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방통위 한계…단통법 지키면 '악덕' 불법하면 '성지'

김평화 기자
입력 2021.05.10 06:00
법 준수하는 휴대폰 판매점은 ‘호갱 양산 업체’로 낙인
단속 인력도 없다는 방통위, 합법 업체가 오히려 성지 신고
대구 휴대폰 상가 "걸핏하면 나오는 시장 안정화 대책도 심각"

"오죽하면 동네 휴대폰 판매점 직원이 직접 증거 확보를 위해 불법 성지로 알려진 휴대폰 판매점에 손님으로 방문하고, 이를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까지 하겠습니까. 법 테두리를 지켜 장사하는 매장은 비싸게 휴대폰을 판매하는 악덕 업체가 돼 손해를 보고, 불법 매장은 인기를 얻으니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대구시에서 휴대폰 판매점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IT조선과 직접 만나 방통위의 실효성 없는 단말 유통 시장 단속을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IT조선은 6일 오후 대구시를 찾았다. 방통위의 단말 유통 시장 단속에 문제가 많다 보니 매장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A씨 제보를 받은 후 직접 만나봐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코로나19로 외부 취재가 어렵지만, 이번 만큼은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켜가며 유통 시장에서의 문제를 현장에서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서울역에서 동대구역을 오고가는 KTX 안은 인파로 붐볐는데, 사람들 소음 탓에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조차 삭막하게만 들렸다. 대구 지역 휴대폰 유통상가의 현재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줬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 있는 통신골목. 통신사 대리점과 판매점 등이 한곳에 모여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IT조선이 방문해보니 A씨 말처럼 최근 다수 대리점과 판매점이 폐업한 상태였다. 폐업한 매장 앞 여유 공간은 임시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모습이었다. / 김평화 기자
A씨가 운영하는 휴대폰 판매점은 33㎥(10평) 남짓이었다. A씨는 이곳에서 10년 넘게 매장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매장은 동네 상권에 속하는 작은 규모의 매장이다"며 "과거 대구에는 통신골목이 형성돼 있을 정도로 다수 판매점이 있었지만 현재는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A씨는 시장 안정화 정책이 수년째 지속하면서 동네 상권을 형성하는 소규모 휴대폰 판매점만 피해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는 "법망을 피해 운영하는 일부 온·오프라인 성지 때문에 주변의 모든 판매점이 불이익을 받는 것과 같다"며 "본사(이통사)에선 하루에도 수시로 시장 안정화 정책을 다양하게 내놓는데, 이때 판매장려금을 많게는 수십만원 줄이거나 아예 개통을 막아 사업을 할 수 없게끔 한다"고 토로했다.

시장 안정화 정책은 불법보조금 지급 등으로 시장 과열 조짐을 보이는 지역에 이통사가 특정 기간 판매장려금(이통사가 고객 유치 대가로 판매점에 지급하는 금액)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방통위가 이통 3사에 제재를 요구하면 이통사가 조치가 필요한 지역에 시장 안정화 정책을 내리는 식이다.

방통위-이통사로 이어지는 시장 단속, 소비자·유통망 피해만 유발

방통위는 단말 유통 시장을 관리·감독하는 주무부처다. 방통위는 단통법으로 불리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말기유통법)에 따라 휴대폰 유통 시장에서의 소비자 차별을 막는다. 소비자가 휴대폰 구매 과정에서 받는 지원금 관련 차별을 받지 않도록 불법보조금을 제한하는 것이 일례다. 불법보조금은 단말 유통점이 법으로 정해진 지원금 외에 불법으로 금액을 더해 제품을 판매할 때 제공하는 할인금이다.

방통위는 전국 단위 유통망에서 형성되는 불법보조금을 모두 규제하기 어렵다 보니 이통사의 시장 안정화 정책에 의존한다.

A씨는 "방통위는 이통3사를 압박하며 불법보조금을 단속하게 하고, 이통사는 게릴라식으로 시장 안정화 정책을 유통망에 내려 단말 개통이 불가하도록 한다"며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현장 단속을 진행하지만 불법 성지를 잡지 못한 채 동네 유통 상권만 강압적으로 조사해 문제가 크다"고 말했다

KT와 LG유플러스가 대구 지역에 내린 시장 안정화 정책 관련 문자메시지 모음 / 김평화 기자
IT조선이 대구를 찾은 6일에도 이통 3사의 시장 안정화 정책이 수시로 A씨 휴대전화로 전달이 됐다.. 일례로 LG유플러스는 이날 오후 네 시 기준 대구 지역 판매점에 안정화 정책을 하루 네 차례나 통보했다. 오전에는 다수 단말 기종과 요금제를 대상으로 장려금 지급을 줄였다가 오후에 기준을 완화한 후 한 시간 만에 다시 강화하는 식이다. 만약 다른 내용의 안정화 정책이 차례로 내려오면 제재가 중복 적용되기까지 했다.

이통 3사의 일방적인 정책 통보는 소비자 피해도 낳고 있었다. 시장 안정화 정책 일환으로 일부 휴대전화 모델의 개통이 막힌 날에는 소비자가 해당 기종을 개통하고 싶어도 기약 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아이폰12 수령하고 나니 시장 안정화로 개통이 지연된다고 들었다’, ‘이통사 의지대로 시장 안정화 기간이 정해진다고 하는데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냐’는 소비자 문의글이 온라인상에 적지 않은 이유다.

이통사는 시장 안정화 정책을 적용하면서 소수 매장에만 일부 휴대폰 모델을 대상으로 개통을 풀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대구 지역에선 최근 갤럭시S21과 아이폰12 등이 그 대상이었다. 판매점 입장에선 자연히 해당 모델을 소비자에게 권하다 보니 이통사가 원하는 기종의 판매율을 높이기 쉽다. 반면 소비자의 단말기 선택권은 저해된다.

선량한 업체는 ‘호갱양산처’, 불법 업체는 ‘성지’

단말 유통망에선 현장 단속 과정에서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KAIT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KAIT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기관으로, 사전승낙제를 감독한다. 사전승낙제란 KAIT와 이통사가 정한 심사 항목에 따라 서류 및 현장 심사를 시행해 대리점의 판매점 선임을 허가하는 제도다. 사전승낙을 받지 못한 업체는 휴대전화를 판매할 수 없다.

A씨는 "방통위에서 시장이 과열됐다고 하면 이통사가 시장 안정화 정책을 내리고, KAIT는 단속을 위한 현장 조사를 펼친다"며 "이 과정에서 KAIT 직원이 조사권 없이 판매점에 무작정 들이닥쳐 조사 이유도 밝히지 않고 가게 서류를 뒤지는 등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 일선에서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 산하 단체인 한국이동통신판매점협회가 방통위에 시장 안정화 정책 등의 문제 개선을 요구하며 4월 29일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는 모습 / KDMA
오프라인 현장 조사에 한계가 있다 보니 늘어나는 성지를 제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실질 단속 대상인 불법 성지는 당근마켓과 밴드 같은 소셜 플랫폼으로 광고하는 등 법망을 피해 조직적으로 매장을 늘린다"며 "오프라인 중심으로 성지가 조성됐던 5~6년 전까지만 해도 지역에는 지금처럼 타격이 크지 않았지만, 현재는 곳곳에 성지가 생겨나 골목 상권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성지 매장이 올린 불법보조금 포함 단가를 확인한 후 판매점에 와서 그대로 금액을 요구해 난감한 경우가 많다"며 "그 단가대로 팔면 법을 지키는 판매점 입장에선 마진이 없는데, 그 영향으로 선량한 판매점은 호갱 양산처가 되고 이른바 성지는 정직한 매장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된다"고 덧붙였다.

휴대폰 판매점주들은 사업 생존권 위협을 해결하는 열쇠가 방통위에 있다고 본다. 방통위가 제도상의 한계로 수년째 발생하는 현장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인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방통위가 2014년 제시해 지금까지도 적용되는 판매장려금 30만원 가이드라인 상향도 과제다.

A씨는 "시장 안정화 정책 등은 수년째 지속하는 문제지만 방통위가 별다른 개선 없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데, 이통사가 이를 철회하도록 해야 한다"며 "현재 단말 평균 가격과 요금제 등이 2014년과 달라진 만큼 현실에 맞게 30만원 상한선인 장려금 가이드라인을 50만원으로 조정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대구=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


T조선 뉴스레터 를 받아보세요! - 구독신청하기
매일 IT조선 뉴스를 받아보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