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부터 잇달아 발생한 화재로 고충이 큰 에너지저장장치(ESS) 업계가 고사 위기다. 정부 지원이 축소된 가운데 지방자치단체는 허가 없이 ESS를 건설한 한전에 자연 환경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다. ESS 업계는 최근 정부를 상대로 단체행동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ESS 기업을 파산 위기로 몰고 있다는 주장이다.

2019년 8월 30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에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발생한 화재 / 조선DB
2019년 8월 30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미곡리에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에서 발생한 화재 / 조선DB
17일 ESS 업계에 따르면, 30개 중소기업은 한국ESS협회를 결성해 정부를 상대로 단체행동에 나선다.

ESS협회는 "정부가 ESS 우대정책으로 산업계 활성화를 시도해 많은 기업을 유치했지만, 정작 연이어 화재가 발생하자 업계를 외면하고 있다"며 "업계를 파산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저항할 것이다"고 밝혔다.

ESS는 햇빛이 강한 낮이나 바람이 세게 불 때 생산되는 전력을 저장한 후 필요할 때 뽑아 쓸 수 있도록 구성한 시스템이다.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시스템은 기후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불안정하지만,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ESS가 해당 시스템을 보조할 경우 전력 수급의 안정성과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정부는 ESS를 활용하는 기업에 각종 가중치를 부여하며 장려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2017년 8월 전북 고창을 시작으로 2019년 10월 경남 김해까지 총 28건의 ESS 화재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는 1년 가까이 조사를 벌였지만,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지 못한 채 화재 원인을 배터리 기업 탓으로 돌렸다. 배터리 업계는 여러 부품이 모인 ESS의 화재 원인을 배터리로 특정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이후 ESS 생태계는 급격하게 위축됐다. 정부 발표 후 1년이 지난 지금, ESS 사업장 공사 발주는 찾아보기 힘들고 정부 지원은 축소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지자체 허가 없이 ESS 건설 공사를 추진했다가 뒤늦게 원상복구 명령을 받아 혈세 낭비 논란에 휩싸였다.

양금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의원(국민의힘)이 한전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2017년 경북 영주와 상주, 전남 완도 등 3개 지역에 배전용 ESS를 설치한 후 시범 운용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9월, 영주시에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하고 두 달 뒤인 11월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동원리 일대에 ESS 설치를 완료했다. 하지만 영주시는 2018년 8월 한전의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불허했다. 허가를 받기도 전에 ESS 설치를 마친 한전 측에 원상복구를 통보했다. 한전은 3억4000만원을 들여 시설 일체를 2021년 초 경북 성주로 이설했다. 가뜩이나 화재로 어려운 ESS 업계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ESS 업계 한 관계자는 "에너지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쓰는 ESS는 정전 시에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유용한 시스템이며, 유럽과 미국에서는 급성장 중인 산업이기도 하다"라며 "전기차와 함께 배터리 산업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ESS 산업이 국내에서 고사 위기에 처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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