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세계시장에서 자사 롤러블(Rollable) TV를 국내(1억원) 대비 최대 1.5배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 국가별 화폐단위를 감안해 출하가에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세계 최초 제품이라는 희소성과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담은 판매 전략으로 풀이된다.

LG전자는 1일부터 글로벌 홈페이지를 통해 롤러블 TV인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의 해외 판매를 시작했다고 5일 밝혔다. 판매 국가는 미국과 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15개국이다. 한국에선 2020년 10월 출시해 판매 중이다.

LG전자 모델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살펴보고 있다. / LG전자
LG전자 모델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살펴보고 있다. / LG전자
한국에서는 1억원인 이 제품의 글로벌 출하 가격은 유럽과 미국에서 천차만별로 책정됐다. 단순히 1억원을 해당 국가의 화폐 단위로 환산한 금액이 될 것이라는 전망과 다르다. 화폐단위에 따른 흥미로운 가격 정책이 담겼다.

5일 LG전자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의 영국 출하가격은 9만9999파운드(1억5600만원·부가세 포함)로 한국 보다 비싸다"며 "미국에서도 9만9999달러(1억1300만원·부가세 별도)에 판매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통상 TV는 해외에서 직구(직접구매)하는 것이 이득인데, LG 시그니처 올레드 R 만큼은 예외인 셈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LG전자는 국내시장에서 1억원이라는 금액에 상징성을 부여했다. 마찬가지로 영국과 미국 VVIP 고객에게도 ‘99999’라는 가격으로 초프리미엄 이미지를 각인하려는 의도다. LG전자 경북 구미사업장에서 전량 제작해 수출하기 때문에 해외 고객이 국내 고객 보다 더 비싼 유통 구조를 거치는 점도 반영됐다.

LG전자는 국내에서 LG 시그니처 올레드 R 판매 부진을 겪었다. 2월 8일 IT조선 보도에 따르면 이 제품은 2020년 10월 국내 출시 후 3개월 동안 판매량이 10대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국내 VVIP 고객 공략에 실패한 결정적 원인은 크기였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은 65인치(대각선 길이 약 163㎝) 단일 규격으로 출시됐다. ‘거거익선(화면이 클수록 좋다)’ TV 트렌드에 부합하지 못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LG전자는 글로벌 출시를 기점으로 세계 첫 롤러블 TV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목표다. 특히 크기에 덜 민감하고 ‘감성’과 ‘최고급’에 가치를 두는 유럽 VVIP 고객이 집중 타깃이 될 전망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은 1일 글로벌 출시 후 국내 대비 많은 선주문이 들어오고 있다"며 "내부에서도 이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란 기대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LG전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당분간 현지 오프라인 마케팅 대신 온라인 판매에 주력한다. 구매를 희망하는 해외 고객은 LG전자 현지 법인 마케팅 담당자와 상담 과정을 거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