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 문화 편승…투기판 된 가상자산 시장
도지코인, 머스크 한 마디에 롤러코스터
진도지코인, 새벽 사이 개발자 먹튀 논란
그럼에도 밈 코인 속속 출시…제주도지 탄생

가상자산(가상화폐) 시장이 ‘개(dog)’판이 됐다. 시바견을 따온 도지코인이 올해 들어 1만% 이상 오르면서 개를 빗댄 밈 코인(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기반으로 만든 내재가치 없는 코인)이 잇따라 출시되면서다. 전문가들은 밈 코인 등장이 달갑지 않다. 인플루언서의 한 마디에 수급이 몰리는데다 일부 코인에선 벌써부터 먹튀 논란이 일기 때문이다.

진도지코인 텔레그램 배경화면. 먹튀 논란 이후 프로필이 ‘우는 진돗개’ 사진으로 교체돼 투자자 분노를 사고 있다.  /진도지코인 텔레그램
진도지코인 텔레그램 배경화면. 먹튀 논란 이후 프로필이 ‘우는 진돗개’ 사진으로 교체돼 투자자 분노를 사고 있다. /진도지코인 텔레그램
‘개’로 가득한 코인판, 진짜 개판됐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가상자산 시장에 최근 등장한 진도지(JINDOGE)코인은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진도지 코인은 한국의 진돗개를 상징으로 한 가상자산으로 K팝과 같이 코인 시장에서 ‘K밈’으로 트렌드를 잇겠다며 야심차게 출시됐다. 진도지코인은 도지코인과 시바이누코인을 이을 다음 타자로 꼽히면서 화제를 모았다. 특히 진도지코인은 오는 2분기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과 진도지코인을 기반으로 한 NFT(대체불가토큰) 발행 계획을 밝혀 투자자를 모았다.

하지만 진도지코인은 이날 오전 1시쯤 개발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전체 물량의 15%(230만달러, 26억원)를 한번에 매도했다. 이와 함께 홈페이지와 트위터도 모두 폐쇄했다. 텔레그램 계정 프로필 사진 속 진돗개 모습은 피해자를 농락하듯 ‘우는 진돗개’ 사진으로 바뀌었다. 먹튀 논란이 이는 배경이다.

피해자도 막대한 상황이다. 가상자산 커뮤니티의 한 네티즌은 "진도지로 수 백만원을 날렸다"며 "피해자모임방에서 대처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머스크 한 마디에 도지코인 폭락

시세 폭락을 겪은 밈 코인은 이 뿐이 아니다. 먹튀까지는 아니지만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한 마디에 밈 코인의 원조격인 도지코인은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최근에는 폭락해 현재도 낙폭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코인 광풍을 주도한 머스크 CEO는 지난주 미국 코미디쇼 SNL에 출연하기에 앞서 트위터에 ‘도지코인의 아버지 SNL 5월 8일’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개인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실제 도지코인은 상승 기대감에 한때 800원대를 기록하며 코인 시총 4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머스크가 정작 SNL에 출연하면서 도지코인은 30% 가량 폭락했다. 도지코인을 소재로 한 콩트를 선보이면서 ‘도지코인은 사기인가’라는 진행자 질문에 ‘맞다’고 받아치면서다. 트윗과 방송으로 세계 가상자산 판을 흔든 셈이다.

이후 머스크는 도지코인 시세를 여러 차례 조장했다. 우선 우주 탐사 기업 ‘스페이스X’가 한 민간 기업의 달 탐사 계획에서 도지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허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한데 이어 최근에는 트위터에 ‘테슬라가 도지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도입하길 원하냐’는 찬반 투표를 올리기도 했다. 해당 투표에는 392만2516명이 참여했고, 이들 중 78% 이상이 찬성 표를 던졌다.

변덕이 심한 탓일까. 머스크는 이날 채굴로 인한 환경 오염을 이유로 들며 비트코인 결제를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도지코인은 이날 오후 가상자산 시황 중계 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서 전주 대비 30% 가량 폭락했다.

계속 생겨나는 개 코인…제주도지 탄생

밈 코인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장난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가운데 새로운 밈 코인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장 최근 등장한 밈 코인은 제주도지다.

제주도지 트위터 등에 따르면 해당 코인은 멸종 위기에 놓인 제주도 토착견 ‘제주개’를 따온 가상자산이다. 유니스왑에서 거래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공개된 정보는 없다.

도지코인의 열풍을 이어 만들어진 시바이누 코인도 급등세를 타고 한때 시총 20위권까지 올랐다. 일본 ‘시바이누’를 따온 시바이누 코인은 도지코인보다 낮은 가격에 밈 코인 열풍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시바이누 코인 측은 해당 코인을 ‘도지코인 킬러’라고 언급하며 단기간에 도지코인을 앞지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당 코인과 같은 밈 코인 실체가 불분명한데다 내재가치가 없는 만큼, 신중히 투자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는 "밈 코인은 기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달리 빠르게 오르고 빠르게 빠지는 성격이 있다"며 "단타를 노리는 이들에게 좋은 투자처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관련 피해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밈 코인 사태로 알 수 있듯 아직 시장은 미성숙한 상태다"라며 "관련 규제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