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게이머조차 등 돌렸다 ②해외서 불어오는 규제의 바람

"이미 확률형 아이템이라는 화약고에 불이 붙었습니다. 폭발할 수 있어요. 그동안 학회나 개인적으로 게임 업계에 확률형 아이템 비즈니스모델(BM)이 어떻게 나아가야할지 끊임없이 이야기했습니다. 업계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IT조선은 최근 중앙대에 있는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확률형 아이템 논란 이후, 한국 게임 업계가 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 IT조선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 IT조선
"자율 규제라는 버스는 이미 떠났다"

위정현 학회장은 현재 한국 게임 업계가 처한 상황을 두고 ‘자율규제라는 버스가 이미 떠났는데, 뒤에서 손 흔드는 모양’이라고 진단했다. 2015년 이후 6년이나 자율규제를 진행했는데,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그 예로 자율규제 실적을 들었다. 학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8년 6월 1일부터 최근까지의 자율규제 실적은 총 340건에 불과하다. 2019년 기준 국내 등급분류 후 유통된 게임물이 45만9760여개라는 점과 비교하면 지극히 적다. 또 자율규제 참여하는 게임사는 사실상 7개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했다.
심지어 일부 게임사는 컴플리트 가챠(콤프가챠, 이중 뽑기) 방식을 활용한다. 이용자가 최종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을 사실상 알리지 않는 것이다. 이들 게임사는 자율규제를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학회가 자율규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다.

위 학회장은 "일부 게임사가 아이템 생성 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율규제를 비껴가고 있다"며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한 후에도 이를 피하는 다른 모델은 얼마든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 업계가 규제, 사회적 논란에 함께 고민하지 않고 이를 우회하려는 등의 꼼수만 염두하고 있는 만큼 게임사를 향한 감시의 눈길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확률형 아이템 확률을 공개할 의무와 처벌 조항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 개정안(게임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는 것이다.

낮은 확률은 또 다른 문제꺼리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난 후에는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고 봤다. 확률형 아이템의 낮은 확률이 분명 문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부 게임은 복권 당첨에 비견할 정도로 확률을 낮게 설정한 아이템이 등장한다"며 "게임법 개정안 통과 다음에는 분명히 확률의 높고 낮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게임 기업은 사내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확률에 대한 고민과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반면 게임 업계는 주요 BM인 확률형 아이템을 규제할 경우, 게임 업계에 성장에 제동이 걸리거나 산업 규모가 축소할 것을 우려한다.

위 학회장은 이와 관련해 공장에서 몰래 폐유를 버리는 상황을 예로 들었다. 게임사들의 주장은 제대로 된 정화시설을 갖추는 것보다는 폐유를 버리는 것이 공장에 더 이득이 된다는 논리라고 봤다. 그는 "공장에서 ‘처리 기술이 미흡해 폐유를 계속 방류해야겠다’는 주장을 펼치면 국민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업계 주장이 한국 게임의 고질적 문제점인 지식재산권(IP) 돌려막기와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게임 시장에는 이미 성공한 ‘PC게임 전성기 시절 과거의 유산’을 재활용해 ‘돈 되는’ 확률형 아이템 BM의 틀을 입혀 다시 출시하는 행태가 만연하다.

위 학회장은 중국게임 원신의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신은 새 IP를 바탕으로 만든 게임이고, 한국 게임과 비교하면 훨씬 간단한 BM만 적용했는데 세계에서 흥행하고 있다"며 "이와 달리 한국 게임사는 ‘내수 시장의 안전한 매출 공식’만 따르면서 세계 시장에 진출할 공격성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100년 갈 수 있는 ‘ESG경영’ 생각해야

최근 ‘트럭 시위’와 연이은 ‘확률 논란’ 탓에 이용자 민심이 게임 업계를 많이 떠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 학회장은 처벌 규정을 담은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용자가 확률 고지를 신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업계와 이용자 신뢰와 대화가 이러한 토대에서 싹틀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위 학회장은 게임 업계가 100년을 갈 수 있는 게임, 기업,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 ESG 경영에 힘써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그는 "확률형 아이템은 ESG 경영과 대척점에 있는 시스템이다"며 "ESG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기업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 학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중소·중견게임사 중에서 ‘테슬라’ 같은 게임체인저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기업 테슬라는 아직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기존에 경직된 판을 깨면서 시장에 충격을 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중소 개발사는 배틀그라운드를 세계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 선보여 대박을 터뜨린 펍지주식회사처럼 좋은 게임성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해외의 기회의 땅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대담 영상 / IT조선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