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자리에 있고 싶다면 뛰어야 해, 더 앞서가고 싶다면 두배는 빨리 달려야 하고."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엘리스'의 등장인물인 붉은여왕이 경쟁 중 제자리 걸음을 하면 도태된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진화론에 입각한 격언이지만, 붉은 여왕의 역설은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전동화·전기자동차 인프라 경쟁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세계 각 국가와 글로벌 완성차 기업은 전동화·전기자동차 인프라을 위한 신기술 개발과 적용에 온 힘을 쏟아 붓는다. 내연기관 자동차는 100년 넘게 완성차 시장의 터줏대감이었지만, 전기자동차는 더 발빠르게 움직이며 추격과 격차 줄이기에 한창이다. 전기차 충전기 시장 역시 비슷하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보유한 주유 인프라를 쫓아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기술 경쟁력을 보유하기 위한 혁신을 지속하며 전속력으로 뒤쫓는다.

하지만 한국 전기차 충전기 시장 분위기에 이상 현상이 감지된다.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글로벌 추세에도 불구하고 나홀로 요지부동이다. 환경부는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 정책에서 전기차 충전기 업계의 기술 발전이나 신기술 적용 장려에 대해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이다. 기업이 품질과 기술에서 차별화를 하려 해도, 정부가 투입하는 보조금 규모는 별 차이가 없다. 전기차 충전기 인프라의 고도화와 혁신에 나서는 기업들 사이에 역차별에 시달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율주행 전기차 충전기는 2019년 독일 완성차 기업 폭스바겐이 시연해 보였고, 이후 글로벌 기업 간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흐름이다. 문제는 환경부의 지원이 시대적 조류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이다. 신기술 확산을 활성화하려면 그만큼 지원책이 필요한데, 자율주행 전기차 충전기 분야와 관련한 활성화 가이드라인은 거의 전무하다. 해당 솔루션을 개발한 국내 한 전기차 충전기 기업은 최근 한국이 아닌 해외 자율주행 충전기 시장부터 먼저 공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원책 미비가 가져온 참상이다.

전기차 충전기 신기술과 품질 혁신에 나섰던 기업들은 차라리 환경부의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이 없어지는게 더 낫다는 입장이다. 보조금이 없는 상태에서 경쟁하면 기술과 품질로 승부할 수 있는데, 다양한 업체가 정부 보조금 규모에 맞춘 충전기 인프라만 구축만 하다보니 그만큼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올해 환경부의 전기차 충전기 보조금이 200만원으로 떨어진 후 저품질 충전기의 보급만 확 늘어난 실정이다.

전동화로 향하는 완성차 시장에서 기술 발전과 혁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다. 자율주행 전기차 충전기처럼 이제 막 시장에 나온 기술을 활용한 솔루션은 글로벌 산업계의 기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마중물이 된다. 그만큼 환경부의 요지부동 보조금 정책은 아쉬움이 크다. 계속해서 혁신해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붉은 여왕의 말처럼, 환경부는 보수적인 정책을 버리고 기술·품질 혁신 기업이 전기차 충전기 시장에서 빠르게 질주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전략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민우 기자 min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