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자사 주력 차량 ‘스탠다드’ 모델에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활용하기로 하면서 배터리 시장이 떠들썩하다. 그동안 전기차 시장을 이끌어온 테슬라의 이번 발표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LFP 생산에 빠르게 뛰어들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하지만 미래 전기차 시장에서의 경쟁 상황은 완성차 기업 한 곳이 압도적 1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만큼 치열하다. 테슬라에 휘둘려 사업 전략을 급히 수정할 필요는 없다는 배터리 업계의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오히려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고부가가치 제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린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 유튜브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 유튜브
25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세계 2위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LFP 배터리를 개발 중이지만, 전기차용이 아닌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겨냥해 준비 중이다.

장승세 LG에너지솔루션 경영전략총괄(전무)은 25일 LG화학 3분기 경영실적 콘퍼런스콜에서 "LFP 배터리는 공간과 무게 제약이 없고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ESS에 우선 적용하기 위해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EV용은 또 다른 코발트 프리 저가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LFP는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낮아 이를 극복하는 게 배터리 업계의 공동 숙제다"라며 "이 때문에 테슬라도 저가 모델에만 LFP 배터리의 적용을 확대하고 롱레인지 모델은 하이니켈 배터리를 유지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삼성SDI는 ‘LFP 배터리 개발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테슬라 납품을 위해 삼원계 중심으로 개발해온 원통형 배터리를 뒤늦게 LFP로 일부 생산해 따라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득이 되는 선택은 아닐 것이란 견해다.

지동섭 SK온 사장은 최근 저가 자동차와 같은 특정 용도로 LFP 배터리 개발을 고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CATL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형 / CATL
CATL LFP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모형 / CATL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독주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은 국내 배터리 기업이 여전히 LFP 보다 삼원계에 힘을 싣는 이유 중 하나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테슬라는 2025년에 전기차 271만대를 생산해 시장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30년 예상 생산량은 554만대로, 667만대를 생산한 폭스바겐에 1위 자리를 내줄 것으로 전망된다.

르노·닛산(443만대)이 3위, 현대·기아차(408만대) 4위이며 GM(350만대), 도요타(330만대), 스텔란티스(338만대), 포드(232만대)가 뒤를 이으며 춘추전국시대를 열 것이라는 관측이다.

국내 배터리 기업도 테슬라의 독주를 바라지 않는 눈치다.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의 중국 내 공급사지만 파나소닉(미국)과 CATL(중국)이라는 경쟁사가 있는 한 3위 공급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독주는 곧 파나소닉과 CATL의 시장 지위 상승을 뜻하는 셈인데, 이를 LG에너지솔루션이 반길리 없는 셈이다.

CATL, BYD 등 중국 업체들이 만드는 LFP 배터리는 양극재로 리튬과 인산철을 배합해 쓴다. 겨울철 등 저온에서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코발트와 니켈 등이 들어가지 않아 양산이 쉽고 안전성이 높다. 소재 특성상 상대적으로 가격도 저렴하다. LFP 배터리 가격은 NCM 배터리 대비 20%쯤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파나소닉은 테슬라가 전기차 사업을 시작한 시점부터 미국에서 10년 이상 두터운 협력 관계를 맺고 있고, 중국시장에서 CATL의 지위도 절대적이다"라며 "LG에너지솔루션도 테슬라의 중요 협력사 중 하나지만, 기술 격차가 확연히 벌어지지 않는 한 파나소닉과 CATL의 지위를 뛰어넘을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향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고사양 삼원계 배터리와 중저가형 LFP 배터리로 양분될 전망이다. 하지만 LFP 배터리는 주행거리가 짧다는 한계가 있다. 테슬라의 LFP 배터리 채택 선언에도 국내 배터리 기업이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등을 원료로 한 ‘삼원계’ 배터리 경쟁력 강화에 적극 나서야 실익이 크다는 주장이 나온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 뿐 아니라 다른 완성차 업체도 LFP를 확대해 채택하는 분위기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저가형 전기차에 채택하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라며 "LFP와 경쟁이 가능한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하거나 삼원계 배터리의 경쟁력을 더 높이는 것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방향성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