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전기차용 배터리 기술 내재화가 유행처럼 번진다. 더 저렴하고 성능 좋은 전기차를 미래에 내놓으려는 이들 기업의 야심이 현실화하는 셈이다.

완성차 업계의 독립 선언은 그동안 압도적 기술과 양산능력으로 시장을 지배한 국내 배터리 업계에 명목상 악재일 수 있다. 하지만, 20년 넘게 축적한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 핵심 소재 투자를 지속해 가격 경쟁력을 높일 경우 현재의 K배터리 위상이 꾸준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기회의 장이 열린 셈이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이 파우치형 전기차 배터리 셀을 살펴보는 모습 / 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직원이 파우치형 전기차 배터리 셀을 살펴보는 모습 / LG에너지솔루션
29일 완성차·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 전기차 배터리 기술 내재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고속 성장하는 전기차 시장 대비 전기차 배터리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어서다.

최근 비즈니스인사이더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다임러는 전기차용 배터리 셀을 자체 제조해 조달하는 방안을 고려한다. 2030년까지 전기차 20종 이상,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 25종을 투입해 전체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전기차와 PHEV로 채울 계획이다.

포르쉐도 수천만유로를 투입해 독일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업체인 커스텀셀스와 합작사를 설립한다. 슈투트가르트 지역에 연간 100㎿, 1000대 분량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가진 공장을 세워 2024년쯤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볼보자동차그룹은 스웨덴 노스볼트와 합작해 50만대의 전기차에 사용할 수 있는 연간 5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유럽 내 건설될 합작 배터리공장은 2026년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중국 지리홀딩스가 인수한 볼보는 2030년까지 완전한 전기차 전환을 목표로 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는 2020년 가장 먼저 내재화를 선언했고, 폭스바겐도 지분을 보유한 노스볼트과 함께 내재화를 추진해 유럽 전기차 밸류체인 통합 전략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BMW 전기차 / 이광영 기자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BMW 전기차 / 이광영 기자
하지만 배터리 제조 분야에 신규업체가 진입하기는 어렵다. 진입장벽이 높다. 오히려 완성차와 배터리 업체 간 협업이 강화된 영향으로 K배터리에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지 사업은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에 진입 장벽이 있고, 다수 핵심 기술, 특허, 오랜 양산 노하우가 축적돼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 수주가 일정 수준 줄어들 수 있겠지만, 톱티어 배터리 업체의 경우 완성차와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K배터리 3사는 화재 위험 등 기존 대비 안정성을 개선한 동시에 성능을 높인 하이니켈 배터리 상용화에 나서는 중이다. 하이니켈은 니켈 비중이 80% 이상 함유된 배터리 소재 양극재를 말한다. 양극재의 주요 원재료인 니켈은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중요 역할을 한다.

삼성SDI는 양극 소재 니켈·코발트·알루미늄(NCA) 배터리의 니켈 비중을 궁극적으로 94%까지 높일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4원계로 안정성과 용량, 수명을 모두 잡는다. 니켈 함량이 89~90%에 달하고 코발트는 5% 이하다. SK이노베이션은 니켈과 코발트, 망간 비중이 각각 90%, 5%, 5%인 NCM 배터리를 2022년부터 포드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 배터리는 최대 700㎞까지 주행 가능하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 폴란드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 공장 전경 / SK아이이테크놀로지
SK아이이테크놀로지 폴란드 리튬이온배터리분리막 공장 전경 / SK아이이테크놀로지
배터리3사는 제조비용 절감을 위해 최근 분리막·양극재·음극재 등 소재 생산능력을 확대하거나 협력사와 합작법인(JV) 설립,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한다.

LG화학은 기존 양극재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분리막 사업 인수를 추진 중이다. 배터리 제조사인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이 LG전자로부터 분리막을 납품받았는데, 이 사업을 LG화학이 이관받을 예정이다.

SK이노베이션은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이하 SKIET)가 배터리 분리막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했다. 축차연신, CCS 코팅 등 배터리 안전성을 높인 독자 기술로 지난해 프리미엄 분리막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다. 10.3억㎡의 연간 생산능력을 2024년 27.3억㎡로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SDI는 양극재 소재 전문기업 에코프로비엠과 합작사 ‘에코프로이엠’을 설립했다.2022년 1분기부터 에코프로이엠으로부터 양극재를 단독 공급받아 안정적으로 양극재를 확보하는 기반을 다졌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의 배터리 내재화 전략은 전기차 투자뿐 아니라 배터리 개발에도 막대한 비용을 써야하는 리스크가 따른다"며 "배터리 업계의 소재 자립에 가속이 붙으면서 오히려 배터리 부문에서 공급자 우위 시장 환경은 오랜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