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적 혼종 냄비(Industrial Hybrid Pot) 현상의 시작

인류의 조상이 지구에 살기 시작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있다. 변화와 적응 그리고 진화다.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주체는 번영을, 그렇지 못한 주체는 퇴화와 함께 역사에서 지워졌다. 현재의 우리에게도 이 과제는 그대로 적용된다. 변화에서 기회를 포착하며 그것을 주도한 주체는 새로운 미래를 선점해 더 큰 이익을 획득하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오늘날 변화에 적응과 진화를 통한 기회의 획득은 예전과 비교해 그 이익과 영향력의 정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즉, 변화를 주도한 주체가 모든 이익과 영향력을 차지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공식이 더 뚜렷해졌다.

승자독식의 세계가 더 공고해진 현재는 이전에 명확하게 구분돼 서로의 영역을 보전하던 암묵적 시장규칙도 허물고 있다. 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기술과 아이디어가 산업의 구분을 넘어 적용되는 ‘무경계의 산업 경제’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무경계 산업 생태계에서는 변화라는 ‘태풍의 눈’이 보듬은 보물상자를 누가 먼저 차지하는지에
관심이 집중될 뿐 그 주체가 누구인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환경을 만들었다.

전통적 제조업, 중화학산업, 서비스업, 방위산업 등 각각의 영역은 철저하고 강력한 진입장벽을 유지하며 발전했다. 그러나 3차 산업혁명의 산물인 ‘인터넷’ 기술은 산업영역 장벽의 희석작용을 촉진했다. 그 결과 각기 다른 사업이 혼종의 상태로 진입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제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ICT에 의해 완전한 ‘산업적 혼종 냄비(Industrial Hybrid Pot)’로 진화하고 있다. 누가 기술적 지배권(hegemony)을 갖느냐에 따라 산업별 진입장벽은 큰 의미로 작용하지 않게 되었다.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이 지배하는 방위산업 시장


100여년 전 라이트 형제는 자신들이 개발한 비행기가 세상을 지배할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새로운 운송수단인 비행기는 인간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적 도구가 됐다. 전쟁에서는 전세를 압도할 가공할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다.

이런 변화를 감지하고 비행기를 무기화한 방위산업계의 혁신가들이 등장했다. 그들 가운데는 마틴과 록히드가 있었다. 나무와 천 그리고 자동차에서 떼어낸 엔진으로 비행기를 제작하기 시작한 마틴 마리에타와 록히드의 시작은 다른 회사와 마찬가지고 영세했다. 그러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시대를 거치며 미국 펜타곤이 필요로 한 전투기, 수송기를 비롯한 다양한 무기를 생산해 공급함으로써 부와 영향력을 확대했다.

1995년 이 두 회사가 합병했다. 방위산업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전투기와 기타 무기를 생산하는 가장 강력한 거대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렇게 탄생한 ‘록히드마틴’은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기술을 통해 시장에서 변화를 주도하며 부동의 세계 1위 방위산업 기업이 된다.

매년 스웨덴의 스톡홀롬 국제평화연구소(SIPRI: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와 미국의 디펜스뉴스(DefenseNews)가 시행하는 세계 100대 방위산업 조사에서 항상 1위 자리를 유지하는 록히드마틴은 육해공 모든 영역에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파괴력 큰 무기를 생산하는 최고 수준의 방위산업 기업이다.

현존하는 최고 성능의 스텔스 전투기 F-22A 랩터(Raptor)와 한국도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라이트닝 II(Lightning II)를 비롯해 다양한 전투기와 전략 항공기를 생산해 미군의 주력 공군 전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 고성능 레이더와 중장거리 대공미사일을 이용해 적의 비행 무기와 함선에 대응하는 통합 전투함 체계인 ‘신의 방패 이지스 시스템(ACS: Aegis Combat System)’을 개발해 해양 작전의 개념을 변화시켰다. 이 외에도 각종 미사일과 혁신적 무기들을 개발해 방위산업계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전쟁의 영역이 우주로 확장되자 우주산업에서도 지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 경쟁에 뛰어들었다. 화성 탐사선 ‘바이킹(Viking)’을 제작하고 지구 상공 559km에서 96분마다 한 번씩 지구 궤도를 돌며 우주의 다양한 모습을 관측하는 위성형 망원경인 ‘허블 우주 망원경(HST: Hubble Space Telescope)’을 만들어 우주 관측의 환경을 변화시켰다.

무기체계의 거의 모든 분야에 필요한 각종 첨단 무기를 생산하는 록히드마틴은 이제 미래전을 준비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래전 핵심은 무인화와 네트워크화다. 이를 위해서는 ICT를 적용한 무기체계의 전환이 필수다. 따라서 록히드마틴은 주력 사업 분야를 시스템 통합(데이터 처리 서브 시스템 및 전자전 포함), 항공(전투 및 운송 항공기), 우주 시스템(통신 위성 및 발사 차량), 기술 서비스(관리 및 물류 서비스)로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4개의 주력 분야 중 현재 이윤을 가장 많이 창출하는 분야는 시스템 통합이다. 다음이 우주 시스템이다. 항공기 제작이 주력이던 록히드마틴이 새로운 분야로의 전환을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자 미래전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감지하고 움직인다는 증거다.

록히드마틴 역사는 도전과 창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작은 작은 교회를 빌려 비행기를 제작하던 미약한 소규모 영세 제작자였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기 제작 기술과 각종 첨단 무기의 개발과 생산을 통해 미군과 우방국의 전력 증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록히드마틴은 변화의 시기마다 선도적 기술개발을 통한 시장 지배력을 유지했고 그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ICT를 통한 무기체계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와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는 시점에서 바라본 미래전과 관련된 새로운 변화는 이제까지의 변화와 사뭇 다른 형태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기체계의 패러다임이 무인화와 네트워크화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로 전환하며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는 누군가에겐 새로운 도전을 통한 기회 획득을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겐 기존 시장에서의 입지 축소라는 위험에 직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기는 파괴력이 우선이던 시대가 있었다. 1·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냉전의 시대에 벌어졌던 각종 전쟁과 국지전도 그랬다. 대량살상무기로서 핵무기가 게임 체인저로 등극했고 이후에도 계속 개량을 거치며 응용된 파괴력 우선의 무기가 등장했다.

그러나 대량 파괴가 목적인 무기는 전쟁에서의 윤리적 관점 증대와 마주하며 시대의 변화를 맞이했다. 이제는 대량 파괴가 아닌 정밀타격을 통한 종심지역 파괴로 적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 것이 핵심인 전쟁으로 그 방식이 전환되고 있다. 대량 파괴로 발생하는 민간의 심각한 피해를 최대한 방지해 공격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윤리적 문제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무기체계의 패러다임 전환은 이런 전쟁 윤리적 차원과 더불어 공격 효율성과 무기 활용의 경제성 측면에서도 변화를 요구한다. 아군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더 효과적으로 적을 타격하기 위해서는 무기의 첨단화가 필수다.

‘융단 폭격’은 이전의 전쟁에서 물량적이고 자본적인 우위를 지닌 국가가 전쟁의 상대국에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폭탄엔 눈이 없다’는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전쟁에서 누구나 폭탄으로부터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폭격기가 적진으로 날아가 무차별적인 융단 폭격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폭탄을 정밀하게 유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역설적 의미도 담고 있다. 즉, 기술적 한계로 인한 물량 공세였다는 의미다.

무기체계의 진화는 융단 폭격에서 정밀타격으로 전환을 촉진했다. 굳이 폭격기를 출격시키지 않고도 먼 거리에서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기술이 발전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사일에 카메라라는 눈을 달아 폭격이 이루어지기 직전까지 전장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게 됐다.

폭격의 효율성과 정확성이 증대된 것이다. 이렇듯 무기는 점차 발전했고 현재에 이르러 다양한 응용 버전들이 실전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재래식 무기의 진화과정이라 부른다.

이제까지의 이런 재래식 무기체계 변화는 하드웨어 전환을 통한 파괴력 증진에 초점이 맞춰졌다. 따라서 하드웨어 기술을 이미 보유한 록히드마틴은 응용을 통한 새로운 버전의 출시만으로도 세계 무기 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전은 소프트웨어가 무기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하드웨어 요소는 부가적 역할을 해야 하는 형태로 전환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에 ICT가 있다. 이제까지 민간 산업의 발전 원동력 중 많은 기술이 군사적 목적에서 개발된 기술의 스핀-오프(Spin-off) 과정을 통해 전달되었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다. 인터넷, GPS, 레이저, 탄소섬유 등을 비롯해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스마트기기의 핵심 기술까지 모두 군사적 목적에서 개발돼 민간에 도입된 것들이다. 시대가 변화하며 이런 기술적 스핀-오프는 스핀-온(Spin-on) 즉, 민간의 발전된 기술이 군사적 용도로 활용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민간과 군사기술이 융합되어 활용되는 스핀-업(Spin-up)으로 진화하면서 군사와 민간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ICT를 통한 융합기술의 교차활용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리고 미래전을 대비한 밀리테크4.0을 ICT가 주도하고 있다. 무기의 세대교체가 ICT를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연구원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밀리테크4.0의 핵심에 ICT가 있으며 ICT를 활용한 밀리테크4.0을 달성하는 것이 미래의 주도권을 획득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 주도권은 국가와 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러한 주도권 경쟁은 방위산업 세계 1위 기업으로 세계를 호령하는 록히드마틴의 앞에도 다가와 있다. 무기체계와는 관계가 없어 보이던 ICT 거대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가 100억달러(약 12조원) 규모의 펜타곤 사업인 ‘제다이 프로젝트(JEDI Project)’를 수주하며 국방 분야의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세계 최강자 마이크로소프트와 무기체계 하드웨어 최강자 록히드마틴은 미래전을 대비한 무기체계 시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경쟁하게 될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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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천 Global ICT Lab 소장은 미국 오하이오대학(Ohio University)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광고/PR 부전공)를, 뉴욕주립대 버펄로(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uffalo)에서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사이버대학교 융합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분석 그리고 뉴미디어를 교육하고 연구했다. Global ICT 연구소를 개소해 빅데이터를 포함한 정보통신 기술, 산업, 정책 등의 연구와 자문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자문위원, 한국전기공사협회 남북전기협력추진위원회 자문위원, (사)국방안보포럼 국방ICT위원장, 용산학포럼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블록체인의 사회 확산과 발전, 남북전기 교류의 발전, 국방산업의 발전, 용산미군기지 이전 후 공원화 사업을 위해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