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보전서 밀린 韓,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물량 미리 선점한 국가는 백신 접종 박차
아스트라제네카 고령층 접종 결론 못내
‘안전’ 강조 정부, 결국 러시아 백신 검토

‘안전성’을 강조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전에 뛰어들지 않던 정부가 러시아산 백신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백신 공급 불확실성에 대응한다는 취지다.

업계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진퇴양난 상황에 빠져 러시아산 백신에 눈길을 돌렸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코로나 4차 대유행이 예고되는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연기할 수도, 시작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백신 확보전에서 밀린 한국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고조된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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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 희망의 끈 등극 ‘러시아 백신’

8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변이 바이러스와 다른 백신 공급 이슈 등에 불확실성이 있다"며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계약 검토는 하지 않았다. 다만 러시아 백신을 비롯한 다양한 백신에 도입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청장의 발언은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접종 연령층을 결정하지 못하는 가운데 나왔다. 우리나라는 2월 말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50만도즈(75만명분)를 들여온다. 다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 논란을 이유로 고령층 접종 여부는 확정짓지 못한 상태다. 세계 주요국은 임상 자료 부족을 이유로 고령층에 접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스위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사용 자체를 보류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 데이터를 확보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이다. 영국과 남아공, 브라질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가 속출하면서 4차 유행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했던 정부로선 백신 접종 계획을 마냥 연기할 수도, 안전성 논란이 일은 백신의 접종을 시작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셈이다.

백신 공급계획 변수도 러시아 백신 도입 배경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 "65세 이상의 경우는 충분하게 임상시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효과가 확인이 안 됐다"며 "고령층 접종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만일 고령층 접종 불허 결정이 나오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으로 고령층 접종을 우선 시행하려는 정부의 백신 접종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넉넉한 수량과 긍정적인 효과의 러시아산 백신이 정부에 희망으로 비춰진 이유다. 러시아 스푸트니크V 백신은 지난해 하반기 러시아 보건당국으로부터 사용 승인을 받은 세계 첫 코로나19 백신이다. 임상3상을 건너뛰고 승인을 받아 안전성 논란에 휩싸였지만, 최근 세계 의학 전문지 랜싯에 관련 결과가 게재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랜싯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스푸트니크V는 약 2만명이 참여한 임상3상에서 91.6%의 예방 효과를 냈다. 이는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보다 소폭 낮지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효과다.

러시아 백신 ‘안전성 확인 필수’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러시아 백신을 신뢰하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인다. 잉그리다 시모니테 리투아니아 총리는 지난 7일 SNS에 "러시아 백신은 개발부터 적용까지 잘못된 정보와 편향된 진술로 이뤄진 결과물이다"라며 "러시아가 사실상 하이브리드 형태의 무기를 세계에 나눠주는 꼴이다"라고 비난했다.

유럽에선 러시아 백신의 투명성을 입증해야만 사용 승인을 내린다는 계획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러시아와 중국 제조사가 모든 자료를 제출해 투명성을 입증하면, 다른 백신처럼 유럽의약품청(EMA)의 조건부 판매 허가를 얻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러시아 백신을 수입하기 위해선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의과대학 한 관계자는 "러시아 백신에 우려스러운 것은 효과보다도 안전성이다"라며 "모든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아 검증이 어렵다. 현장 도입에 부담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 백신이 변이 바이러스에 어떤 효능을 보일지 확인도 안됐다"며 "여러 방면에서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고 들여오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