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가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소리없이 강한 질주를 이어간다.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으로 2년간 치고받는 동안 묵묵히 연구개발(R&D)과 고객사 공략에 집중한 것이 최근 결실을 맺는 분위기다.

삼성SDI는 2020년 8083억원을 R&D 투자에 활용했다. 2018년 6000억원, 2019년 7000억원을 돌파한 후 사상 최대액이다. 이중 80%가 배터리 분야를 포함한 에너지솔루션사업부 투자에 쓰인 것으로 파악된다.

삼성SDI의 주력 배터리 제품은 각형과 원통형이다. LG에너지솔루션(파우치·원통형)과 SK이노베이션(파우치형)과 노선이 다르다. LG와 SK가 테슬라를 제외하면 모든 고객사에 파우치형을 공급하는 것과 달리 삼성SDI의 폼팩터 차별화 전략이 빛을 발하고 있다.

삼성SDI 원통형 배터리 / 삼성SDI
삼성SDI 원통형 배터리 / 삼성SDI
1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현대자동차와 2024년부터 출시되는 하이브리드 신차에 탑재할 원통형 배터리를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현대차는 그동안 파우치(주머니)형과 각형을 전기차 플랫폼 내 배터리로 주로 사용해왔다. 공급처 다변화를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삼성SDI는 제2의 테슬라로 불리는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에도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한다. 리비안이 올해 출시 예정인 전기 픽업트럭 R1T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R1S에 들어가는 탑재되는 배터리다.

최근 유럽 전기차 1위 폭스바겐은 각형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배터리 기술 내재화 선언으로 글로벌 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배터리 업계는 기존 고객사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는 악재지만, 당장 각형 양산이 가능하고 월등한 기술을 보유한 삼성SDI는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삼성SDI는 3월 유럽연합지식재산청(EUPO)에 4종의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상표를 등록했다. 등록 상표(브랜드)는 ▲PRiMX ▲PRIMUS ▲SPRiMX ▲PRi-X 등이다. 이는 삼성SDI의 각형 배터리 ‘프리머스(Primus)’를 의미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폭스바겐을 비롯해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전기차 시장을 리드하는 유럽 고급차들이 각형 배터리 장착에 나섰다"며 "삼성SDI는 각형 배터리 브랜드화를 통해 유럽 시장에서 급격한 수요 증가에 대응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삼성SDI 각형 배터리 셀 / 삼성SDI
삼성SDI 각형 배터리 셀 / 삼성SDI
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 셀 공장을 2022년쯤 착공해 2025년 7월쯤 완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삼성SDI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에 맞춰 미 배터리 공장 투자를 놓고 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현재 운영 중인 미시건주의 배터리 팩 공장을 확대하는 방안과 미 남부의 선벨트가 대상이다. 이르면 하반기 중 미국 내 배터리 투자 계획을 확정 발표할 방침이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서도 K배터리 3사 중 가장 앞서간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의 전해액이 아닌 고체의 전해질을 사용해 발화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 안전 관련 부품을 줄이고, 그 자리에 에너지 용량을 높이는 물질을 채울 수 있어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삼성SDI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기술을 개발 중이다. 삼성SDI와 현대차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위한 협력을 검토 중이다. 양사는 ‘선행배터리연구소’ 설립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 관계자는 "자사 각형 배터리는 타사 제품 대비 에너지밀도, 수명, 발열, 강건성 등 성능 및 안전성, 대량 생산성에서도 우위에 있다"며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에너지 밀도를 20% 높이고 원가는 20% 낮추는 젠5(Gen.5) 배터리를 개발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게임체인저로 주목받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소재와 공정 두 부문에서 기존 배터리와는 완전히 차별화된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다"라고 강조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