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혐의를 놓고 끝을 본다. 각자가 자사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이란 확신을 갖고 선택한 행보다. 합의라는 안정 대신 판결이라는 도박을 택한 셈이다. 판결 직전 전격 합의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진전은 없었다. 배터리 업계는 이제 ITC 판결 시나리오와 판결 이후 합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

최종판결에서 나올 수 있는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ITC가 기존 조기패소 판결을 인정하거나, ‘전면 재검토(Remand)’를 지시하는 경우다. 조기패소 판결을 인정하되, 공익성을 놓고 추가 조사하겠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각사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각사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판결이 임박했다. ITC는 10일(현지시각) LG가 2019년 4월 SK를 상대로 제소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낸다. 한국시각으로는 설 연류가 시작되는 11일 오전이다.

우선, ITC가 2020년 2월 내린 조기패소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는 경우다. SK에 가장 치명타다. SK의 배터리 셀과 모듈, 팩, 관련 부품·소재에 대한 미국 내 수입 금지 효력이 발생한다. 2조9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조지아주에 배터리 공장을 세우고 있는 SK의 미국 내 사업이 수포로 돌아간다.

ITC는 2020년 2월 SK에 대해 LG 배터리 기술을 빼낸 증거를 인멸했다는 이유 등으로 판결 전 조기 패소 결정을 내렸다. 2010년 이후 재검토를 거쳐 예비결정 결과가 뒤집어진 경우는 없었다. LG는 전례에 따라 ITC가 별도 절차 없이 패소 결정과 함께 SK 배터리 제품의 미국 내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할 것을 확신한다.

ITC가 조기 패소 판결을 뒤집고 전면 재검토를 지시할 수 있다. 사실상 SK의 승소와 마찬가지다.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하지 않고, SK는 조지아 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할 수 있다. 소송이 원점에서 시작하는 만큼 ITC의 최종결정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하지만 행정판사는 종전 결정과 동일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SK의 조기패소 판결을 인정하지만 미 경제에 대한 피해 여부를 따지기 위해 공익성을 추가로 평가하겠다는 절충안이 나올 수도 있다. 이 경우 ITC는 공익성 평가를 위한 공청회를 열고 SK가 미국에서 배터리 사업을 지속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는 지에 대한 의견을 듣는다. 공청회 결론에 따라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지지 않을 수도 있어, LG가 바라지 않는 결과다.

조 바이든 대통령 / 조 바이든 페이스북
조 바이든 대통령 / 조 바이든 페이스북
SK는 최악의 경우 ITC가 조기패소 판결을 그대로 인용하더라도, 조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60일내) 행사 가능성에 희망을 건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막대한 투자를 진행 중이고, 바이든 대통령이 친환경 에너지 사업에 의욕을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각) 미 전기차 시장 진단 기사에서 양사 간 배터리 분쟁과 바이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WP는 "SK가 패소하면 포드와 폭스바겐은 전기차 생산에 타격을 받는다"며 "ITC가 LG편을 들면 바이든이 그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ITC 판결 후 총수 간 담판으로 합의가 급물살을 탈 것이란 관측도 있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2019년 9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중재로 회동을 가졌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진전이 없었다. 최근 정세균 총리 중재로 LG와 SK의 최고 책임자급이 전격 만남을 가졌음에도 합의는 지지부진하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합의금 격차가 수조원 단위로 큰 만큼 양사간 대승적 합의가 나오기 쉽지 않다"며 "ITC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양사 총수 간 만남이 이뤄지면서 소송이 매듭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광영 기자 k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