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직접 생산 의지를 드러낸 인텔이 신임 팻 겔싱어 CEO에 힘을 싣는다. 겔싱어는 외부 파인드리 기업을 통한 반도체 생산도 일부 지속하지만, 자체 생산 물량을 확대하고 미세 공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과거 겔싱어와 함께 인텔에서 프로세서 개발을 주도하다 회사를 떠난 인물들도 연이어 인텔 복귀를 선언했다. CPU 기술 초격차를 위한 인텔의 행보가 본격화하는 셈이다.

인텔의 8번째 CEO인 팻 겔싱어는 16일 취임했다. 그는 1979년 인텔에 입사한 후 2001년 최고기술책임자(CTO) 직을 수행하는 등 30년 동안 인텔에서 일하며 코어(Core)와 제온(Xeon) 프로세서 개발을 담당한 전문가다. USB와 와이파이 등 핵심 기술 개발을 주도했으며, 초고밀도 집적회로(VLSI) 설계와 컴퓨터 아키텍처 및 통신 분야 특허 8개를 보유한 기술 전문가다.

겔싱어 CEO의 귀환은 인텔의 차기 노선을 보여주는 행보라 할 수 있다. 인텔은 2021년 1월, 실적발표를 통해 2023년부터 제품 대부분을 자체 생산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겔싱어의 미래 구상 중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팻 겔싱어 인텔 신임 CEO / 인텔
팻 겔싱어 인텔 신임 CEO / 인텔
겔싱어는 재무전문가인 밥 스완 전 인텔 CEO와 달리 기술 전문성이 뛰어난 인물이다. 겔싱어와 함께 인텔의 전성기를 이끈 글렌 힐튼과 수닐 셰노이 등도 인텔로 다시 복귀한다.

글렌 힐튼은 1983년 인텔에 입사해 펜티엄 시리즈와 코어2 듀오 프로세서 등을 설계한 인물이다. 2017년 인텔에서 은퇴했다가 최근 복귀를 선언했다. 수닐 셰노이도 제온파이 등 프로세서를 개발한 뒤 2014년 인텔을 떠났지만, 겔싱어 CEO 선임 후 인텔로 돌아왔다.

칩 설계 전문가들이 겔싱어를 따라 연이어 복귀한 것은 인텔이 자체 개발과 미세공정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인텔은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할 수 있는 종합반도체기업(IDM)으로 중앙처리장치(CPU) 분야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기업이다.

하지만 최근 AMD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자체 개발한 M1칩을 바탕으로 탈인텔을 선언한 애플에 이어 퀄컴까지 PC 프로세서 개발에 나서고 있다. 경쟁자들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과제가 크다. AMD와 치열하게 펼치고 있는 미세공정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해야 한다.

인텔은 2020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7나노(㎚) 공정이 목표 수율에 도달하지 못하면서 관련 제품 출시 계획이 6개월 정도 늦어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면, 경쟁 기업인 AMD는 TSMC와 협력해 7나노급 이하 반도체를 만들어내고 있어 인텔 위기론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인텔이 삼성과 대만 TSMC 등에 밀려났다며 반도체 생산 부문을 털어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국제 정세도 영향을 준다. 미국은 중국과 반도체를 두고 기술 패권경쟁을 펼친다. 중국은 2025년까지 자체 반도체 생산 능력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만큼 견제가 필요하다. 미국 역시 자체 생산 능력 강화로 맞대응에 나선 가운데 인텔이 파운드리 생산 전략을 이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텔은 미세공정 부문에 지원을 강화하고 다른 부문은 외주를 활용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협력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생산에 나섰다.

펫 겔싱어는 2021년 1월 실적발표 당시 "제품 포트폴리오 폭을 고려할 때 ‘특정 칩’ 생산은 파운드리 업체에 외주 생산을 맡길 수 있다"며 "정식 취임 후인 2월에 외부 파운드리 활용과 관련한 자세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인텔은 2023년까지 7㎚ 공정을 적용한 주력 제품을 자체 생산한다. 오스틴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은 14㎚ 제품을 주력으로 생산하는 곳으로 미세 공정을 적용한 제품에 주력하고 특정 칩을 외주에 맡기겠다고 밝힌 인텔의 차기 계획과 일치하는 행보다. 반도체 업계는 조만간 공개될 겔싱어의 차기 계획에 촉각을 기울인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