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5년까지 급속·완속 포함 50만대 이상 전기차 충전기를 전국에 구축한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충전기 업계 등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현 충전기 구축 기간 대비 수량을 고려할 때 5년안에 50만대 충전기를 준비하기도 어렵고, 충전기 숫자를 감당할 전력 설비도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친환경·전기차 정책이라는 주제에만 매몰돼 비현실적인 충전기 숫자를 남발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한 주택 부지에 설치된 완속형 전기차 충전기 / 이민우 기자
국내 한 주택 부지에 설치된 완속형 전기차 충전기 / 이민우 기자
30일 충전기·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정부에서 목표한 2025년 전기차 충전기 50만개 이상 달성하겠다는 계획은 실현이 어렵다. 29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13차 혁신성장 BIG3 추진회의’에서 2025년까지 전국에 완속충전기 50만대와 급속충전기 1만2000만개소를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1년 6월 기준 국내에 설치된 충전기는 완속이 5만9000대쯤이며, 급속충전기의 경우 8000개소 정도 있다. 2020년 말과 비교해 급속충전기는 1500개소쯤, 완속충전기는 5000개 늘었다. 최근 충전기 제조기업·사업자 증가로 충전소 구축 속도에 탄력이 붙지만, 여전히 5년안에 50만대 이상 구축하겠다는 목표는 실현 가능성이 적다.

전기차 충전기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에서 전기차 충전기 구축에 대한 관련 산업의 전반적인 고려없이 비현실적인 숫자를 제시하고 있다"며 "신축 건물과 아파트 등 건축물에 전기차 충전기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시행하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전기차 충전기 확대를 위해 기존 건축물의 수전설비와 발전소 등 전력인프라의 재정비가 선행되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근 지어진 신축 건물들을 제외하면 현재 대부분 건축물의 전력 설비로는 전기차 충전기로 늘어나는 전력량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 법령의 제40조 1항은 주택에 설치되는 전기시설 용량을 전용면적 60㎡(18.15평) 기준 세대 별 3㎾이상으로 규정한다. 전용 면적 60㎡ 초과하는 세대의 경우, 10㎡당 0.5㎾씩 전기시설 기준을 높여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해당 조문은 개정일자가 1998년 8월일정도로 최신화가 오랫동안 되지 않은 법령이다. 당시 법 개정에 따라 건설됐던 건축물의 전기시설 용량과 달리, 최근 전력소비량은 급격히 증가한 상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인구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은 1만㎾h이상으로 2002년 인구 1인당 연간 전력소비량 5845㎾h의 2배수준이다.

전기차 충전기 업계 관계자는 "당장 2000년대 초중반 지어졌던 다수 건물들마저 지금과 비교하면 1인당 전력사용량을 보수적으로 산정한 수전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며 "매해 여름마다 정전우려 등에 시달리는 지금, 정부가 50만대 이상으로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한다면 수전 설비에 대한 보수공사와 개선부터 선행되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민우 기자 min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