다. 다주택자가 부도덕한 사람들이 아니라 수명은 길어지고, 금리는 낮고, 일자리는 없고, 자영업도 할 수 없고 일정 수입이 없으니 약간 모인 자산으로 주택을 구입해 임대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무리하게 다주택자들을 압박하면 오히려 다주택을 정리해 고가주택 한 채로 갈아탈 수도 있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게 오히려 강남 집값을 올릴 수도 있다. 어쨌든 다주택을 가진 자산가들은 비를 피하거나 우회로를 찾으며 잘 못된 정책이 바로 잡히길 기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을 못 이긴다는 것이다.
시장을 잡으려 들 것이 아니라 교육, 의료, 문화, 교통, 환경이 좋은 지역 즉 선호지역에 재개발을 해서라도 공급을 늘려야 한다. 아울러 70년대 강남을 개발하면서 일류 고등학교를 이전시켰던 것처럼 주택만 짓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선호하는 환경을 갖춘 지역을 늘려야 한다. 주택의 가치는 건축뿐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만약에 실현 가능하지 않은 걸 정책으로 제시했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 그랬다면 선동인 것이다. 우선 수 십 년 동안 자산으로 역할을 해 온 주택을 공공재 기능만을 강조하며 주택시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타당치 않다.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진행되어 온 정책을 뒤집을 때는 그만한 충분한 근거와 이해와 동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어떤 근거로 형성되었는지도 알 수도 없는 신념으로 더 이상 시장을 교란하지 말아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임의로 처분토록 강요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순히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아니라 수요자가 원하는 환경을 갖춘 지역을 늘리고 원하는 주택을 공급하는 것 만이 답이다.
※ 외부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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