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순위에서 인기 1위를 기록했다.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전례 없는 역사를 쓰고 있다. 오징어 게임 흥행이 K-콘텐츠 영향력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콘텐츠 IP를 넷플릭스가 확보한 상황에선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나온다 한들 국내 업계 성장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넷플릭스가 IP를 독식하는 계약 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넷플릭스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당장 수정할 방도는 요원하다. 그보다는 국내 관련 업계 성장을 도모하면서 정부가 다방면의 지원을 더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시즌제를 제작하는 넷플릭스 제작 방식을 활용해 제작사가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대안도 있다.

넷플릭스 로고 / IT조선 DB
넷플릭스 로고 / IT조선 DB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글로벌 콘텐츠 순위에서 1위 ‘기염’

6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및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인 오징어 게임이 세계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가 9월 17일 선보인 총 아홉 편의 시리즈물이다. 서바이벌에 참여한 이들이 456억원의 상금을 두고 극한의 게임을 치르는 내용이다.

오징어 게임은 개봉 직후부터 넷플릭스 시청자 인기를 얻었다. 국내서 빠르게 인기 콘텐츠 순위 1위에 오른 데 이어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에콰도르 등에서도 단기간에 1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넷플릭스 안방인 미국에서도 1위를 차지하며 국내 콘텐츠 역사를 새로 썼다.

오징어 게임은 개봉한지 수일이 지났음에도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글로벌 OTT 콘텐츠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5일 기준 인기 TV 프로그램(쇼) 순위에서 세계 1위다.

오징어 게임 글로벌 흥행 속 명암

국내 콘텐츠 제작 업계는 오징어 게임의 글로벌 흥행에 고조되는 분위기다. K-콘텐츠가 동남아시아 등 일부 지역을 넘어 유럽 등지까지 인기를 끌면서 국내 콘텐츠가 뻗어갈 지형이 확대된 덕분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슬치기’ 등 한국적인 요소가 다수 포함된 콘텐츠가 세계 흥행을 기록한 것도 새로운 기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징어 게임 회차별 간략 설명 내용 /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오징어 게임 회차별 간략 설명 내용 / 넷플릭스 홈페이지 갈무리
반면 오징어 게임 흥행 이면에 있는 콘텐츠사 수익 배분 한계를 두고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늘어간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지만 제작사가 넷플릭스로부터 초과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해당 콘텐츠 제작사에 제작비의 100% 이상을 지급한다. 사전투자 방식으로 제작비를 지원하되, 제작 과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국내 제작사 입장에선 환영할만한 제작 환경인 셈이다. 대신 콘텐츠 제작 후 지적재산권(IP)과 판권, 해외유통권 등은 모두 넷플릭스가 확보한다. 쪽박을 치든, 대박을 치든 제작사에 돌아오는 것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OTT·콘텐츠 업계에선 넷플릭스를 통한 콘텐츠 제작이 업계 성장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IP를 통한 사업 다각화가 콘텐츠 업계 불문율이 된 상황에서 IP 확보 없이는 사업이나 수익 확대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 역시 이같은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5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선 넷플릭스가 IP를 확보하는 계약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논의가 나왔다.

전혜숙 과방위 소속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식재산권(IP)을 넷플릭스가 가져가면 콘텐츠 제작사는 세계에서 유명한 콘텐츠를 만들어도 일정 수익 외에 가져갈 수 없다"며 "IP 없이는 창작자 의욕이 상실된다"며 상생을 기초로 계약을 요구하기도 했다.

넷플릭스 사업 모델 바꾸기 어렵다…"국내 시장 확대해 협상력 키워야"

OTT 전문가들은 넷플릭스 비즈니스 모델이 글로벌 단위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국내에만 IP 확보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하긴 어렵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국회 등에서 여러 비판이 나오지만, 대안이 없어 힘이 빠지는 상황인 셈이다.

대신 넷플릭스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국내 제작 환경과 업계 생태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온다. 사업자 개인보다는 국내 시장 자체의 파이가 커져야 넷플릭스와의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넷플릭스의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긴 어렵다 보니 그보다는 국내 OTT나 플랫폼이 많아지는 식으로 국내 제작 업계가 넷플릭스와의 협상력을 키워야 한다"며 "국내 OTT가 활성화할수록 제작사 협상력이 늘어 (넷플릭스와의 계약에서) 이익을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디어콘텐츠 업계 투자 회수율은 타 산업과 달리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이다"며 "정부가 양적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이런 리스크를 줄여줄 필요가 있다. 규제보다는 진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가 9월 자체 행사로 마련한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에서 셀, 덱스터스튜디오, 라이브톤, 웨스트월드, 아이유노 SDI 그룹 등 국내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모습 /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9월 자체 행사로 마련한 넷플릭스 파트너 데이에서 셀, 덱스터스튜디오, 라이브톤, 웨스트월드, 아이유노 SDI 그룹 등 국내 콘텐츠 제작사 관계자가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과정을 소개하는 모습 / 넷플릭스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 역시 넷플릭스와의 사업에서 국내 콘텐츠 제작 업계가 이익을 확대하려면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등 세 부처가 OTT 산업을 관할로 두려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는 주문도 내놨다.

김 소장은 "넷플릭스를 포함해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는 사업 자체로 독점성을 지닌다. 정부가 과거 방식대로 플랫폼을 규제하려고 해봤자 개선이 될 수 없다"며 "넷플릭스보다는 국내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게 공정경쟁을 할 수 있는 힘을 얹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ICT(정보통신기술) 디지털 전반을 규제하는 전문부처에서 문제를 접근하는 게 맞다"며 "제대로 관장할 곳을 고민해야지 지금처럼 (부처 별로) 나눌 곳을 고민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국내 콘텐츠 사업자가 시즌제가 두드러지는 넷플릭스 제작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넷플릭스가 인기 있는 콘텐츠를 시즌 별로 제작해 확대하려는 상황에서 해당 제작사가 협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선영 연세대 교수(커뮤니케이션대학원)는 "시즌1이 성공할수록 다음 시즌 콘텐츠에서 더 많은 제작비와 나은 권리를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헐리우드를 포함해 어디든 마찬가지다"라며 "콘텐츠가 흥행할수록 제작사가 협상력을 주도할 수 있는 구조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넷플릭스는 주 52시간 제작을 철저하게 지키고 사전전작제를 한다. 국내처럼 파일럿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률 반응생산을 하는 일종의 단두대 같은 모델이 아니다"며 "기존 제작 관행으로 계약을 하던 방송사나 플랫폼 사업자가 넷플릭스 모델과 경쟁하려면 제작자와 어떻게 새로운 관계를 맺을지 고민하는 게 먼저다"고 말했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