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코인이) 당국의 외면을 받고 있다. 김치코인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한국을 차별하는 말도 안 되는 행동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대표가 지난달 27일 열린 민주당 가상자산TF 비공개 간담회 자리에서 한 말이다. 최근 은행연합회가 가상자산 거래소 위험평가 기준을 발표한 이후 국산 코인이 대규모 상장 폐지된 점에 안타까움을 드러낸 말이다. 간담회에 참여한 대부분의 사업자는 이런 우려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는 6월 18일 가상자산 24개의 상장폐지를 예고했다. 앞서 11일 5개 가상자산 상장 폐지를 공지한 지 일주일 만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로 인해 업비트에 상장된 국산코인 35%가 상장 폐지됐다. 2위 거래소 빗썸도 10개 가상자산을 투자유의로 지정하면서 시장에는 ‘김치주의보’가 내려졌다. 심지어 국산 코인 목록이 적힌 이른바 ‘살생부’가 나돌기도 했다.

이쯤 되면 한가지 의문이 든다. 과연 김치란 무엇일까?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김치코인은 특정 가상자산을 지칭하기 보다는 일종의 투기 현상을 일컫는다고 해석하는 게 더 정확하다.

현상의 뿌리는 ‘김치 프리미엄(김프)’에 있다. 김프는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해외보다 다소 높게 형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 열풍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최대 50%까지 치솟으면서 김프는 한국 투자자 특유의 투기 열풍을 뜻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김치코인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김치코인의 공통분모는 ‘거래소 상장’과 ‘가격 변동성’이다. 별다른 블록체인 기술이나 내재 가치 없이 그럴싸하게 코인을 만든 후 운 좋게 상장돼 물량을 내다 팔아 한 몫 단단히 챙기는 현상을 통칭한다.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거래 대부분이 국내에서 발생하거나, 국내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오로지 가격 상승에 집중하는 가상자산이라면 김치코인으로 분류하는 분위기다.

김치코인은 또 블록체인 내재가치의 주요 지표로 꼽히는 탈중앙성, 기술의 성숙도, 탈중앙프로젝트를 구현할 수 있는 리더십 등이 없는 경우도 많다. 오픈소스가 없는 가상자산은 탈중앙성을 위배해 기술력을 의심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가상자산 전문가는 "베끼려면 베껴봐 하고 공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까지 도달하지 못한 프로젝트가 많다"고 일침을 놨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상장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프로젝트도 내재 가치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이더리움은 가상자산 거래소가 없어도 그 자체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구조를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더리움은 디파이(DeFi)나 대체불가능토큰(NFT)과 같은 블록체인 서비스를 키우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김치코인의 실체는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하다. 김치코인 디스카운트도 코인 가격만 보고 펌핑을 노렸던 국내 투자 행태의 ‘자업자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관계자는 "오로지 돈벌이를 목적으로 찍어낸 가상자산을 정리할 필요는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업계는 ‘옥석가리기’는 필수라고 당부한다. 좋은 국산 코인도 많으니 국적이 아닌 가치를 보자는 것이다. 김치코인이란 꼬리표 때문에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말 못할 속 앓이를 하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문제는 우리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내재가치를 알아볼 만한 안목을 가졌느냐다. 이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 기준과 직결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의 상장 기준이 내재가치가 있는 블록체인 프로젝트를 걸려내기엔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평가다. 토큰 이코노미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가상자산의 출신이 평판에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가 개선되길 바란다. 현재의 김치코인은 국산 코인을 모두 뭉뚱그려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만큼 이 표현만큼은 사라졌으면 한다. 아울러 김치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쓰였으면 한다. 덧붙여 이왕이면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육성 정책이 활발히 이뤄져, 머지않아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 김치가 대접받게 되면 더 좋겠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