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유치 편의 위해 상담·판매는 디지털화 속속
정작 실손보험 청구하려면 ‘종이’로 작성 제출

보험사들이 상품 상담 등에 인공지능(AI) 등을 속속 도입하며 디지털화를 통한 판매 촉진에 나선다. 반면 보험 청구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한다. 이를 이유로 일각에서는 상품 가입 후 고객이 겪는 불편을 개선하는 데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보험사는 억울하다고 토로한다. 의료계가 반대하고 있어 보험청구의 디지털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금융당국과 국회가 논의에 나서면서 실손보험 의료 청구 간소화가 실현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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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가입에는 AI, 청구에는 종이 영수증 활용

최근 보험 업계에는 자연어 이해나 음성인식, 텍스트 분석 등 첨단 AI 기술 도입이 활발하다. 보험 상품 상담을 자동화하고 맞춤형 보험 상품을 제시해 소비자 유입을 촉진하기 위함이다. 소비자가 상품에 접근하고 가입하는 경로에 주로 첨단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고객 편의는 여기까지다. 상품 가입 후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불편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실제 지난해 집계한 전체 실손보험 청구 중 99%는 아날로그 또는 종이 영수증을 찍어 사진을 전송하는 부분적 디지털 방식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손해보험 실손보험 청구량은 총 7944만4000건인데 데이터 전송에 의한 전산 청구는 9만1000건으로 0.1%에 그친 셈이다.

영수증과 같은 증빙서류 사진을 찍어 보험사나 핀테크업체의 애플리케이션·웹사이트로 전송하는 방식이 34.2%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이 경우 앱을 이용하지만 결국은 사진 전송에 불과하다. 결국 데이터는 보험사가 전환해야 한다. 디지털화가 됐다고 분류할 수 없는 이유다. 보험사 팩스로 서류를 전송하는 방식은 27.5%를 차지했다. 보험설계사를 통하거나 고객이 직접 보험사를 방문해 청구하는 방식은 각각 17.3%와 10.9%로 뒤를 이었다.

이 같은 불편함으로 인해 소액 진료비 청구를 포기하는 가입자도 적지 않다. 보험사가 가입에는 적극적인 디지털화에 나서면서 정작 보험 청구 시에는 가입자가 불편하도록 아날로그 방식으로 고집한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나종연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진료비가 소액이면 소비자가 청구에 부담을 느껴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청구 전산화를 위해 소비자 편의를 증진할 필요가 있음을 나타내는 사례다"라고 말했다.

보험업계 "의료계 반대로 청구 전산화 번번이 무산"

보험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청구 전산화를 추진할 때마다 의료계 반발로 무산됐다고 토로한다. 실제 양측은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이슈로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다. 소비자와 금융당국, 보험업계가 합심했지만 12년째 해결하지 못했다. 보험업계는 의료기관에서 자동으로 실손보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의료계는 보험사 계약을 의료기관이 처리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선다.

지난 10일 여야 의원이 개최한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입법 공청회’에서도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다.

박기준 손해보험협회 장기보험부장은 "이미 의료기관에서 실손 청구 서류를 발급하고 있는데 소비자 편의를 위해 청구 서비스 개선에 나서는 것을 의료기관의 새로운 의무로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서인석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실손보험 계약에 있어서 이행의 주체는 보험사다"라며 "계약자 불편 개선은 보험사 일인데 의료기관이 서류 전송의 주체가 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맞섰다.

신영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의료계는 보험계약 당사자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지만 의료법은 의료기록을 제3자에게 전자적으로 제공하도록 인정했고, 신용정보법도 신용정보 주체의 요청이 있으면 금융기관 등 제3자에 전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해당 이슈는 의료 기관이 보험계약 당사자냐 아니냐의 문제보다는 환자의 진료비 정보를 보유한 기관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