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 노력을 억압하고 짓밟으려는 정부, 위에서 내려다보는 정부, 금융위원회는 어떻게 가상자산 시장을 때려줄까 고민하는 체벌기관이 되어버렸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2일 가상자산 법제화 및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여야 합동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윤 의원은 금융위의 가상자산 규제에 사업을 바라보는 철학이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실제 그 동안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을 향해 내놓은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체벌 기관과 흡사하다는 인상을 준다. 이른바 ‘박상기의 난’이 대표적인 예다. 2018년 1월 11일 박상기 전 법무부장관은 가상자산 거래소를 전면 폐쇄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시장 충격은 대단했다. 1월 11일 2189만원을 기록하던 비트코인은 당일 1400만원으로 하루 만에 36%가 빠졌다. 한국 관료의 입만 보던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은 이때부터 빙하기에 접어들었다. 일년 후 비트코인은 370만원대까지 고꾸라졌다.

정부는 아직까지 당시를 자랑스러운 공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시장을 잘 때려잡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 정도의 강경책을 쓰지 않았다면 투기 열풍을 꺾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다. 실제 당시 다단계·사기가 성행했다는 점에서 박상기의 난이 시장을 청소한 효과를 낸 점은 부정할 수 없다.

2016년 정부 가상자산 시장 육성 방안 논의...대선과 함께 해체

이는 직전 정부의 활동과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2016년 11월 금융위원회는 디지털 화폐와 관련해 불법행위를 차단하면서도, 건전하고 투명한 거래를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학계와 사업자도 참여했다. TF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필두로 가상자산 거래 규모를 파악하고 해외 규제 현황을 연구했다.

특히 금융위가 시장 성장을 언급한 부분이 인상깊다. 금융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관련 제도가 없어 업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5년 전 정부는 심상치 않은 글로벌 금융 시장의 흐름을 감지하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이를 위해 가상자산 순기능을 키우면서도 역기능을 줄일 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핀테크 발전 협의회’로 발전했다. 정부는 블록체인 기술과 금융의 융합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시장 육성 방안을 논의했다. 지금의 정부 정책을 보면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이러한 논의는 대선 이후 끊어졌다. 2017년 9월 금융위가 처음 개최한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TF’에서는 시장 육성의 중요성은 언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상자산의 부작용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규제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 규모가 폭증하자 화들짝 놀란 정부는 ‘거래소 폐쇄’라는 약발이 가장 센 처방으로 시장을 때려잡게 된 것이다.

정부, 급기야 가상자산 ‘악마화’...신고수리 거부권한과 은행 위험평가가 체벌도구

이후 3년 반이 지났다. 시장과 환경이 변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2018년 1월 ‘라떼’를 추억하고 있다. 올해 4월 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 거래소가 모두 폐쇄될 수 있다는 발언했다. 이어 이달 16일 정부는 ‘신고수리 요건을 충족한 곳이 한 곳도 없다’고 발표한 배경을 들여다보면 ‘박상기의 난’의 약효를 기대하는 속내가 읽힌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기조가 2018년에 비해 더 악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시장을 ‘악마화’하는 다소 격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금융위에게 감정적인 반감이 느껴진다고 우려한다.

이는 가상자산 관련 정책과 발표에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금융위는 은행에 실명계좌 발급을 거부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한편, 사업자들에게 신고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체벌 도구는 특금법에 명시된 신고수리 거부 권한과 실명계좌 발급을 위해 위험평가 심사를 실시하는 은행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압박이다. 법률의 허점과 틈새를 파고들어 초법적인 지위를 행사한다는 지적과 비난이 이어지는 이유다.

윤 의원은 이를 두고 ‘도 넘은 행정행위’라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토론회에서 "행정행위의 핵심은 객관성과 투명성이다. 행정행위는 누가 채점해도 같은 점수가 나와야 한다. 선생님마다 채점결과가 다르고, 어떤 선생님은 채점을 아예 거부한다"고 빗댔다.

환경 달라졌는데 처방은 ‘라떼’…가상자산 투자 변수 요인은 글로벌 규제

다행인 점은 금융위의 이러한 공포규제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경이 변했는데 정부는 이전과 같은 처방을 쓰고 있다. 효과가 있을리 없다. 변화를 학습하지 못한 금융위가 변화 자체를 금기시하고 거부한 결과다. 학습효과를 마친 시장은 정부의 속내를 꿰뚫어 보고 있다. 더 이상 정부 발표에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정부가 시장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국내 블록체인 전문가는 가상자산 시장을 움직이는 결정적인 요소는 미국의 규제 이슈라고 진단했다. 한국 정부의 부정적인 발표가 시장에 일시적인 영향을 미칠 지는 몰라도 투자를 위축시키거나 시장은 흔들만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는 "2018년 ‘박상기의 난’ 때 만해도 시장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공포가 강하게 작용했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며 "투자자의 기본적인 수준이 올라갔고, 국내 정부 발표에 학습효과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투자자들이 글로벌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국내 규제 이슈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이대로 공포규제를 밀어 붙인다면 결과는 뻔하다. 국내 사업을 틀어 막으면 가상자산 시장은 한국이 아닌 글로벌 무대에서 둥지를 틀 것이다. 대규모 자금이 딸려 나가면서 한국은 자연스럽게 고립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규제와 육성을 함께 살펴야 하는 이유다. 5년 전 그때처럼.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